우주는 위하는 데서부터 시작되었다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249권 PDF전문보기

우주는 위하는 데서부터 시작되었다

사랑의 대상이 자기보다 더 잘나기를 바라는 것이 우리들의 욕망입니다. 남편이 자기보다 못나기를 바라는 여자가 있으면 손 들어 봐요? 그렇다면 쌍년이예요. 남자들도 자기 여편네가 잘나기를 바라야지 못나기를 바라는 사람은 쌍놈입니다. 도둑놈이라구요. 이용해 먹겠다는 녀석은 쌍것이에요. 본질적으로 보면 자기보다 사랑의 상대가 몇백 배, 몇천 배, 몇만 배, 몇억만 배 잘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런 것이 좋아요, 나빠요?「좋습니다.」

하여튼 도둑놈 같은 마음이지만 하나님 중심삼고 하면 괜찮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 있다는 거예요. 악마를 중심삼고, 자기를 중심삼고 그러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투입하고 잊어버려야 됩니다. 백을 투입하고 중단하면 백만한 상대밖에 못 찾는다는 것입니다. 백을 천번 만번 투입하고서 잊어버림으로 말미암아 무한한 가치의 상대적 존재를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백만큼만 투입하고 중단하면 백만큼의 대등한 가치도 못 찾는 것입니다. 그 마음이 하나님으로부터 왔다구요.

자기의 아들딸이 자기보다 못나기를 바라는 부모가 있어요? 있어요, 없어요? 잘나기를 바라서 투입하고 잊어버리고 투입하고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참이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수첩에 어느날 몇 시에 무엇을 얼마 얼마했다고 적어서 일생 동안 얼마 들어갔다고 통계내는, 계산하는 부모 봤어요? 부모는 투입하고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동네에서 못사는 집의 부모는 가슴이 아픈 거예요. 설날이 되어 다른 아이들은 때때옷을 잘 차려 입고 나선 것을 보게 될 때, 자기 아들딸에게는 그보다 더 잘해 주고 싶은 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마찬가지로 백화점에 가서도 일등품 이등품 삼등품이 있으면 돈 많은 사람들은 일등품에다 꽃으로 액세서리까지 해서 사 주는데 자기 형편에 삼등품밖에 못 사 가지고 와서 자기 아들딸에게 줄 때는 그 상품 가치보다 더한 섭섭함이 가슴에 남는다는 것입니다. 그게 본성의 마음입니다.

사 주고도 빚을 느끼는 것이 부모라는 거예요. 그것이 본질세계의 기원입니다. 창조세계, 존재세계 현현의 동기가 거기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볼 때 하나님이 얼마나 고마워요? 그런데 이런 원칙을 떠나서 자기를 위하라고 하는 세상이 어떻게 생겼느냐 하는 문제를, 있을 수 없는 일이 생긴 문제를 논리적으로 볼 때, 타락으로 말미암아 초래되었다고 결론지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사실이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그런 결론을 짓고 나서야 위안이라도 받을 수 있지 그러지 않으면 위안도 못 받습니다. 사실이 그렇다면 천국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여자는 남자 때문에 태어난 것입니다. 위해서 태어난 거예요. 여자는 누구 때문에 태어났다구요?「남자 때문에」남자는?「여자 때문에」마찬가지예요. 덩치가 큰 남자는 조그마한 여자 때문에 태어난 것입니다. 여자가 남자에게 이길 수 있는 것이 하나라도 있어요? 올림픽 경기 중에 여자가 남자에게 이기는 종목이 뭐예요? 하나도 없잖아요? 그렇지만 사랑에 있어서는 대등한 자리에 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을 빼놓고서는 평등할 수 없습니다. 어떻게 여자와 남자가 평등해요? 밥을 먹어도 남자는 여자의 1.5배를 먹습니다. 많이 먹으니 일도 많이 하잖아요? 활동이 더 앞서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평등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여자가 평등할 수 있는 것은 사랑을 가지고 나서입니다. 사랑을 갖고 가능한 것입니다. 참사랑을 가진 여자라 할 때는 천하의 어떤 남자든지 그 품에 품기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여자를 바라는 것입니다. 빤질빤질하고 입이 가벼워서 조잘거리고 이해 타산하는 여자는 악마의 하수인, 하수녀입니다.

통일교회 교인들을 보면 어수룩하고 다 여자 같아 보이고 순진해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사랑의 세계에 있어서는 누가 끼여들지 못합니다. 철석같다는 거예요. 그래요, 안 그래요? 쌍년들! 쌍년들이고 하는 것은 경고하는 거라구요. 쌍년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주의 존속 원칙이 위하는 데서부터 시작되었다는 관념이 철저해야 됩니다. 아시겠어요? 위해서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내가 일 할 때는 나라를 위하고, 세계를 위하여 일해야 됩니다. 내 마음과 몸을 투입하고 내 인격을 투입해야 되는 것입니다. 공부도 자기를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차원 높은 마음을 가지고, 세계의 못사는 사람들도 같은 형제니까 저 불쌍한 형제들을 나와 같은 자리에 세워 주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공부하는 사람은 싫다고 해도 대통령이 되는 것입니다.

나도 통일교회 교주가 되겠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언제나 뒤에서 내가 한 터전을 중심삼고 그들이 잘 사는 것을 보는 것이 더 좋아요. 종교계의 거두들을 모아서 대회를 할 때도 삼각지대에 가서 서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양반들도 내 뒤에 와서 서는 거예요. 내가 가는데로 따라다니면서 말이에요. '당신들, 앞에 서는 거 좋아하는데 가서 서라.' 하면 '아닙니다.' 하면서 싫다고 해도 나를 세워 놓고서야 사진도 찍고 그러더라구요. 위하는 사람은 중심적인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천 명을 위해서 사는 사람은 노력을 안 해도 천 명의 중심존재가 된다는 것입니다. 4천만의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는 4천만을 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자기 집보다 더 위할 수 있는 대통령을 모셨다면 그 나라는 흥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문교주라는 사람은 피땀을 흘리고 죽음 길을 싸우며 가는 수많은 무리들을 안고 있지만 그들 앞에 빚지지 않습니다. 죽는 사지에서는 '선생님, 천년 만년 사셔서 남겨진 뜻을 완결하여 해방세계를 이루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런 기도를 하고 죽게 되어 있지 '나 죽게 되었으니 살 수 있는 길을 주시옵소서.' 하고 기도하는 통일교인은 없다는 것입니다. 내가 그런 기도를 안 합니다.

오늘날 기성교회의 기도를 보라구요. 자기 아들딸, 자기 교회만을 위해서 기도한다구요. 그거 강도단의 기도이지 그것이 하나님 아들딸의 기도예요?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닙니다. 위해서 존재하는 하나님이기 때문에 전지전능한 힘을 가졌지만 하나님이 말없이 지금까지 참아 나온 것입니다. 손을 대기 시작하면 우주를 파탄시켜 버려야 된다는 거예요. 재생에 재생을 열 번이고 백 번이라도 해 가지고 한 치 한 치 수선하다 보니 수천만 년이 지났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