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 장 우리와 영계의 입장 - [8대교재교본] 천성경 지상생활과 영계

제 6 장 우리와 영계의 입장

1) 인생의 결실과 생령체(生靈體)

우리 생의 일대(一代)라는 것은 잠깐입니다. 이 일대가 영원과 순간을 오르락내리락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연장되면 무한히 연장되고, 반면에 이걸 꺾으면 여기서부터 새로운 천지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저울과 마찬가지로 오르락내리락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전부 선조들의 얼굴을 대신 쓰고 나온 역사적인 부활체입니다. 그 역사가 얼마나 되느냐? 몇십만 년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긴 역사 과정을 결국은 나 하나 만들기 위해 수고했다는 것입니다. 김씨면 김씨라는 나 하나를 탄생시키기 위해서 수많은 선조들이 왔다 갔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기 우리는 역사적인 결실체입니다. (46-155, 1971.8.13)

이러한 결실체가 벌레가 먹어서 구멍이 뻥 뚫린 과실이라면 좋겠습니까? 벌려 보면 새까만 씨가 도르륵 굴러나오는 사과가 좋습니까, 그 씨가 찐득찐득 붙어 있는 사과가 좋습니까? 여러분을 쩍 쪼개면 잘 익은 씨가 나올 것 같습니까? 여러분의 2세가 틀림없는 하늘의 열매가 된다고 생각합니까? 여러분 마음속을 쪼개보면 잘 익은 통일교회가 나올 것 같습니까?

6천 년 인류역사의 결실체가 낙과처럼 익지 못하고 떨어져서야 되겠습니까? `아이구, 내가 떨어질 것 같다. 바람이 조금만 더 불면 떨어지겠는데. 선생님, 흔들지 말고 가만 놔둬야 됩니다.` 해서 되겠습니까? 여기에 그런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반면에 `선생님이 도끼로 들이치고 가지를 마음대로 흔들어도 가지가 찢어져 나가기 전에는 절대 떨어지지 않습니다.` 하는 무리도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느 패에 속합니까? (46-156, 1971.8.13)

사람의 일생에서 태어나는 때와 결혼하는 때 그리고 죽는 때가 중요하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한 개인이 태어나서 성장하여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반드시 상대와 인연을 맺어야 되고, 그런 다음에는 최후의 길을 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한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나라도 반드시 창건기가 있고, 그 다음에는 번성기가 있는 것입니다. 다음에는 저녁 때와 같은 기간을 반드시 거쳐 나가는 것입니다.

하나의 생명체가 되었으면, 자체에서 그 생명이 결실할 수 있는 내용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아무리 결실의 때가 온다 하더라도 결실을 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의 환경을 극복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결실될 수 있는 모든 여건을 이어받고, 그 결실의 동기가 될 수 있는 자력을 지닐 수 있어야 됩니다. 그래야만 결실의 과정을 거쳐가지고 새로운 역사 과정이라든가 인류사회에 필요로 하는 하나의 결실체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36-10, 1970.11.8)

사람은 태어나서 반드시 그 자체로서 환경을 극복해야 됩니다. 그렇다고 그것을 극복하는 것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 새로운 생명을 이어받아 결실의 내용을 지닐 수 있는 과정을 거쳐 나가야 됩니다. 이 과정을 거친 후에는 올바르게 실효를 나타낼 수 있는 한 자리를 차지해야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곡식은 씨가 뿌려져 싹이 트고 자라 열매를 맺은 다음에야 주인의 손길에 의해 거두어져 창고에 저장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반드시 어떠한 목적에 필요해서 거두어지는 과정을 거쳐야 된다는 것입니다. (36-11, 1970.11.8)

그러므로 여러분은 자체에 그런 소망을 인계받을 수 있는 내적 요인을 마련하고, 그 내적 요인을 중심삼고 외적인 환경에 다시 적응하지 않으면 안 되는 입장임을 알아야 됩니다. 이것은 수세적(守勢的) 입장이 아니라 반드시 공세적(攻勢的)인 입장에서 드러내야 됩니다.

감나무를 보게 되면, 봄에 꽃이 핍니다. 감꽃은 다른 꽃처럼 유난스럽게 울긋불긋하지 않습니다. 또 감꽃은 잎사귀의 빛과 비슷합니다. 그래서 얼핏 보면 꽃이 있는지 없는지 잘 모릅니다. 또 열매가 맺어져서도 잎사귀에 싸여 있을 때에는 열매가 있는지 없는지 잘 모릅니다. 그 잎이 너무나 청청하기 때문에 열매가 있는지 없는지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여름을 지나 가을이 되면 빛깔이 변하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완숙하게 될 때는 안팎이 전부 다 붉어집니다. 그래가지고 잎은 다 떨어지더라도 그 열매만이 유난히 빛나면서 나무에 달려 있게 됩니다.

통일교인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통일교회 자체를 두고 볼 때, 1970년대가 결실의 시대라고 한다면, 잎과 같은 모든 요인은 전부 사라져야 할 것입니다. 앙상한 가지에 하나의 결실의 가치를 지닌 열매가 전체의 가치로써 드러나는 감나무의 열매와 같이 될 수 있겠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런 열매는 선전이 필요없습니다. 그 자체를 보고 안팎으로 갖추어진 그 가치를 누구든지 100퍼센트 평가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그 감나무면 감나무 자체가 열매로서 완성할 때까지 얼마나 수고의 과정을 거쳤겠습니까? 완숙한 열매로 되기까지 그 열매 자체는 어떠한 수많은 가지에서 피어난 꽃의 열매보다 더 투쟁을 했고, 더 노력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여름을 거치면서 바람이 불고 비가 오고 폭풍우가 몰아치는 그런 험난한 환경과 영양이 부족하여, 미숙한 자리에서 열매가 떨어질 수 있는 여러 가지의 환경을 다 극복했다는 것입니다.

나무가 열매를 많이 지니지 못하여 하나의 열매만 남겼다면, 그 열매는 나무 전체의 진액과 외적인 투쟁력을 종합한 내용을 지닌 열매라는 것입니다. 그런 열매만이 남게 됩니다. 나무에 단 하나의 열매가 남았다면, 그 하나의 열매가 그 나무의 가치를 대신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감나무라면 그 한 알의 감으로 말미암아 가을을 맞을 때 스스로의 보람과 위신과 권위를 세울 수 있을 것이 아니겠느냐 이겁니다.

나무에 꽃도 많이 피었고 열매도 많이 맺혔지만, 그것들이 전부 떨어져 버리고 가을이 되었는데도 하나의 결실도 맺지 못하고 앙상한 가지만 남았다면, 그 나무가 얼마나 처량하고 슬프겠습니까? 그렇지만 많은 열매는 맺지 못했더라도, 어떤 나무의 열매와도 비교할 수 없는 완숙한 하나의 열매를 가졌다면, 그 한 알의 열매를 가지고 수천 수만의 열매 앞에 당당히 자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현 사회에 수많은 종교가 있습니다. 기독교면 기독교 자체에도 수많은 종파가 있습니다. 이러한 현실 가운데 결실의 시대를 맞이한 통일교회 자체를 중심삼고 보게 되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어떤 결실을 요구하고 계십니다.

아까 말한 것과 같이 한 나무에 많은 열매가 맺혀야 되지만 그렇지 못하고 하나의 열매만을 남겼더라도, 그 열매가 그 나무로서는 그 이상 낼 수 없는 완전한 열매라면 그 나무는 그 열매로 말미암아 가을을 맞이한 가치와 권위와 위신을 세울 수 있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 통일교회도 반드시 결실이 있어야 됩니다. 통일교회가 출발해서 지금까지 모진 풍파와 시련을 겪으면서 하나의 결실을 향해서 나가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어떤 결실이 될 것이냐 하는 것이 크나큰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36-14, 1970.11.8)

이런 입장에서 여러분 스스로가 과연 나는 정상적인 봄을 맞이했느냐, 정상적인 여름을 맞이했느냐, 그리고 정상적인 가을을 맞이해서 완숙한 열매가 될 수 있겠느냐, 하는 것을 점검해 보아야 되겠습니다.

열매 자체를 보면 거기에는 나뭇가지도 있는 것이요, 나뭇잎도 있는 것이요, 뿌리도 있는 것이요, 또 씨도 있는 것입니다. 그 열매를 땄다고 하는 것은 그 나무 전체를 가졌다 하는 것과 같은 입장입니다. 열매에는 씨가 많기 때문에 그 열매를 중심삼고 수십 혹은 수백 그루의 나무를 가질 수 있습니다.

한 나무의 열매는 그 나무가 십 년이 지났든지, 이십 년이 지났든지, 그 나무가 인계해 주려는 전체적인 생명의 요인을 상속받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완전한 열매로 거두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열매가 자라는 과정에 그 요인을 한 번이라도 절단해서는 안 됩니다. 끊임없이 자라도록 놓아 두어야 합니다. 생명이 시작된 그날부터 열매로서 거두어져 주인의 손을 거쳐 창고에 들어가 저장될 때까지 그 요인이 어느 한때라도 끊겨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바람이 불 때나, 혹은 그보다 더한 폭풍우가 몰아치는 때나, 어떠한 시련의 과정이 있더라도 이 요인이 끊어져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 요인은 시종일관 연면하여 그 자체에 보유되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게 될 때, 여러분 자신들은 신앙의 길에 들어와가지고 자신의 새로운 생명이 발생하는 것을 느끼고, 희열을 느끼고, 새로운 희망을 느낄 것입니다. `나는 이런 나무가 되고, 이러한 인격자가 되고, 세계 앞에 이러한 존재가 되겠다.` 하는 결심을 하고 나선 그날부터는 가을의 수확기를 위해서 준비하는 모든 내적인 요인이 끊어짐이 없어야 됩니다. 시일이 가면 갈수록 다짐하고 거기에 플러스시킬 수 있는 과정이 없어가지고는 완숙된 결실을 볼 수 없는 것입니다. (36-16, 1970.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