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 피조세계는 이성성상을 닮아 나왔다 - [8대교재교본] 천성경 우주의 근본

② 피조세계는 이성성상을 닮아 나왔다

우주에 근본 되는 신이 계시다면, 그 신은 주체와 대상적인 관념을 가진 존재라는 이미지가 나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통일교회 원리에서 말하는 이성성상은 위대한 말이라는 결론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주체와 대상이 작용하기 시작하는 데에서 존속이 벌어집니다. 생겨나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근본 밑에서 되었기 때문에 모든 우주는 이중적입니다. 이중적으로 되어 주고받는 상호작용을 하는 것입니다. (106-297, 1980.1.13)

피조세계는 하나님의 성상을 닮았습니다. 모든 피조물은 이성성상의 분립체로 전개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주체와 대상 관계, 그 다음에 상하관계, 전후관계, 좌우관계의 상대적 관계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한 환경적 제도의 여건을 가진 목적은 무엇이겠느냐? 사랑을 목적으로 하고 움직이는 것입니다. (106-57, 1979.12.9)

주체와 대상은 어디서 나오는가? 이것이 나올 수 있는 바탕이 있어야 됩니다. 통일교회에서는 이것을 이성성상이라고 합니다. 이 주체와 대상은 인간 자체에서 만들어진 주체와 대상이 아닙니다. 여기에 그 바탕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 바탕이 이성성상이고, 이성성상 가운데는 본성상과 본형상이 있어야 됩니다. (33-36, 1970.8.2)

주체와 대상이 있어서 서로 작용하지 않으면 힘이 생기지 않는 것입니다. 힘은 혼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힘은 반드시 주체와 대상이 있어야 생기는 것입니다. 내가 대상이라 할 때, 내가 마음에 나쁘다고 느껴져도 주체가 있어야 되고, 좋다고 느껴져도 좋다고 할 수 있는 주체가 있어야 됩니다. 그래서 통일교회의 원리에 이성성상이라는 말이 있는 것입니다. (21-345, 1969.1.1)

우리 원리로 보면, 하나님은 이성성상의 중화적 주체입니다. 주체라는 것이 무엇을 중심삼고 성립되느냐? 사랑을 중심삼고 성립됩니다. 그러니까 횡적인 기반이 필요한 것입니다. 자극적인 기반을 다방면으로 갖고 싶어서 확대 전개시킨 것이 피조세계입니다. (193-219, 1989.10.4)

어떤 씨든지 두 조각이 한 꺼풀에 씌워져 있습니다. 콩 같은 것도 두 조각입니다.

하나님이 우주의 근본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형상을 닮지 않고는 근본 씨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53-232, 1972.2.28)

생명의 씨는 반드시 두 쪽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천지 이치입니다. 하나님은 이성성상으로서 한 분의 인격으로 되어 있습니다. 씨의 근본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씨에는 배아가 있는데, 배아에는 뿌리가 될 부분, 순이 될 부분이 있습니다. 자체가 다 존속할 수 있는 내용을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그대로 놔두더라도 완성한 실체를 구성할 수 있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262-148, 1994.7.23)

하나님이 이성성상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 인간도 이성성상으로 되어 있는 것입니다. 만물도 플러스 마이너스의 이성성상으로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과 인간과 만물을 합하여 연결시키면 7수가 됩니다. 이것은 단계로 보면 3단계요, 벌여 놓으면 4위기대입니다. 이 3수와 4수가 조화를 이루어 통일이 되면 7수가 됩니다. 7수는 창조 목적 완성수입니다. (26-188, 1969.10.25)

우주는 전부 플러스 마이너스로 되어 있습니다. 분자를 보더라도 플러스 이온과 마이너스 이온으로 되어 있습니다. 전부 상대권으로 되어 있는 것입니다. 원자를 보더라도 양자와 전자로 되어 있습니다. 우주 구성의 근본이 그렇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식물은 수술과 암술, 동물은 수컷과 암컷, 사람은 남자와 여자로 되어 있습니다. 전부가 상대적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상대적으로 되어 하나의 체제권으로 수습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이 주체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중심삼고 수습되어야 합니다. 그 창조의 의지에 일체화된 상대권이 만들어지지 않았다면 하나님의 창조의 기쁨은 있을 수 없습니다. (247-184, 1993.5.9)

통일교회에서 하나님을 이성성상의 주체로 계신 분이라고 말하는 것은 전부 다 과학적인 분석 결과에 의해 틀림없이 그렇게 계신다는 사실을 알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체와 대상이 완전히 하나 되면, 하나님의 힘이 그것에 영원히 존재하는 것입니다. 주체가 없고 대상이 없는 곳에는 힘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떻게 존재하느냐? 하나님 자체 내에 있는 주체와 대상의 힘이 주고받음으로써 영존합니다. (39-168, 1971.1.10)

원리는 이성성상을 말합니다. 이성성상이 왜 필요하냐? 이성성상이 없으면 창조의 조화를 이룰 수 없습니다. 이성성상이 있기에 서로 주고 받을 수 있는 것이요, 그것이 하나는 뼈와 같고, 하나는 살과 같기 때문에, 주고받음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형태가 벌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성성상 그 자체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중심삼고 그 상대세계가 생겨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이성성상은 창조적 묘미를 이루기 위해 필요한 것입니다. (27-341, 1970.1.1)

원리로 말하면 전체를 연결하는 것이 만유원력입니다. 모든 것에 하나님의 이성성상이 들어가서 그것이 전부 만유원력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핵심은 마찬가지입니다. (293-11, 1998.5.1)

남자에게는 여자의 성상이 있습니다. 여자도 남자의 이성성상의 요소를 갖고 있기 때문에, 남자가 살 수 있는 장소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성성상이기 때문에 여자한테도 남자한테도 살 수 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한 상을 가진 남편도 여자가 이성성상의 요소를 갖고 있기 때문에 부인의 가슴 속에 머물 수 있습니다. 여자도 남자의 마음 속에 머물 수 있습니다. 하나입니다. 떨어질 수가 없습니다. (256-60, 1994.3.12)

아담 해와, 남자의 조상, 여자의 조상입니다. 남자의 씨앗, 여자의 씨앗입니다. 반쪽 씨앗입니다. 모든 것이 한 껍데기 안에 두 조각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우주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통일된 하나님 가운데 이성성상이 있는 것인데, 그 이성성상에는 배아가 있습니다. 씨가 있고 핵이 있습니다. (253-254, 1994.1.30)

하나님도 무형의 주체이시기 때문에 실체 상대권, 절대적인 유형의 실체를 필요로 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는 것이 이론적인 결론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도 이성성상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무형의 성상을 유형의 실체로 전개하는 창조를 위한 것입니다. 그것을 중심삼고 우주의 피조세계를 생각해 보면, 광물세계도 전부 주체와 대상의 관계를 가지고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분자로 볼 때는 플러스 이온과 마이너스 이온이 주체와 대상의 관념이고, 원자로 볼 때는 양자와 전자가 주체와 대상의 관념입니다. (228-141, 1992.3.27)

하나님은 여자 성품도 있고 남자의 성품도 지니고 있는 이성성상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가운데 있는 남자의 성품을 모아가지고 남자를 만들었으며, 여자의 성품을 모아가지고 여자를 만든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자연히 주체와 대상으로 갈라지며, 이 주체와 대상이 서로 수수작용을 하면, 이것이 다시 합쳐서 작용을 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통일교회의 원리에서 말하는 정분합작용이라는 것입니다. 이 위대한 통일교회 원리가 앞으로 철학에 있어서나 종교에 있어서 문제가 될 것입니다. (41-290, 1971.2.17)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을 이룰 수 있는 존재로 만들었습니다. 사랑의 뜻을 이루어 나가기 위한 것인데, 인간은 하나님 속에 있는 그냥 그대로를 드러낸 것과 같은, 하나도 안 빼고 전부 자기를 닮은 것과 같은 모양의 아들과 딸로 지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이성성상이라는 말은 이 지구상에서 처음 듣는 놀라운 내용이라는 것입니다. 이성성상의 중화적 주체, 이게 어떠한 말이냐? 천지 이치가 다 들어가 있는 말입니다. (144-236, 1986.4.25)

사랑이라 할지라도 혼자 있는 데서는 통하지 않습니다. 둘이 화합하는 기준을 중심삼고 더 높은 차원으로 끌어올리기 위해서 작동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랑의 힘입니다. 사랑이 작동할 때는 쌍쌍이 다리가 없어서는 안 되기 때문에 만유의 전부는 사랑이상에 화합할 수 있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랑이상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쌍쌍이 되도록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이성성상이라는 말을 붙였지요? (177-272, 1988.5.20)

전체를 규합해서 하나의 원칙적인 기본을 따져 보면 주체와 대상의 관계, 여기서 존재와 작용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주체와 대상에 의해 존재하고 작용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는 이것을 중심삼고 이성성상이라는 개념을 캐치했습니다.

그렇다면 이성성상이 그냥 있느냐? 스톱하고 있느냐, 움직이느냐? 움직인다면 어째서 움직이느냐? 왜 움직이느냐 하는 것입니다. 손해보기 위해서 움직이느냐, 이익보기 위해서 움직이느냐? 작용하고 운동하는데 손해보기 위해서 운동한다는 법칙이 있다면, 우리의 이상작용이라든가 소망을 향해서 전진하는 작용은 있을 수 없습니다. 손해본다면 이것이 점점 작아져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작아져가지고는 스톱해 버린다 이겁니다.

그러나 이 작은 것이 이익을 위해서 움직인다면 점점 커갑니다. (125-73, 1983.3.13)

하나님 자신은 한몸입니다. 이성성상의 주체로 계시기 때문에 자체 내에서 사랑한다고는 하지만, 생각으로는 `남성격 주체의 자리다. 여성격 대상이다.` 해가지고 사랑을 느낄 수 있을는지 모르지만, 남성과 여성이 분립된 입장에서는 자극적인 충격을 느끼지는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담 해와가 하나님 자신을 제쳐놓고 자기들끼리 더 충격적으로 사랑하는 것을 볼 때, 사랑의 주체 되시는 하나님은 나빠하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 그 둘이 하나 된 그 자리를 상대로 해가지고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주체자이시기 때문에, 그 상대가 보다 가치적인 사랑을 느끼게 될 때, 하나님도 행복을 느끼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인간 창조를 중심한 사랑의 제일 법도가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사랑의 교육을 받지 않고는 그 자리에 나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51-175, 1971.11.21)

힘이란 본래 작용하면 감소가 되는데, 사랑의 힘만은 작용하면 강해집니다. 무한히 확산된 것은 그 안에 무한히 집약된 힘이 있기 때문에 끌어당기는 것입니다. 그러니 순환작용의 내적인 힘을 자체가 갖고 있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런 논리를 적용했으니 우리 통일교회에서 이성성상의 논리가 어디에나 적용되는 것입니다. 문 선생이 지혜가 있기 때문에 그걸 다 캐치해 놓았습니다. (164-89, 1987.4.26)

참사랑이 얼마나 좋으냐 이겁니다. 하나님도 사랑 때문에 태어났습니다. 사랑 때문에 생겨났습니다. 기분 좋지요? `아이고 문 총재가 그러는데 하나님이 사랑 때문에 태어났대!` 하나님 붙들고 분석해 보십시오. 하나님의 이성성상까지 선생님이 분석했습니다. 이성성상에도 또 이성성상이 있지요? 여러분도 전부 남성 호르몬, 여성 호르몬 나오지요? 모르면 병원에 가서 진찰해 보십시오. 그렇기 때문에 다 통하게 돼 있습니다. (222-179, 1991.11.3)

창조원리의 이성성상이 왜 있어야 되느냐, 어떤 것이 주체이고 어떤 것이 대상이냐 하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따지고 따져가지고 더 따질 수 없을 때 돌아나온다는 것입니다. 암만 파더라도 돌아나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천년만년 그렇게 되니까 할 수 없이 `아, 이 길밖에 없구만. 더 찾을 필요 없다.` 하게 될 때 원리라는 말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원리라는 것은 변할 수 없는 것입니다. (173-130, 1988.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