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 인간은 만우주의 사랑의 중심 - [8대교재교본] 천성경 우주의 근본

② 인간은 만우주의 사랑의 중심

가.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으로 지었다

사람의 가치가 얼마나 크냐? 하나님이 지팡이를 짚고 천년만년 그리워할 수 있는 존재가 사람입니다. 통일교회 문 선생이 보니까 요것이 우주의 근본이라 이겁니다. 이것이 안팎 관계가 됐으니, 종횡의 사랑의 세계관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상하관계와 좌우관계가 되니까 종횡의 사랑의 세계관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 중심에는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것입니다. 마음의 깊은 골짜기에 하나로 단단히 묶어줄 수 있는 그 자리는 종횡의 중심입니다. 요걸 묶어놓지 않으면 종횡의 기준이 사랑의 이상형으로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종적인 것이 아무리 있다 하더라도 횡적인 것은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을 이렇게 안 지을 수 없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48-224, 1971.9.19)

하나님은 절대적인 창조의 관을 소유한 절대자이기 때문에 절대적인 가치의 대상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 땅 위의 피조만물 가운데 그 무엇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것입니다. 가치로 보면, 상대적 존재란 하나님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존재입니다. `상대적 가치`란 말이 좀 어려운 말이지만 말입니다. 상대적 가치라는 것은, 상대라는 말을 중심삼고 그 대상의 가치라는 것은 하나님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줘 봐야 하나님 혼자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 남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자신을 투입하고 하나님 자신의 힘을, 에너지를 소모하는 것입니다. 소모전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대상의 가치적 존재로 지은 것이 인간입니다. 이와 같이 절대적인 가치의 존재가 인간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이 그런 관을 두고 가치적인 존재로 인간을 지으신 것입니다. (68-134, 1973.7.29)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 때문에 지었습니다. 인간은 왜 지음받았느냐? 사랑 때문에 지음받았습니다. 인간이 만물과 다른 것은 하나님의 아들딸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직계 사랑을 받을 수 있는 대상자로 지음받았다 이겁니다. 이것이 인간의 특권입니다. (132-245, 1984.6.20)

사람이 누구를 닮았느냐? 하나님을 닮았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사랑을 원하는 것도 결국은 사람과 마찬가지다,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사랑을 중심삼은 이상의 창조세계라는 것은 실체를 중심삼은 사랑의 표시가 형상으로 나타나고, 형상의 표시가 상징으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의 원리에서는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무엇을 중심삼고? 사랑을 중심삼고. 그 실체가 기뻐하면 그 형상 되는 존재가 기뻐하면 상징적인 것도 자동적으로 기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작용을 무엇이 하느냐? 사랑만이 한다는 것입니다. (166-48, 1987.5.28)

만물지중(萬物之衆)에 유인(唯人)이 최귀(最貴)라 했습니다. 만물 중에 인간이 중심이라는 것입니다. 무엇을 중심삼고 중심이냐? 사랑을 중심삼고입니다. 지식이라든가, 돈이라든가, 권력이라든가 하는 것들은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기 때문에 그런 것들은 언제든지 만들 수 있고,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이라는 것은 혼자서는 못 찾습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혼자서는 못 갖습니다. 사랑은 반드시 상대를 통해서 나타나고 이루어지게 되어 있지, 혼자서는 하나님이라도 못 이룬다는 것입니다. (272-276, 1995.10.8)

하나님이 천지를 누구를 위해 지었느냐? 하나님을 위해 지은 것이 아닙니다. 사랑의 대상을 위해서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이 누구입니까? 만물지중(萬物之衆)에 유인(唯人)이 최귀(最貴)라 했습니다. 사람만이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으로 지어졌다는 것입니다. 사랑의 본질적 내용을 분석해 볼 때, 속성에는 상속권이 있고 동위권, 동참권이 있기 때문에 사랑에 접하면 아무리 높은 하나님, 아무리 위대한 하나님, 아무리 우주적인 하나님이라고 해도 사랑에 놀아나는 것입니다. (179-149, 1988.8.1)

오늘날 통일교회의 가르침은 하나님도 사랑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제아무리 전지전능하고 무소부재한 전권의 하나님이라도 사랑은 상대적으로 찾아오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에, 사랑의 상대권을 갖춰야 합니다. 그 상대가 아담 해와입니다. (121-172, 1982.10.24)

하나님이 아무리 훌륭하고 절대자고 전지전능한 분이라 하더라도 혼자서는 좋은 일이 있을 수 없습니다. 행복이란 명사는, 혹은 좋다는 형용사는 혼자서 설정되는 말이 아닙니다. 반드시 상대적 관계를 갖춘 자리에 있어야 좋고 행복하다는 말이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혼자 있으면서 행복하다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전지전능한 하나님이라도 혼자서는 행복할 수 없습니다. 예를 들면 노래를 잘 부르는 음악가가 있어서 혼자 노래를 불렀다고 합시다. 행복하겠습니까?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상대가 있어야 합니다. 주고받는 것이 있어야 좋은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도 `좋다!`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님 혼자 있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65-20, 1972.1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