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인간은 피조만물의 중심 - [8대교재교본] 천성경 우주의 근본

다. 인간은 피조만물의 중심

하나님은 누구 닮았다구요? 우리 닮았습니다, 남자 여자. 여러분 마음이 보이지 않지요? 마음 보고 싶소, 안 보고 싶소?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영적인 입장에서 보면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체(體)가 없습니다. 지금까지 체가 없습니다. 아담 완성이 이루어지지 않아 체가 지금까지 없다 이겁니다. 마음 같은 우주에 마음 같은 주인, 마음 같은 스승, 혹은 관리자, 마음 같은 부모로 계십니다. (197-44, 1990.1.7)

만물은 하나님의 아들딸을 지을 수 있는 토대입니다. 관계되고 연결될 수 있는 토대입니다. 동물도 그렇고 광물도 그렇습니다. 광물세계에도 플러스와 마이너스가 있습니다. 식물세계에도 전부 암술과 수술이 있고, 동물세계에도 암놈과 수놈이 있습니다. 전부 다리를 놓아 모든 것이 결집되어 창조된 최고의 걸작품이 인간의 내적 형상과 외적 형상입니다. 그것을 실체화시켜 남자와 여자 성상을, 그 모든 형상을 부여해 상징적이고 형상적이며 실체적으로 다 드러내가지고, 다리를 놓게끔 해서 전부 다 연결되게, 관계를 맺도록 한 것입니다. (144-237, 1986.4.25)

하나님이 피조물의 중심인 인간을 필요로 하는 것은 돈 때문이 아니요, 지식 때문도 아니요, 권력 때문도 아닙니다. 오직 사랑 때문에 필요로 합니다. 그렇지 않고 하나님 혼자 사랑받겠다는 입장이 되면 사랑해 줄 수 있는 아무런 존재가 없습니다. 결론이 이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필시 이 세계에 자기가 사랑할 수 있는 대상자를 만들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렇게 볼 때, 피조세계에 그 사랑의 대상이 될 수 있는 배포 큰 존재가 누구냐? 온 우주를 창조한 하나님 앞에 상대적인 여건을 갖춘 존재는 인간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나는 우주의 주인이다. 우주에서 제일이다.`라고 할 수 있는 배포를 가져야 합니다. (148-309, 1986.10.26)

하나님은 기쁨을 더하고 기쁨의 자극을 연속시키기 위하여 만물을 지었습니다. 순간적인 기쁨을 느끼기 위해 지은 것이 아니라, 피조물을 대할 적마다 가슴 깊이 스며드는 기쁨의 자극과 행복을 느끼기 위해서, 최고의 심정을 기울여 지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5일간 만물을 지은 후, 6일째 되는 날에 기쁜 심정으로 인간을 지었습니다. 자신의 형상을 본따 지은 우리 인류의 조상은 지극히 아름다운 존재요, 지극히 귀한 존재요, 지극히 자랑스러운 존재요, 지극히 기쁜 존재요, 지극히 영광스러운 존재요, 지극히 사랑하고 싶은 존재였습니다. (9-194, 1960.5.22)

하나님은 전지전능한 분이기 때문에 지식도 필요없고, 능력도 권력도 필요없고, 금전도 필요없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에게 있어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이 사랑할 수 있는 하나의 대상입니다. 그 대상은 피조만물 가운데서 가장 귀하고 가장 영장이 되는 사람 외에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제일 좋아할 수 있는 것이 사람이라고 했는데, 하나님은 왜 사람을 좋아하는가? 하나님도 사랑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사랑이란 혼자서는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는 것입니다. (112-291, 1981.4.25)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을 우리는 모든 체에 상징적으로 다 투입했다는 것입니다. 눈은 누구를 닮았다구요? 하나님. 그렇기 때문에 눈은 얼굴 가운데서 깊은 곳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모든 것을 관찰합니다. 그 다음에 코는 아담 해와를 상징합니다. 이게 중심입니다. 그 다음에는 입은 만물입니다. 횡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팔 삼십이(4×8〓32), 서른 두 개의 이를 갖고 있습니다. 세상 만물을 중심삼고 4수를 중심삼고. 그 다음에 귀는 사방을 상징합니다. 이 목 위는 하늘나라입니다. 하늘나라의 정보처가 있습니다. (201-84, 1990.3.4)

여러분의 생명의 뿌리가 어디에 있느냐? 타락하지 않은 부모에게 있습니다. 그럼 타락하지 않은 선한 부모의 자리는 어떤 자리냐? 하나님께서 이성성상의 주체이신 만큼 자기의 이성성상을 전개하여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우주를 짓고 인간을 지은 것입니다.

아담은 하나님의 남성적 성품을 전개시킨 것이요, 해와는 하나님의 여성적 성품을 전개시킨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 일반 사람들이 보통 `하나님 아버지!`라고 하는 것은 한 분이니까 그렇게 말하겠지만, 그 한 분이라는 개념 가운데는 `하나님 아버지, 어머니`라는 개념이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140-124, 1986.2.9)

만일에 인간 조상 아담과 해와가 타락하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 것이냐? 아담과 해와는 하나님과 한몸이 되어, 하나님과 같은 자리에서, 하나님의 창조의 위업을 이어받아, 하나님이 창조 후 기뻐하셨던 것과 마찬가지의 자리에 서게 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그런 관계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타락하지 않은 본연의 사람은 하나님의 성전이 되는 것입니다. (54-64, 1972.3.11)

하나님이 아버지가 되고, 인간은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더라도, 아버지는 위에 있고 아들은 아래에 있는 상하관계와 같은 기분이 든다는 것입니다. 그때에 우리 인간은 어떤 생각을 하느냐? `아버지, 아버지가 앉으신 자리를 나에게 한번 주세요. 나도 아버지의 자리에 앉고 싶어요.` 하는 욕망이 우리 인간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이 `네 이놈, 안 된다!` 하면 다 깨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럴 수 없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이 그런 욕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어서 그래라, 어서 그래라!` 하시면서 그 자리까지도 우리 인간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그 자리까지 인간에게 주고 하나님은 우리 마음에 임재하시어, 우리의 마음을 성전으로 삼고 계시겠다는 것입니다. (54-90, 1972.3.20)

심신일체가 되면, 우주의 힘이 보호해 줍니다. 우주의 힘이 보호해 주는 몸과 마음이 되면, 부모도 우주의 인연을 가진 부모, 형제도 그런 인연을 가진 형제, 이렇게 모두가 인연을 맺고 있습니다. 민족, 나라가 인연을 맺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멋진 결론입니다. 그래서 나라를 넘어서 다른 나라에 가더라도, 그런 일체권을 이루면 거기서도 통합니다. 어디에도 통하는 것입니다.

축구를 할 때 볼이 굴러가다가 멈추면 어떻게 돼요? 그 표면 전체가 합할 수 있는 데는 수직선을 통합니다. 그래서 구형체를 이상적인 존재라고 합니다. 표면의 어떤 곳에서도 그 수직선이 안착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굴러다니는 것입니다. 어디든지 다 좋기 때문에 말입니다. 그래서 심신일체권, 90각도가 되면 어디든지 다 맞습니다. 서양사람과 동양사람, 과거의 사람과 현재의 사람, 미래의 사람 할 것 없이 어디든지 다 맞는 것입니다. (205-53, 1990.7.7)

본성이 가는 길을 가면, 우주가 하나로 벌어집니다. 그런 무엇이 있어야 됩니다. 그런 자리에 들어가면 자기 마음과 말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서는 마음과 말을 합니다. 뭘 하려고 생각하면 벌써 답변이 나옵니다. 그런 경지까지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있는 사람이 자기가 갈 길을 모르겠어요? 벌써 갈 길이 확실해서 우주의 모든 작용의 힘들이 돕게 됩니다. 손을 끌고 시험장에 들어가면 벌써 모든 것이 협조합니다. 그래야 큰일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120-314, 1982.10.20)

우리가 자연을 보고 `아, 나는 사계절 필요없다. 나는 봄만 필요하지, 여름이나 가을이나 겨울은 싫다.` 할 수도 있겠지만, 하나님한테 물어 보면 `난 사계절을 다 좋아한다.`고 답변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싫더라도 여름을 좋아하는 것을 배워야 되겠고, 가을과 겨울을 좋아하는 것을 배워야 되는 것입니다. 눈이 오는 겨울이 되면, 하나님은 흰 눈이 세계적으로 쌓인 것을 보고 좋아할 때 `아, 나도 좋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합니다.

하나님 같은 마음으로 자연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홍수가 나고 벼락이 칠 때는 `아이구, 저거 나는 싫다.`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허허, 저거 키스하고 결혼하는구만!` 이렇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싫다는 사람들에게 `하하하하, 네 이 녀석들아! 못된 녀석들아!` 한다는 것입니다. (133-29, 1984.7.1)

지혜의 왕이시고 전체의 중심이신 하나님이 참다운 사랑이나 참다운 이상이나 참다운 행복이나 참다운 평화의 기원을 주체와 대상, 이 양자 사이의 어디에 두느냐? 이것이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주체가 계신 반면 대상이 있는데, 주체를 위하는 길과 대상을 위하는 길, 이 두 길 가운데 이상의 요건을 어디에다 두느냐 하는 것이 창조주이신 하나님으로서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참된 이상, 참된 사랑, 참된 평화에 있어서 주체를 중심으로 하고, 대상이 주체를 위하는 데 이상적 기원을 둘 것이냐, 대상을 중심으로 하여 주체가 대상을 위하는 데 이상적 기원을 둘 것이냐 하는 문제를 생각하신 하나님은 그 이상적 기원을 주체 앞에 대상이 위하라고 하는 입장에 세운다면, 하나님이 그러함과 동시에 모든 사람도 자기가 어떠한 대상을 지닐 수 있는 입장에 선다면 그와 같이 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 될 수 있는 길이 막혀 버립니다.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 될 수 있고 평화의 기원이 될 수 있는 그 길은 어디에 있느냐? 하나님 자신뿐만 아니라 참된 인간을 위해서 사는 존재라는 원칙을 세우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된 사랑은 위하는 데서부터, 참된 이상도 위하는 데서부터, 참된 평화, 참된 행복도 위하는 자리에서 성립되지, 위하는 자리를 떠나서는 찾을 수 없습니다. 이것이 천지 창조의 근본이라는 것을 우리 인간은 몰랐습니다. (75-318, 1975.1.16)

남자와 여자가 태어난 것은, 남자는 남자를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 여자를 위해 태어났고, 여자는 여자를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 남자를 위해 태어났습니다. 태어나기를 자기를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자기를 위해서 태어나지 않았는데도 자기를 주장합니다. `나`라는 이 사상을 깨뜨려 버려야 됩니다. 이것만 깨뜨려 버리면 통일의 세계는 벌어집니다. (61-266, 1972.9.1)

자기의 가치를 자기에게서 추구하기보다는 상대에게서, 즉 상대적 기준에서 추구할 수 있는 길을 탐구하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이 아닙니다. 언제나 어디서나 심정의 터전은 상대권을 가졌기 때문에, 그는 외롭지 않고 행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59-201, 1972.7.16)

조화라는 것은 혼자 벌어지는 법이 없습니다. 재미라는 것도 혼자 벌어지는 법이 없습니다. 행복 또한 혼자 벌어지는 법이 없습니다. 절대자라 하더라도 혼자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반드시 자기에 대응할 수 있는 상대적인 여건이 있어야 됩니다. 절대자 앞에는 절대적인 상대자가 있어야 되고, 절대적인 주체 앞에는 절대적인 대상이 있어야 행복이니, 조화니, 기쁨이니, 춤이니, 노래니 하는 것들이 있는 것입니다. (38-157, 1971.1.3)

오늘날 기성교인들은 `전지전능한 하나님은 본래부터 영광 중의 영광의 주체요, 행복 중의 행복의 주체요, 모든 사랑과 생명의 주체이기 때문에 그로 말미암지 않음이 없다.`고 큰소리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절대자라 하더라도 절대적인 대상을 갖지 않으면 어쩔 수 없이 불행합니다. 하나님도 절대적인 입장에 설 수 있는 하나의 대상을 찾지 못하면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절대자라 하더라도 절대적인 대상을 갖지 않으면 어쩔 수 없이 불행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망하지 않기 위해서는 할 수 없이 상대적인 존재를 만들어야 됩니다. (38-158, 197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