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인간성장의 길은 하나님 자신의 전개과정 - [8대교재교본] 천성경 우주의 근본

나. 인간성장의 길은 하나님 자신의 전개과정

인간 창조란 하나님 자신이 커온 것을 실제로 재차 전개시켜 나오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하나님이 흥미를 느끼고, 자극을 느끼는 것입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화가가 걸작품을 만들기 위해서 그림을 그리는 것은 자기 내적인 소성을 전부 실제 형상으로 전개시키는 것입니다. 자기 뼛속 깊은 데까지 짜내서 투입하는 것입니다. (225-200, 1992.1.20)

인간의 완성은 어디에 있느냐? 남자면 남자 자체로 완성할 길이 없고, 여자면 여자 자체로 완성할 길이 없습니다. 그것은 전부 다 반제품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남자와 여자가 완전히 하나 된 사랑을 중심삼고만이 완성된다는 것입니다. 아담이 완성하는 데는 누가 절대 필요하겠습니까? 하나님이 절대 필요한데, 하나님은 종적으로 절대 필요합니다. 아담이 완성되려면 종횡의 인연을 가져야 합니다. 종횡의 사랑의 인연을 갖지 않으면 회전운동, 구형운동이 불가능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횡적으로 아담에게 절대 필요한 것은 해와입니다. 마찬가지로 해와에게도 절대 필요한 것이 아담입니다. (145-321, 1986.6.1)

아담 해와를 두고 하나님이 사랑한 것이 뭐냐? 아담 해와가 아들딸로 자라왔다는 것은 하나님도 그렇게 자라나왔다는 것을 뜻합니다. 하나님도 아기와 같은 때가 있었고, 형제와 같은 때가 있었고, 부부와 같은 때가 있었고, 부모와 같은 때가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창조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무형의 하나님입니다. 무형의 하나님이 그렇게 커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형제같이, 부부같이, 또 아들딸같이 그렇게 창조해 나왔다는 것입니다. (254-276, 1994.2.15)

아담 해와를 하나님이 지었다면, 어떤 단계로부터 지었는가? 아담 해와를 장성한 사람으로 지었다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아기로부터 지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기를 밴 어머니가 품어 키우는 것과 마찬가지의 과정을 거쳐서 지었다는 논리를 세우지 않고는, 이 모든 3단계의 질서를 통한 존재의 형성이라는 것을 설명할 도리가 없습니다. 유아기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장성기가 있었고, 완성기가 있었습니다. 이것은 천리의 도리입니다. (225-198, 1992.1.20)

아담 해와에게 유아기가 있었는데, 그 유아기는 어떤 유아기였겠는가? 무형의 하나님이 무형의 세계에서부터 유형의 과정을 거쳐 올 수 있는, 아기의 존재를 품고 키웠다는 논리로부터 시작해야 됩니다.

그러면 아기가 태어나 자라서 성숙해가지고 결혼할 수 있는 자리까지, 부모가 될 수 있는 자리까지 어떻게 나가느냐? 하나님이 청년기·장년기·노년기와 같은 과정을 거쳐온 사실을, 하나님이 자라던 무형의 과정을 실체로 보기 위한 존재가 자녀라는 것입니다. 이런 논리가 형성되어야 부자일신(父子一身)이라는 논리가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는 종적이고, 하나는 횡적이니, 종횡일신(縱橫一身)의 이론을 취할 수 있습니다. (225-198, 1992.1.20)

사랑하는 부부, 아담 해와가 자녀를 낳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무형 실체가 성상·형상으로서 사랑을 가지고 하나 되어 창조하고 부모 입장에 선 것과 같습니다. 제1의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보이는 제2창조주로 만든 아담 해와가, 실체의 제2하나님의 입장에 선 아담 해와가 다시 아들딸을 갖고 낳음으로써 부모 입장으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어린 자녀를 통해 실체 아담 해와의 유아시대·형제시대·부부시대·부모시대 등 하나님의 지나간 과거를 또다시 실체로서 전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만지고 싶고 사랑하고 싶은 것입니다. 자녀는 제2의 자기 자신입니다. (258-241, 1994.3.20)

결혼한 부부의 자리는 엄청난 자리입니다. 역사시대에 인류가 소망하던 자녀로서의 희망봉이 꽃피는 자리요, 형제로서 꽃피는 자리요, 부부로서 꽃피는 자리입니다. 이래가지고 부부로서 사랑했던 하나님이 창조를 시작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아들딸을 낳은 거기서부터 아담 해와가 창조하는 것입니다. 실체적 창조주의 입장이 되어 나를 중심삼고 평면적 창조주의 입장에서 아들딸을 낳은 것입니다. 제3창조주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것이 자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는 자녀를 하나님 대신 실체 부모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자녀를 양육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보이지 않는 무형의 하나님이 자녀를 양육하던 것을 내 실체로 느끼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그렇게 커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자녀시대·형제시대·부부시대·부모시대로 발전해 나왔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과거사를 중심삼고 자기 아들딸을 낳아 키우면서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아기시대의 제1창조주, 무형의 창조주의 모습을 보는 것입니다. 제2창조주, 볼 수 있는 창조주의 자리에서 아기를 키우고 형제로 키워서 부부를 이루게 하는 것은, 하나님이 아담 해와를 아들딸로서, 형제로서 키워 오던 것과 마찬가지로 무형의 내적인 모든 요구의 실상을 실체적으로 아담 해와를 통해서 평면도상에서 보기 위한 것입니다. 이것이 아들딸입니다. (263-149, 1994.8.21)

하나님이 창조주로서 역사적·내정적인 원칙을 중심삼고 존재의 기원으로부터 지금까지 성장한 과정을 실체적으로 전개해 나오는 과정이 아담 해와 창조 과정입니다. 그러면 어디서부터 시작되느냐? 아주 작은 세포가 합해져서 큰 세포가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아기가 열 달 동안에 자라는 과정을 거쳐 나가면서 남자 여자의 형태로 갈라져 나오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되느냐? 그렇지 않으면 생명 유전을 어떻게 하느냐 하는 논리에 대해 해석할 방법이 없습니다. 유전적 내용을 어떻게 전개시키느냐 하는 논리를 세울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의 본질적인 무형의 형태와 유형적인 형태의 본질이, 일체적 내용의 인연을 중심삼고 횡적으로 전개될 것을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주체 앞에 상대권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내적 성상은 외적 형상과 모든 근원적인 면에서 영합도 되고, 통할 수 있는 내연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이 태어나서 자라는 과정은, 보이지 않는 무형의 신이 실체를 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내적인 모든 존재가 표현되어서 나타나니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내가 나타난 실체라는 것입니다. 무형의 실체가 유형의 실체로 전개되느니만큼 거기에 모든 전부를 투입해야 됩니다. (225-199, 1992.1.20)

하나님이 사랑을 찾아가는 대상을 만들려고 할 때 누구를 닮게 만들겠습니까? 하나님 닮게 만듭니다. 그 하나님을 닮게 만든다면, 하나님 가운데 있는 것처럼, 남자 성품이 있어야 되고 여자 성품이 있어야 됩니다. 자기를 닮았는데 자기 본성상에서부터 전부 다 빼내서 보이지 않는 성상, 보이지 않는 생각의 형태를 실체로 전개시킨 것이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의 창세기에 나오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인간을 창조했다는 말이 맞는다는 것입니다. (170-169, 1987.11.15)

하나님과 인간이 박자가 맞아서 화동할 수 있는 기쁨의 박자 앞에, 모든 것이 자기 모양대로 음률을 맞출 수 있고, 자기 모양대로 전부 다 상징적으로 형상적으로 춤을 추고 이럴 수 있는 기쁨의 세계가 본연의 동산입니다. 그렇게 되면 만물도 `아하, 내가 태어난 보람이 있구나!` 이럴 것입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과 인간이 사랑의 잔치를 하는 잔칫날에 동참할 수 있는 인연을 가지고, 그 기쁨을 서로 나눌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는 사실이 피조세계의 지극히 작은 만물이 바랄 수 있는 소원이 아니겠느냐는 것입니다. (166-47, 1987.5.28)

아무리 진리라 해도 진리의 핵심이 뭐냐? 돈도 아니요, 권력도 아니요, 지식도 아닙니다. 사랑입니다. 본질적 사랑은 종적인 곳에 있는 것이요, 진리적 사랑은 횡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만물을 보아 하나님을 알지니, 아담 해와가 하나님의 형상이니 아담 해와를 보아서 하나님을 안다는 겁니다. 왜? 아담 해와는 종적인 참사랑의 대상적 주체이기 때문에, 이를 둘 다 완전히 딱, 남자 여자의 사랑을 동서남북을 통해서 세계의 축을 갖다 맞추게 될 때는, 하나님과 영계가 통하고 만세계가 다 통한다는 것입니다. (179-292, 1988.8.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