③ 하나님의 우주 창조 동기는 사랑 - [8대교재교본] 천성경 우주의 근본

③ 하나님의 우주 창조 동기는 사랑

하늘과 땅 자체도 스스로 있고 싶어 있게 된 것이 아니라, 어떠한 힘의 원천에 입각하여 생겨났다는 것을 생각할 때, 여기에서도 더 한층 올라가 반드시 중심적인 주체를 갖추어 하늘땅을 움직이든가, 혹은 여기에 창조를 하든가 하는 힘의 작용체, 근본의 작용체가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입장에 있는 그분을 우리는 하나님이라고 하는데, 민족이 다르고 언어가 다르다고 다르게 표현하는 명사가 문제가 아닙니다. 어차피 이 우주의 중심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전체가 작용하고 이동하더라도 그 이동하는 데에 따라 이동하지 않고, 움직이는 상대적인 세계의 중심에서 억천만 년 움직이지 않는 중심적인 본체가 있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154-298, 1964.10.5)

우주의 근본을 헤쳐 봤을 때 하나님은 왜 생겨났느냐 하는 문제는 근본에 해당합니다. 하나님은 왜 생겨났느냐, 무엇 때문에 생겨났느냐? 하나님은 무엇을 하느냐? 이런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의 맹목적인 신앙시대는 지나갔습니다. 덮어놓고 하나님을 믿는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이러한 추리적인 결론에 이어서 적절한 신에 대한 내재적 성품, 외향적인 뜻에 대한 세계와의 관계, 신에 있어서의 안과 밖의 관계, 이 관계라는 게 문제입니다. (191-13, 1989.6.24)

인간이 제1의 존재가 될 수는 없습니다. 제아무리 잘났다고 하더라도 원인적 존재가 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디까지나 제2의 존재입니다. 결과적 존재입니다. 그러면 이 우주의 원인적 존재는 무엇이냐? 신이 있다면 신 자체가 원인적 존재이며 절대자입니다. 그러한 절대자가 있다고 한다면 절대자 자신이 무엇을 필요로 할 것이냐? 무엇을 중심삼고 인간이나 피조물과 관계를 맺으려고 할 것이냐? 이것이 근본 문제입니다. 신학에서 취급해야 되고, 철학에서 취급해야 될 중요한 문제입니다. 신과 인간, 원인과 결과를 연결할 수 있는 내용이 무엇이겠느냐 이겁니다. (198-283, 1990.2.5)

하나님은 무엇 때문에, 어떻게 생겨났느냐? 사랑에 의해서 생겨났습니다. 우주의 근본은 어떻게 이뤄졌느냐? 사랑의 씨앗이 있어 그것이 상대를 중심삼고 흡수하다 보니 하나님 자체가 성상과 형상으로 구성되게 되었습니다. 무엇을 중심삼고 그렇게 되어 있느냐? 사랑을 중심삼고 형성되어 있습니다. 여러분과 마찬가지입니다.

어머니 아버지의 사랑에 의해서 받은 여러분의 생명의 씨, 한 세포가 커 나와서 지금 여러분이 생겨난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도 그렇게 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눈이 생겨나고 코가 생겨나고 이렇게 생겨났습니다. 딱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207-27, 1990.10.21)

참사랑이라는 것은 제일 깊은 데서부터 출발합니다. 그래, 참사랑의 기원이 뭐예요? 하나님, 갓(God)입니다. `갓` 하면 한국에서는 옛날 사람들이 쓰던 모자를 갓이라고 그래요. 모자는 꼭대기에 쓰는 것을 말합니다. 같은 뜻입니다. 여기에서 성상과 형상이 왜 갈라지느냐가 문제입니다. 우주의 근본이 어디냐? 우주의 근본이 어떻게 생겨났느냐? 이게 문제입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생겨났느냐 이겁니다.

하나님을 봤습니까? 그거 어떻게 생겨났습니까? 여러분이 어떻게 생겨났습니까? 우주의 모든 요소의 진액을 종합해 태어난 이것이 바로 `나`입니다. (207-24, 1990.10.21)

사랑의 중심은 하나님일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주 생성 이전부터 있는 유일적이요 영원적이며 불변적인 존재입니다. 그런데 사랑은 심정의 흐름입니다. 내적인 심정이 외적으로 흐르는 것이 사랑입니다. 고로 하나님의 본질은 심정입니다. 이러한 신이 바로 존재론적으로 다룬 우주생성의 근본 원인인 통일적 존재였던 것입니다.

이 근본 원인에서의 우주의 생성이 바로 하나님의 우주창조였음은 재언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그런데 신은 어떻게 우주와 인간을 창조할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이 심정을 지녔기 때문입니다. 심정이 있는 곳에서만 생명이 나타날 수 있으며, 생명이 있는 곳에 발전 운동(창조)이 벌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창조에는 반드시 목적이 있는바, 그 이유는 심정이란 본래 목적을 지향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창조 목적은 심정을 충족시키는 기쁨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기쁨은 피조물, 특히 인간이 하나님을 닮았을 때 오는 것입니다.

고로 하나님의 사랑과 창조성을 닮은 인간과 국가가 하나님이 창조코자 하는 목표였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이상이 그것을 추구하는 것으로 봐서도 알 수 있습니다. 이상이란 당연히 향유하도록 되어 있는 세계를 추구하는 열망인 것입니다. (65-258, 1972.11.26)

우주의 근본이 뭐냐? 이 우주가 생겨나기 전에는 무엇이 있었느냐? 하나님? 하나님만 있었어요? 사랑이 보여요? 사랑은 실체가 없는데 사랑이 어디에 있습니까? 사랑은 컨셉(concept:개념)입니다. 하나님에게 있어서도 사랑은 컨셉입니다. 하나님에게도 사랑은 컨셉이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293-133, 1998.5.26)

하나님이 창조를 왜 했느냐? 사랑 때문에 했습니다. 사랑은 혼자서는 할 수 없습니다. 상대가 있어야 합니다.

혼자 있는 사랑은 종적인 사랑이기 때문에 환경적 여건이 없습니다. (193-303, 1989.10.3)

하나님은 절대자인데, 무엇이 그리워서 사람을 창조했느냐? 무슨 황금이나 지식도 필요하지 않은 전지전능한 하나님이, 갖추지 않은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하나님이 무엇이 필요해서 사람을 지었느냐? 즉 창조의 근본 동기가 무엇이냐? 그것은 권력도 아니고, 지식도 아니고, 소유도 아닙니다. 하나님에게는 사랑의 기반이 없었습니다.

하나님도 혼자서는 사랑을 못 이루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지창조의 동기가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149-150, 1986.11.21)

하나님은 왜 천지를 창조했느냐? 그 전지전능한 절대자가 무엇이 없어서 사람을 창조했느냐? 사랑 때문에 창조했습니다. 사랑은 상대가 없이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상대가 없는데 작용하게 되면 손해가 납니다. 전부 자기를 보호하게 되어 있습니다. 절대 손해나는 곳에는 움직이지 않습니다. 사랑은 상대가 나타나면 없는 것 같은데도 뛰쳐나옵니다. 하나님에게도 사랑이 있는데, 남성적인 하나님이 가만히 혼자 있을 때는 그 사랑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이것을 나타내 보일 수 있는 상대가 바로 사람입니다. (60-76, 1972.8.6)

전지전능한 하나님, 무소부재한 하나님이 무엇이 부족해서 사람을 지었을까요? 하나님에게 돈이 필요하고, 금덩이가 필요하고, 다이아몬드가 필요합니까? 그런 것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러면 지식이 필요합니까? 하나님은 지식의 왕이기 때문에 지식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렇다면 권력이 필요합니까? 하나님에게 권력이라는 것은 있어도 그만이고 없어도 그만입니다. 하나님에게 부족했던 것은 사랑입니다.

사랑이란 상대적 관계에서만 성립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도 사랑을 필요로 하지 않고는 이 창조세계와 인간세계가 관계를 맺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랑을 가지고 찾아오지 않고는 존재세계와 상관이 없다는 결론이 나오기 때문에 하나님은 사랑을 표준으로 정하고 나오는 것입니다. (121-99, 1982.10.24)

하나님이 왜 천지를 창조했느냐? 아무리 절대자라고 하더라도 혼자서는 기쁨을 느낄 수 없으며, 설령 기쁘다 하더라도 기쁨의 자극을 느낄 수 없기 때문에 창조를 했습니다. 절대자가 아무리 `나는 절대자다. 나는 사랑의 주인공이다. 생명의 주인공이다.`라고 한다 해도 절대자 혼자서는 사랑의 자극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요, 천지가 내 몸 속에 있다는 생명의 자극을 느끼지 못하는 것입니다. (38-152, 1971.1.3)

하나님이 자신만 생각했다면 천지창조를 했겠어요? 창조는 힘의 투입을 말합니다. 예술가는 최고의 걸작품을 만드는 것이 소원입니다. 예술가는 걸작품을 만들기 위해 온갖 정성을 투입합니다. 전부를 투입하는 데서만이 완전한 걸작품이 나옵니다. 더 이상 할 수 없다 했을 때 비로소 걸작품이 생겨납니다. 창조는 투입하는 데서부터 시작합니다. 힘을 투입해야 창조가 가능합니다. 힘을 투입하지 않고는 어떤 것도 생겨나지 않습니다.

완전한 투입을 하는 데서 완전한 대상이 성립한다는 원칙을 두고 볼 때, 하나님은 주체로서 대상을 만들기 위해 완전히 투입했습니다. 하나님 자신이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대상을 위해 있겠다고 운동을 시작한 것이 창조입니다. (78-111, 1975.5.6)

창조한다는 것은 힘의 투입을 말합니다. 투입을 했는데, 얼마나 투입했느냐? 하나님이 말씀으로 지을 때 `이렇게 되어라, 저렇게 되어라.` 하고 장난식으로 창조한 것처럼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여기에는 참된 생명을 완전히 투입하고, 참된 사랑을 완전히 투입하고, 참된 이상을 완전히 투입했습니다. 우리도 정성 안 들이고 피와 살을 투입하지 않은 것은 사랑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창조하기 전과 창조하고 난 후가 다릅니다. 창조하기 전에는 자기를 생각했지만 창조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대상을 위했습니다. 내가 있는 것은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상대를 위해서다, 아들딸을 위해서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69-82, 1973.10.20)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할 때 자기보다도 더 훌륭한 사랑의 상대를 만들려고 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모든 요소, 보이지 않는 무형의 요소를 백 퍼센트 실체화시키기 위해서 투입하고도 더 투입하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 말이 뜻하는 것은 투입하고 잊어버릴 수 있는 그 자리에서만이 참사랑의 기원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간단한 내용입니다. 바로 이것이 우주의 근본원리입니다. (203-232, 1990.6.26)

사랑을 점령하려면 투입하고 잊어버리고 투입하고 잊어버려야 됩니다. 왜 그러한 사랑을 가져야 하느냐? 사랑은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작아지는 것이 아니고 커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역학세계에서의 자연현상은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작용하면 작용할수록 작아지지요? 자연세계는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작아지지만, 참사랑의 세계는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커갑니다. 하나님이 그것을 알았기 때문에 참사랑을 중심삼고 창조를 시작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237-127, 1992.11.13)

우주가 어떻게 출발했느냐? 하나님을 두고 볼 때 전부가 위하는 데서부터, 투입하는 데서부터 출발한 것입니다. 자기를 소모하는 데서부터 시작됩니다. 그러면 자기를 소모해가지고 상대를 만들어서 무엇을 하자는 것이냐? 둘 다 소모하는데, 소모하고 얻는 것이 사랑입니다. 사랑만 가지면 아무리 소모해도 좋다는 말입니다. 그러한 개념이 사랑이기 때문에,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님이 창조를 시작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손해나는 일을 한 것이 아닙니다. 투입하는 것은 손해인데, 하나님이 왜 그렇게 했겠습니까? 사랑에는 모든 것을 채우고도 남을 수 있는 힘이 있기 때문에 소모시켜서 투입했지만, 그 대신 사랑을 찾아오는 것입니다. 참사랑은 투입할수록 점점 작아지는 것이 아니고,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커갑니다.

그렇지 않고 참사랑이 작아진다는 원리라면, 하나님 자체가 투입해가지고 소모되는 것입니다. 반대가 됩니다. 참사랑은 투입하면 투입할수록 커가는 것입니다. (237-126, 1992.11.13)

사랑에는 창조 능력이 있기 때문에 지치지 않습니다. 사랑의 마음을 가지면, 아무리 투입해도 소모된 에너지 이상 언제나 보충할 수 있는 사랑의 힘이 있기 때문에 지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렵고 고통스럽더라도 싫지 않은 것입니다. 그것이 싫으면 갈 수가 없습니다. 사랑을 위하는 길에는 싫은 마음을 영원히 가질 수 없는 것입니다. 참사랑을 위하는 길에는 영원히 싫은 마음이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본질에는 원수의 개념이 없습니다. 악의 개념이 없습니다. 그것은 참사랑 가운데 있기 때문입니다. (237-130, 1992.11.13)

하나님의 창조이상을 중심삼고서 투입, 투입, 투입해야 합니다. 투입을 하면 돌고 도는 겁니다. 공기를 예로 들어서 절대 저기압과 고기압이 있다면 그 중간의 기압이 생깁니다. 누가 부르지 않아도 하늘이 내려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백 퍼센트 이상 투입하고 싶어하는 사람은 항상 하늘이 채워주는 것입니다. 우주의 원칙이 그러합니다. 완전히 투입하고 잊어버리는 데는 영원한 운동이 연결되기 때문에 그 기준에서 영생의 논리가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영생, 영원한 생명, 그렇지 않으면 통일원칙을 어디에서 끄집어낼 수 있겠습니까? 위하게 되면 빙빙 돌지요? 빙빙 돌아서 어디로 갑니까? 점점 작아져서 올라갑니다. 올라가는 것입니다. 빙글빙글 돌아 넓게 퍼지면 내려가지만, 점점 쓱 해서 올라가기 때문에 하나님은 자동적으로 아담 해와의 어깨 위에 양쪽 발을 올려놓지 않을 수 없습니다. (205-96, 1990.7.7)

하나님이 왜 계시느냐? 무엇 때문에 계시려고 하느냐? 사랑 때문에 계시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의 상대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은 사랑의 상대를 창조해야 되었던 것입니다.

창조의 본질적 이상이 사랑을 중심삼고 창조를 시작했다는 것을 그 동안 우리가 전혀 몰랐다는 것입니다. 사랑 때문에 모든 피조세계가 창조되었다는 것입니다. (208-235, 1990.11.20)

하나님의 소원은 참되게 줄 수 있는 세계적인 발판을 갖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주는 데 있어서도 어느 누가 참소할 수 없고, 받는 데 있어서도 어느 누가 조건을 제시할 수 없는 자유롭고 평화롭고 행복한 자리를 소원합니다. 그러한 자리를 세계적으로 넓혀서 온 만민을 거기서 살게 하는 것이 하나님이 거두려는 소기의 목적입니다. (13-249, 1964.4.12)

사랑이 먼저냐, 생명이 먼저냐? 사랑이 먼저입니다. 지구가 하나님의 생명으로부터 나왔다고 생명이 제일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사랑이 제일이라고 합니다. (86-82, 1976.3.7)

하나님은 천지창조를 생명에서부터 했다고 하더라도 그 생명의 발원지, 동기는 사랑입니다. 생명이 생겨난 것은 사랑 때문입니다. (86-82, 1976.3.7)

세계 제일이 되는 것이 뭐냐? 하나님이 제일입니다. 그 자리에 올라가는 겁니다. 올라가서 뭘 하자는 것이냐?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우주를 내 것으로 만들자는 것입니다. 그래 여러분도 다 욕심 있지요? 그 욕심, 욕망 모두를 완성하는 데는 돈 가지고, 자기 지식 가지고, 자기 권력 가지고 안 됩니다. 오직 사랑입니다. 이것이 통일교회 원리의 진수요, 인생철학의 근본입니다. 지금까지 이것을 몰랐습니다. 간단한 내용입니다. (144-134, 1986.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