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바다에는 배울 것이 많다 - [8대교재교본] 천성경 환태평양섭리

3) 바다에는 배울 것이 많다

① 바다처럼 천하를 품고 살아야

바다에 다녀 보면 참 배울 것이 많습니다. 하루에도 몇 번 변합니다. 세상에서 인심(人心)은 조석변(朝夕變)이라고 했지만, 바다는 조석변이 아니라 시시변(時時變)입니다. 시간마다 변하는 것입니다. 가만히 보면, 아무리 날이 좋다 하더라도 어느 골목에 가게 되면 물결이 좋지만, 어느 골목에 가게 되면 바람이 부는 것입니다. 큰 바람은 아니지만 전부 다릅니다. 사람의 얼굴이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물이 있고 산이 있으면 산이 높고 낮음에 따라 기후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바다는 천태만상의 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263-18, 1994.8.16)

선생님은 자연을 좋아합니다. 바다를 좋아합니다. 바다가 얼마나 신비로운지 모릅니다. 물방울들이 전부 다이아몬드 구슬입니다. 요것이 반짝반짝 하면서 `문 총재 것이다. 다이아몬드보다 더 값진 가치를 가진 것이 물이다.` 하고 자랑하는 것입니다. 왜 물이 자랑하느냐? `나 없으면 천하에 생명이 형성되지 않는다. 내가 있기 때문에 깊고 낮은 것을 수평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바다가 얼마나 울툭불툭한지 알아요? 그렇지만 물이 수평으로 만들어 놓았으니 얼마나 기분 좋아요? 기분 좋고, 보기도 천년만년 싫지 않게끔 파란빛을 냅니다. 파란빛은 위로의 색깔입니다.

왜 하나님이 파란빛을 만들었느냐? 이건 암만 봐도 피로하지 않습니다. 위로의 색깔입니다. 만물이 다 그렇습니다. 공중도 파랗고 바다도 파랗습니다. 그거 얼마나 이상적입니까? 하나님의 사랑에 잠기게 되면 전부가, 인간도 친구가 되겠지만 자연계가 다 친구입니다.

한번 그 성격을 알아 놓으면 절대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성격은 천태만상입니다. 오늘은 요랬다가 내일은 변해 갑니다. 그래서 인심(人心)은 조석변(朝夕變)이요, 산색(山色)은 고금동(古今同)이라 하는 말이 있지 않아요? 사람의 마음은 아침저녁으로 변합니다. 그거 무엇에 써먹어요? 그러니 동물만도 못한 것입니다. (177-276, 1988.5.20)

바다는 천하를 품고 삽니다. 한 곳에 모여 구름이 되어가지고 산을 덮으면서 친구가 되고, 비를 높은 데서 뿌리니까 사방으로 펴지는 것입니다. 놀라운 것이 물입니다. 물은 쉬지 않습니다. 천년만년 움직이는데 얼마나 피곤하겠어요? 문 총재는 바다를 사랑합니다.

자연은 속임수가 없습니다. 높으면 높고 낮으면 낮습니다. 높은 데 있으면 이의 없이 공급해 줍니다. 문 총재가 그걸 배워가지고 이의 없이 공급해 주는 것입니다. 이국땅에 가더라도 나보다 못살면 내 창고를 열고 내 쌀이 떨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전부 나눠주는 것입니다. 수평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다 물에서 배운 것입니다. 그래서 물을 좋아합니다. (300-141, 1999.3.2)

하늘도 푸르고, 바다도 푸르고, 풀도 푸르고 다 푸르면 어떻게 되겠어요? 이거 질식할 것입니다. 그것이 내가 좋아하는 옐로(yellow:노랑)라고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금방 싫증이 날 것입니다. 또 딴 색을 갖다놔도 얼마 안 가서 싫증이 납니다.

그렇지만 그린(green:푸른색)은 위로의 색이라는 것입니다. 이건 언제나 푸른 것입니다. 그럼 사람은 왜 그린을 좋아하느냐? 존재세계는 그린과 더불어 조화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흙에는 그린 컬러가 많다고 보는 것입니다. 흙은 주로 그린 컬러와 가깝습니다. 그러니까 흙으로 지은 나 자신은 그린 컬러를 좋아한다, 그게 이론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도 그걸 알았기 때문에 공중도 푸르고 바다도 푸른 것입니다.

전부 사람을 중심삼고 이 그린 컬러와 조화되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그거 얼마나 멋져요? (119-169, 1982.7.18)

바다가 잔잔할 때는 신비스럽습니다. 매혹적인 신비의 여왕같이 미녀가 되어가지고 모든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힘이 있습니다. 바다는 은빛으로도 보이지만 비취색으로도 보입니다. 그런가 하면 또 천태만상입니다. 거기에 살랑 바람이 불면 그 물결의 아름다움이라는 것은, 뭐라고 할까요? 무희가 아무리 춤을 잘 추더라도 거기에 따를 수 없습니다.

여러분, 댄서를 보려면 조그만 스테이지(stage:무대)에서 구경하는데 그건 너무나 좁습니다. 반면에 바다의 스테이지는 무한입니다. 바다의 무대가 얼마나 넓습니까? 미녀와 같은, 무희와 같은 성질이 있는가 하면, 한번 성나면 광야에서 달려드는 호랑이나 사자보다도 더 무서운 것이 바다입니다. 그걸 생각해 보십시오. 몇십 미터의 물결이 몰려오고 몰려갈 때에는 갈매기가 우는 것은 상대도 안 되는 것입니다. `네가 아무리 노래를 잘하고, 네가 아무리 훌륭한 희극 배우라도 웅장한 내 기세 앞에는 당하지 못한다!` 이겁니다. 위세가 당당합니다.

고요할 때 쾌속 보트가 기분 좋게 쓱 달렸지만 여기에서는 오금을 못 쓰는 겁니다. 꼬리를 젓고 대가리를 젓고 이러는 것입니다. 물결을 타고, 물결이 하자는 대로 하게 되어 있지 자기 기세가 없습니다.

자연의 힘은 위대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다를 사랑하는 사람은 교만할 수 없습니다. 바다에는 그런 위대함이 있습니다. 바다 문을 젖히고 들여다보면 거기에는 무진장의 어족이 있습니다. 황금빛으로부터 금빛, 푸른빛, 없는 색깔이 없을 정도로 많은 어족들이 살고 있습니다.

육지와 바다 속을 비교하면 어디가 더 아름다울까요? 육지도 아름답지요? 그렇지만 육지에는 꽃과 나비밖에 더 있어요? 그 다음에 아름다운 새가 있고, 그렇지만 그런 것은 단조롭습니다. 꽃은 움직이지 않는 것입니다. 바다에 있는 호화찬란한 색깔을 지닌 아름다운 모든 수족들은 춤을 추면서 활동합니다. 그래 어디가 아름다워요? 육지가 아름다워요, 바다가 아름다워요? 바다가 아름답습니다.

하나님이 왜 물이라는 걸 만들어 놨을까요? 하나님이 감상하기 위한 특별장치가 물이다 이런 말도 할 수 있습니다. 딱 숨겨 두고 공개하지 않았다 이겁니다. 이런 것을 볼 때 하나님은 육지보다 바다에 더 관심이 많을 것입니다.

또, 미래를 생각하는 사람은 육지보다 바다에 관심을 갖습니다. 하나님은 나타나지 않은 미래의 이상가정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지구성의 역사 이래 땅 위에 나타난 것에 관심을 갖기보다, 나타나지 않은 미래의 관을 갖고 있는 바다 세계에 관심을 가질 것이라는 것은 필연적입니다. 이것은 이론적인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서 바다를 생각하는 사람이, 미래상을 동경하는 사람이 많아지게 된다는 말이 나오는 것입니다. (128-250, 1983.8.28)

낚싯대를 드리워 놓고 앉아 있을 때는 한가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거기서 산보를 할 수 있습니까? 요만한 데서 움직이고 거기서 요리를 해야 합니다.

거기서 극장 구경을 할 수 있어요, 친구가 있어 놀러 갈 수 있어요? 조용히 해야 하니까 음악도 못 듣습니다. 그러니까 바다를 바라보면서 바다하고 하늘하고 얘기하는 것입니다. 바다와 하늘이 하나 되는 거기에 나 혼자 있으면 참 기분이 좋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왜 자꾸 바다에 나가느냐? 영적으로, 모든 면에 이익이 많다는 것입니다.

내가 하루 종일 집에 있으면 정신이 산만해가지고 세계 선교사라든가, 교회 문제 등 전체를 생각해야 될 것을 몇 분의 일밖에 생각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바다에 나가면 전체적인 생각이 듭니다. 그런 면에서 바다가 상당히 좋습니다. 그래서 `낚시도`라는 말이 나왔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79-270, 1975.9.1)

고요한 바다에서 한 쌍이 사랑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 바다가 `이놈들아, 나 죽겠다!`고 하겠어요? 그렇게 되면 고기떼가 와서 꼬리를 치고 구경하면서 좋다고 한다는 것입니다. 만물들이 그런 사랑을 바라는 것입니다.

자연의 모든 존재는 `제발, 와 주소! 해 주소!` 해가지고 그곳에 와서 사랑하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것을 헤아릴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주인이 흰 눈이 쌓인 꼭대기에 가서 사랑을 하면 `우리 주인 양반이 이렇게 아름답게 사랑하고 있구만!` 하며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원한다는 것입니다. (235-277, 1992.1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