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 바다 생활은 굉장하고 신기해 - [8대교재교본] 천성경 환태평양섭리

② 바다 생활은 굉장하고 신기해

태평양을 중심삼고 `흑조(黑潮)`는 4천 마일을 돕니다. 1년에 4천 마일을 돕니다. 그 도는 힘에 의해서 오대양(五大洋)이 도는 것입니다. 만일 흑조가 없다고 한다면 바다가 돌지를 않습니다. 이 흑조로 말미암아 대서양과 태평양은 오대양과 통하는 것입니다. (227-131, 1992.2.11)

이런 환경여건을 통해서 오대양이 전부 죽지 않고 사는 것입니다. (297-211, 1998.11.20)

아무리 강물이 크다 하더라도 바다에 들어가고, 바다가 아무리 넓게 흐른다 해도 흑조(黑潮)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흑조라는 것 알아요? 흑조라는 것은 태평양 지역을 중심삼고 4천 마일을 원형을 그리면서 도는 물줄기를 말합니다. 힘차게 도는 물줄기로 말미암아 오대양의 모든 물줄기가 살아서 작동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타고 돌 수 있어야만 바닷물의 자격을 갖는 것입니다. 인간이 사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220-202, 1991.10.19)

강이 아무리 많고 크다 하더라도 크고 작은 강은 어차피 대해(大海)에 들어가게 마련입니다. 대해에 들어가게 되면 전부 섞이게 마련입니다. 5대양을 중심삼고 보면 태평양에는 흑조(黑潮)라는 것이 있어가지고 4천 마일을 돌고 있습니다. 물론 달의 인력(引力)에 의해서도 그렇지만, 이렇게 도는 흑조가 있기 때문에 5대양 전체를 움직일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다의 기둥 역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더러운 것이나 무엇이든 전부 들어오면 그걸 전부 섞어가지고 하나의 모습을 취하려고 하는 것이 바다의 목적입니다.

아무리 큰 강물이 담수(淡水)를 계속적으로 몇만 년 투입하더라도 그것을 전부 흡수하고 남을 수 있는 여유가 있기 때문에 바다에 권위가 있는 것입니다. 바다는 얼마든지 들어가더라도 변하지 않는 자세를 갖추고 있기 때문에 위대하다는 것입니다. (210-202, 1990.12.23)

일본의 구름이 태평양을 건너 미국 구름과 하나 될 때 `미국 구름 나 싫다!` 이래요? 일본의 물이 흑조(黑潮)를 통해서 태평양에 갔는데 미국의 물이 올 때 `어구구구!`` 그래요? 태평양에는 4천 마일의 흑조가 흐르는 것입니다. 거기에 선진국 후진국이 있습니까? 나라간 경계선이 있습니까? 그런데 인간세계는 이게 뭐예요? 자연운동에 반대하는 것은 다 깨져 나가는 것입니다. (268-28, 1995.2.7)

사랑의 세계는 어디에 가든지 다 통합니다. 태평양 물이 생각할 때 `나는 태평양 물이야. 아시아 물은 전부 오염됐기 때문에 나 싫어!` 그래요? 물이 어디서 흘러나오든 전부 꿰차는 것입니다. 거기에 나쁜 것이 있으면 그걸 섞어 가지고 빨리 해소시켜 같은 길을 가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태평양 물은 아무리 공해가 심하더라도, 인류가 없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여전히 푸를 것이 틀림없습니다. 아무리 시련을 받고 우여곡절의 과정을 거치더라도, 바닷물의 푸른빛이 점령당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랑의 권위와 사랑의 내용과 사랑의 힘은 언제나 푸를 것입니다. (214-275, 1991.2.3)

통일교회는 세계 주류의 물줄기가 되고 태평양의 흑조와 마찬가지가 되어야 합니다. 태평양에서 4,500마일의 흑조가 돌아가지고 오대양의 물이 돌게 됩니다. 세계의 생명력을 전부 우주에서 발발시키기 위해서는 깊은 곳을 돌아가서 움직일 수 있는 원천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가지고 더러운 세상을 깨끗이 해야 되는 것입니다. (275-33, 1995.10.30)

태풍이 불어올 때 얼마나 물결이 밉고, 바람이 무서운지 알아요? 그렇지만 저 바람도 자기 사명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만약에 바람이 안 불면, 바다에 물결이 없으면 고기가 못 삽니다. 바람 부는 것은 바다에 산소 공급을 위한 것입니다. 파도라는 것이 산소 공급을 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물결이 대로(大怒)하고 있더라도, 암만 바람이 불어와도 그 맛을 보면서 `네 맛을 잃지 않았구나!` 그래야 됩니다. 바다는 짠맛을 갖고 있습니다. 나도 레버런 문 맛을 잃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물결이 밉지 않고, 몰아치는 파도가 밉지 않다는 것입니다.

바다에 철학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육지에서만 산 사람은 저 나라에 가서 이상적 활동을 하는 데 상당히 지장이 많을 것입니다. 영계에 가면 고래도 타고, 고기들과 같이 헤엄칠 수 있는데 바다를 좋아하지 않으면 그걸 못하는 것입니다. (119-254, 1982.9.13)

바다에 나가 보면 태풍이라는 것은 무서운 것입니다. 그 물결이 참 무섭습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무섭더라도 사랑의 힘이 돛을 달고 갈 때에는 그것도 넘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110-103, 1980.11.9)

바다는 그냥 있으면 안 됩니다. 물은 움직이면 안 죽습니다. 그릇에라도 물을 떠놓고 움직여만 주면 영원히 안 죽습니다.

운동하면 안 죽는다는 것입니다. 원양어업 하는 배는 한번 출항하면, 1년 6개월, 2년치의 물을 한꺼번에 싣고 나가지만 바닷물에 출렁거리기 때문에 그 물은 몇백 년 두고 먹더라도 썩지 않습니다. 움직이면 썩지 않고 정지하면 썩습니다. 그러니 물이 참 특수하지요? 물이 그렇게 돼 있습니다. (296-200, 1998.11.9)

원양어로 작업을 하려면 식수를 배에 가득 싣고 갑니다. 1년 반 동안 그 물을 먹어야 합니다. 짠물을 먹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물은 움직이면 몇십 년이 지나도 썩지를 않습니다. 물은 움직여야 합니다. 그래서 말씀도 움직여야 되는 것입니다. (291-89, 1998.3.5)

물이 왜 흐르느냐? 수평이 안 되어 있기 때문에 흐르는 것입니다. 물은 흘러서 어디를 찾아가느냐? 수평선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물이라는 것은 바다로 가야 됩니다. 수평을 찾아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263-92, 1994.8.21)

물은 언제나 수평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특징입니다. 바다는 아무리 파도가 크게 일더라도 수평선을 그리고 있습니다. 수평선을 보게 될 때 뒹굴고 싶은 것입니다. `야, 한번 뒹굴어 보자!` 이겁니다. 그럴 수 없으니까 배를 타고 뒹군다 이겁니다. 그런 생각 해 봤어요? 수평선에서는 무엇을 하더라도, 나가 자빠지더라도 머리나 발이 먼저 맞지 않습니다. 수평으로 딱 맞습니다. 그럴 수 있는 것이 수평선입니다. 인간에게는 수평선이 필요합니다. (263-90, 1994.8.21)

공기나 물은 사랑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공기는 진공만 생기면 세계의 공기를 동원해가지고 싹 메워 버립니다. 바다의 물도 웅덩이가 생기면 싹 밀어 버리고 수평을 취하는 것입니다. 공기도 물도 사랑도 언제나 수평이 사는 방법입니다. (264-318, 1994.11.20)

우리가 바다에 나가면 물을 봅니다. 물은 순환합니다. 물이 있는 곳에서는 아침에 안개가 낍니다. 수증기가 돼가지고, 이게 저기압이기 때문에 올라가지를 못합니다. 물이 수증기가 되어 모인 것이 안개입니다. 이 물이 안개가 된다 이겁니다. 그래서 증발해가지고 구름이 되어서 세계를 도는 것입니다. 바다에 물이 없으면 어떻게 되겠어요? 야단입니다. 생물이 존속할 수 없습니다. 물이라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생각해 보라구요. (263-78, 1994.8.21)

여러분이 알다시피 선생님은 시간만 있으면 바다에 나갔습니다. 바다에 나가서 부대낍니다. 부대끼지만, 그것이 정신을 가다듬어가지고 큰 싸움을 하기 위한 시련이고 준비라고 생각합니다. 잠도 안 자고 참 피로하지만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자기 스스로 그러한 표준을 정해가지고 이 평행선에서 딴 데로 기울어지지 않는 놀음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73-270, 1974.9.29)

공기도 움직이고, 물도 천년만년 움직이잖아요? 천년만년 움직이는데, 같은 공식입니다. 바다를 보십시오. 물이 얼마나 피곤하겠어요! 그렇지만 한 번도 피곤하다는 생각을 안 합니다. 그것이 존속할 수 있는 공식이라는 것입니다. (207-19, 1990.10.21)

바다의 세계를 모르는 사람은 그만큼 행복의 영역이 제한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창조주가 있다면 육지를 알고 바다를 잘 알아서 바다의 신비성을 생각하고 육지의 아름다움을 생각하면서 찬양하는 것을 좋아하지, 한 면만 가지고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하는 것은 지극히 이론적인 말입니다. (128-259, 1983.8.28)

바다나 육지나 모두가 사람 하나를 교육하기 위해서 만들어 놓았다는 것을 생각하면 창조주의 고마움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128-261, 1983.8.28)

바다를 봐도 그 바다를 그저 바다로 보는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께서 나에게 준 선물이다,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재창조하는 과정으로서 모든 것을 재감관(再感觀)한다는 사실, 여기서 위대한 혁명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위대한 승리의 기치가 여기서 싹터 오르는 것입니다. (112-307, 1981.4.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