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 위하는 생활을 통하여 - [8대교재교본] 천성경 참가정과 가정맹세

② 위하는 생활을 통하여

가정맹세 7번에서 `우리는 참사랑을 중심하고 본연의 혈통과 연결된` 다음에 부가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위하는 생활을 통하여` 이걸 집어넣어야 됩니다. `본연의 혈통과 연결된 위하는 생활을 통하여 심정문화세계를 완성`하는 것입니다. `위하는 생활을 통하여`를 넣어야 됩니다. 위하는 건 막연합니다.^^

구체적인 생활을 통하여, 개인·가정·전체 생활을 통하여 심정문화세계를 완성한다는 것입니다. (297-209, 1998.11.20)

`참사랑을 중심삼고 본연의 혈통과 연결된 위하는 생활을 통하여`, 위하는 사랑입니다. 사랑을 느낄 줄 알아야 됩니다. 거룩한 것입니다. 사랑을 주관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자기 마음대로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자기마음대로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위하는 생활을 통해서 `심정문화세계`를 만든다는 것입니다. 심정문화세계가 뭐예요? 하나님의 사랑의 문화세계요, 근본적인 문화세계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어디에 사랑이 있다면 참사랑이 관계돼 있지 않는 것이 없는 문화세계예요. (304-273, 1999.11.9)

우리들 가운데 남에게 주관(主管)받는 것은 죽어도 못하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으로 압니다. 그러나 한 가지 알아야 할 것은 이제까지의 인간들이 위해서 존재하는 그 앞에 주관받고 사는 것이 얼마나 행복하다는 사실을 꿈에도 생각지 못했습니다. 영계의 조직을 보면 천지의 대주재 되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은 우주 만유의 존재 가운데 위해 존재하는 중심존재이기 때문에 그분에게 지배받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천년만년 지배받더라도 감사할 수 있는 이상적 통일권이 여기에 성립되는 것을 알기 때문에 하나님은 위해 존재하라는 원칙을 세우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75-321, 1975.1.16)

위하여 사는 사람이 돼라. 이것이 천주 생성·형성의 근본입니다. 하나님도 위하여 있는 것입니다. 천주의 모든 것 가운데 이것을 거스르는 것이 없습니다. 이렇게 주체적, 생성의 근원, 에키스적, 핵심적인 자리에 선 그 사람은 천주, 하나님까지도 환영하는 것입니다. 선생님 같은 사람이 그렇습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모르기 때문에 실감을 못하는 것입니다. 영계도 선생님을 중심삼고 움직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세계를 모르지요? 그렇기 때문에 아무렇게나 하고 있는 것입니다. (255-176, 1994.3.10)

사랑은 혼자서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사랑은 어디서 나오는 것입니까? 나에게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대상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대상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에 내가 머리를 숙이고 대상을 위해야 되는 것입니다. `위하여 살라!`고 하는 천리가 여기에서 생겨나는 것입니다. 지극히 고귀한 것이 나에게로 찾아오는데, 그것을 받으려니 높이고 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위하는 철학`을 이루어야 사랑받는 것입니다. (143-278, 1986.3.20)

참사랑을 중심삼고 위하여 사는 사람은 밤이든 낮이든 천주만주 어디에 가든지 환영을 받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차피 영계의 전시장에 전시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박람회를 하는 곳이 영계입니다. 영계에서는 지상에서 어떤 생애를 산 사람인지 금방 전시되는 것입니다. 거기서 꼴찌가 되고 싶습니까, 모두가 찬양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까? 어느 쪽입니까? 최고로 찬양을 받는 사람이 되고 싶지요?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선생님이 얘기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라구요. 최고로 찬양을 받으려 하기 전에 최고로 위해서 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틀림없이 중심자가 되는 것입니다. (255-181, 1994.3.10)

영원이라는 개념, 이것은 자기를 위한 데서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운동하는 것을 보더라도 밀어주고 끌어주는 상대적 방향이 크면 클수록 빨리 도는 것입니다.

지혜의 왕 되는 하나님이 위해서 존재하는 법도를 세운 것은 영원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75-322, 1975.1.16)

위해 사는 사람은 망하지 않습니다. 또, 위해 사는 사람은 영계에서 자꾸 코치해 줍니다. 자꾸 새것과 관계 맺게 만들어 준다는 것입니다. 새것과 관계 맺으니까 그 사람은 자연히 유명해지고 세계적으로 알려집니다. (292-28, 1998.3.27)

하나 될 수 있고 평화의 기원이 될 수 있는 그 길은 어디에 있느냐? 하나님 자신뿐만 아니라 참된 인간은 위해서 사는 존재라는 원칙을 세우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된 사랑은 위하는 데서부터, 참된 이상도 위하는 데서부터, 참된 평화, 참된 행복도 위하는 자리에서 성립되지, 위하는 자리를 떠나서는 찾을 수 없습니다. 이것이 천지창조의 근본이라는 것을 우리 인간은 몰랐습니다. (75-318, 1975.1.16)

흔히 세상에서 말하기를, `아! 인생이 무엇이냐?`고 하는데 인생관(人生觀), 세계관(世界觀)의 확립, 그 다음엔 우주관(宇宙觀)의 확립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확립할 것인가? 계통적 단계와 질서를 어디에다 둘 것이며, 그 차원적 계열(次元的 系列)을 어떻게 연결시킬 것이냐 하는 문제는 가장 심각한 것입니다. (75-324, 1975.1.16)

그러나 위해 존재한다는 이 원칙에 입각해서 보게 될 때에 가장 가치 있는 인생관은 내가 전인류를 위해 있고, 전세계를 위해 있고, 국가를 위해 있고, 사회를 위해 있고, 가정을 위해 있고, 아내를 위해 있고, 자녀를 위해 있다는 입장에서 행복한 자아를 발견할 수 있다면 이 이상의 인생관이 없다고 보는 것입니다. (75-324, 1975.1.16)

통일교회에 오게 되면 땅 위에서 잘 살라고 하지 않습니다. 지지리 못살고, 지지리 고생하다가 죽어 길가에 쓰러져 개도 안 물어갈 주검을 남겼더라도 그 자리에는 꽃이 필 날이 올 것입니다. 거기에는 모든 거룩한 사람들이 모여들어 도성을 만들 것입니다. 통일교회 무리들을 나라를 위해서, 세계를 위해서 지긋지긋하게 고생을 시켜서 효자·충신으로 만들어 보자는 것이 선생님의 생각입니다. 안 가겠다면 후려갈겨야 되겠습니다. 발길로 차서라도 현재의 비참함을, 현재의 어려움을 극복시키는 것이 사랑입니다. (49-304, 1971.1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