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을 들이더라도 때를 맞추어서 들여야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40권 PDF전문보기

정성을 들이더라도 때를 맞추어서 들여야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복의 줄이라고 할까, 하늘의 운세의 줄이라고 할까 하는 줄들을 가지고 있으므로, 이 줄을 중심 존재와 내가 서로 잡아 당겨 줄이 늦추어지지 않고 팽팽하게 될 수 있는 자리에 선다면 그 자리가 얼마나 복스러운 자리일 것이냐 하는 것을 생각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 교인이라면 통일교회가 가는 길과 더불어 자기의 생명을 걸고 충성을 다하면서 하루하루 시간시간을 그 때에 박자와 도수를 맞추기 위해서 정성들여야 합니다. 그래야 그 사람은 통일교회의 운세와 더불어 발전한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를 따르는 사람들도 가다가 지쳐서 쓰러질지 모르지만, 그 중에서도 세계의 운세와 더불어 관계를 맺고 그 때에 맞추기 위해 정성을 들인 사람이 있다면 다른 사람은 하루아침에 다 쓰러져 버린다 할지라도 그 사람만은 남아질 것입니다.

정성을 들이는 여러분들에게는 '내가 그 때를 알아 가지고 그 때에 틀림없이 맞추었다'고 할 수 있는 시간을 여러분 일생에서 과연 몇 번이나 맞추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물론 개인의 때도 맞추어야 되겠지만 가정의 때도 놓치지 않고 거기에 맞추어야 됩니다. 또, 가정의 때도 맞추어야 되겠지만 종족의 때, 민족의 때, 국가의 때도 맞추어야 합니다. 그 때를 내가 어떻게 맞추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 때는 하나의 분수령과 같은 하나의 선을 중심삼고 넘어가는 겁니다. 그것은 똑딱하는 순간입니다. 한 시간권내면 한 시간권내에서 넘어갈 것이며 세 시간권내면 세 시간권내, 24시간권내이면 24시간권내에서 넘어갈 것입니다.

그것을 내가 그 24시간권내에서 열 두 시간권내로 압축시켰느냐, 혹은 여섯 시간권내로 압축시켰느냐, 세 시간권내로 압축시켰느냐, 아니면 바로 '이 시간이다'라고 할 수 있는 순간에 때를 맞추었느냐가 문제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루를 중심삼아 가지고도 등분적 구분(等分的 區分)이 많다는 것을 생각할 때 과연 내 일생에서 이 때를 정확히 맞춰 '아버지이시여, 내가 이 시간을 얼마나 기다렸습니까' 할 수 있는 아들의 사명, 딸의 사명을 자기 일대에서 얼마나 했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자신이 잔치집에 갔다 하더라도 잔치하는 그 시간에 맞춰서 동참하지 않았다면 잔치를 치르고 보았다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집 옆을 지나가던 행객이라 하더라도 그 집에서 잔치하는 것을 보았다면 그 잔치에 동참한 가치를 지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섭리의 도상에 있어서도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 때를 알자는 것입니다. 그 때를 알고 정성을 들이자는 것입니다. 정성을 들이려면 때를 맞춰서 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무턱대고 정성을 들여서는 안 됩니다. 정성을 들일 때는 그 때가 어느 때인가를 알고 그 때에 맞춰서 온갖 정성을 들여 가지고, 그 시간을 통해서 하나님과 인연을 맺어야합니다.

이런 문제를 생각할 때 오늘날 우리가 이러한 때에 대한 정확도를 알아 가지고, 그 때에 맞추어 하나님 앞에 상대적인 입장에 섰다는 것은 지극히 귀한 사실이라는 것을 생각해야 됩니다.

여러분은 통일교회에 들어와서 지금까지 하늘의 뜻을 받들어 나왔지만, 그 뜻을 받들어 나오면서 여러분 자신이 자랑할 수 있는 그런 때를 얼마나 맞췄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우리 통일교회 교인에게는 40일 전도의 때, 혹은 7년노정의 때가 있습니다. 7년노정의 의의를 중심삼고 볼 때 여기에는 여러분이 가야 할 탕감의 때가 있습니다. 여러분 개인을 중심삼고 저울눈과 같이 여러분을 앞놓아가면서 여러분의 생활에 맞춰지기를 바라는 그런 길이 있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