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가정들에게는 민족을 위한 제물의 길이 남아 있다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62권 PDF전문보기

축복가정들에게는 민족을 위한 제물의 길이 남아 있다

내가 어젯밤에도 그랬어요, 어젯밤에도. 순회사들 보고 그랬어요. '당당한 여류 웅변가가 되라' 이거예요. 한 사람이 수많은 나라의 말을 할 수 없다구요. 그렇지만 통역을 세워 가지고는 얼마든지 얘기할 수 있습니다. 36가정으로부터 72가정, 120가정, 430가정, 전부 다 뼈다귀도 없는 듯이 들이 틀어대는 거예요. 못 견디어 전부 다 도망 가도록 하려고 합니다.

그건 왜? 아까 말했듯이 제물, 죽을 자리에 나선 제물을 어떻게든 죽이지 않고 거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죽이지 않고 산 제물로 세계에 내세워 가지고, 그를 바라볼 때 죽은 제물보다도 더 감사하다고 하며 눈물 흘릴 수 있는 주인공이라면, 하나님은 그를 희생시키지 않고 세계를 구하려고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비참한 자리에 서서는 안 되겠기 때문에, 비참하지 않은 자리에서 자비의 하나님의 권위를 스스로 갖추어 가지고?,만 천주 앞에 영광스러운 본연의 자세를 갖추어 가지고 만 피조물을 사랑의 품에 품을 수 있는, 그런 희생 없는 구원을 바라실 것이 아니냐 이겁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이 사람들이 희생하지 않고 승리했다는 기준에 섬으로 말미암아 그를 바라보는 수많은 사람들도 피 흘리는 역사를 넘어설 수 있는 것이 아니냐? 이렇게 보는 거라구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 귀신들을 고생시키려는 거라구요.

내가 축복해 준 가정의 자녀들이 누더기 옷을 입고 다니는 것을 잘 보고 있다구요. 선생님은 그렇게 무자비한 사람이 아니라구요. 문선생이라는 사람은 정이 많은 사람이라구요. 옛날에 아무 상관도 없었던 한 여인이 통일교회를 찾아왔는데 그 여인이 꿰맨 치마를 입고 있었어요. 내가 그 꿰맨 치마를 바라보지 못한 사나이라구요.

그렇지만 축복가정의 자식들은 아직까지 한 번도 얼싸안아 주지 않았다구요. 그들은 어떤 의미에서 선생님 자식이라구요. 지방에 가서 일반 가정의 자식들은 안아 주고 그랬지만, 축복가정의 자식들은, 무슨 3가정의 자식들 누구 손목 한 번 안 잡아 봤다구요. '내가 뜻을 이룰 때까지 안 안아 준다구요. 자랄 때까지, 학교 보낼 때까지 내 손으로 일전 한푼 안 주게 돼 있다구요. 그래야 된다는 거예요. 사랑이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구요. 민족을 대신할 수 있는 제물된 가정으로서 넘어야 할 제물의 길이 남아 있기 때문에…. 그를 동정했다가는 제물을 못 만들어요. 애비가 못 하게 되면 자식의 배를 째서라도 제사를 드려야 되겠다는 겁니다. 그것이 뜻을 중심삼아 응당한 생각입니다. 그것이 싫거든 보따리를 싸 가지고 가라구요. 상관없습니다. 그렇게 매정한 길이라구요.

내가 지금 축복가정들을 전부 다 거지떼같이 해 가지고 삼천리 반도에 내보내 놓고 있다구요. 매정하지만…. 그 어느 단체의 지도자를 위해서 생명을 바친 사람보다 내가 잘살게 해주어야 할 책임을 느끼고 있는 거라구요. 또 그렇게 만들 거라구요. 그렇게 할 거라구요.

하늘은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을 협조해 주는 하늘인 것을 알기 때문에 다른 사람은 못 하더라도 나는 한다구요. 앞으로 10년만 참아라 20년만 참아 봐라 이겁니다. 20년만 뜻을 위해 일편단심 참아 봐라. 야곱은 21년 노정을 가정복귀의 한 민족복귀의 한의 고개를 넘기 위해서 그런 길을 갔거늘, 우리는 세계적인 한의 고개를 넘기 위해 3차 7년노정을 못 넘어갈 것이냐? 그것은 말도 안 된다구요.

여러분은 여름이 되거든 솜옷을 입고, 겨울이 되거든 베옷을 입고 탕감해야 될 사명을 짊어진 통일교회 교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과 땅이, 혹은 하나님과 역사적인 선지선열들이 우리 통일교회의 움직임을 주목해야 하는 것입니다. 주목의 주인공이 돼야 되는 것입니다. 단체로서의 주인공의 입장에 설 수 있겠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