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는 하나님에게 빨리 가는 길을 제시한다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63권 PDF전문보기

종교는 하나님에게 빨리 가는 길을 제시한다

마라톤 경기에 나간 선수들이 달리는 과정에서 얼마나 힘이 들어요? 숨이 막히고 기가 막히고 쓰러질 것 같은 경각선을 왕래하면서 그것을 극복하며 달리는 것입니다. '아이구! 나 힘든데 달릴 게 뭐 있어? 아! 오뉴월 복중에 달릴 게 뭐야? 편안히 쉬지' 그런 사람들은 아무리 나발을 불면서 선전하고 아무리 '나를 따라오면 성공하고 나를 따라오면 목적을 이룬다'고 해도 그것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염천하에서도 누구보다도 있는 정성을 다해서 그저 이를 악물고 기를 쓰며 달리는 사람들에게만이, 그 사람들로만이 그 목적은 계승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목적을 앞에 놓고 목적을 바라보고 대하는 사람으로서 자기를 중심삼고 안일을 추구하는 사람은 지극히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그는 망해야 되는 것입니다. 패자의 쓴잔을 마시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만일에 그러한 사람이 국가를 대표한 자리에 섰다면 국가의 망신이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꼴찌를 하더라도 있는 힘을 다해 뛰어 가지고 결승점까지 와서 쓰러져 죽었다면, 그는 일등은 못 하더라도 그 경기 종목에서 영웅이 되는 것입니다. 그럴 수도 있다는 거예요.

일등이 문제가 아니라구요. 얼마만큼 최선을 다했느냐, 얼마만큼 있는 정성과 생명을 그 길에 투입시켰느냐 하는 문제가 그 사람의 가치 기준을 좌우하는 것입니다. 거리의 측정에 있어서 가치의 결정이 벌어지고, 그 사람의 정성의 측정에 의하여 가치 결정이 좌우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경기 종목을 통해서도 여실히 알 수 있거들랑 우리의 신앙길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빨리 달려야 됩니다. 밤이나 낮이나 빨리 달려야 됩니다. 종교적 소질이 있어서 빨리 달려 가지고 일등을 했다면 좋겠거니와, 일등도 일등이지만 일등은 못 했을망정 일등한 사람의 몇십 배의 정성을 들였다 하게 된다면 도리어 역사상에 전통으로 남기는 길을 갈 수 있습니다. 소질에 의해서 일등한 것보다도 '이 사람은 경기 종목에서 이렇게 이렇게 생명을 다해 가지고 죽기까지 했다. 꼴등하더라도 죽기까지 하였다' 그게 더 바람직한 것이 아니냐?

소질이 있는 사람과 소질이 없는 사람과 정성을 두고 볼 때는 소질 없는 사람이 일등이라구요. 그러면 어떤 사람이 역사를 움직일 수 있겠느냐? 정성을 따라서 나간 사람이 일등은 못 했더라도 소질을 따라서 일등을 한 사람이 부끄러울 정도의 내용을 갖고 나서면, 그 일등한 사람도 정성의 길을 배워야 되는 것입니다.

종교의 길은 그러한 내용의 길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빨리는 못 가지만 맨 꼴찌가 되더라도 있는 힘과 정성을 다해서 전체를 위해 자기 생명을 바치면서 가는 사람을 하나님은 필요로 합니다. 하나님은 윤곽만 보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원형의 세계를 찾고 있는 것입니다. 가고 마는 것이 아니라 갔다가 돌아와야 되는 것입니다. 돌아오기 위해서는 딴 문을 갖추어야 합니다. 이쪽으로 갔으면 저쪽으로 돌아와야 되는 것입니 다. 그렇기 때문에 일방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거기에는 반드시 정성이 필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을 보면,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했고, '쉬지 말고 달려라'고 했습니다. 그런 엇갈린 내용이 있는 것입니다. 쉬지 말고 기도 한다면 어떻게 달리나요? 이런 상반된 내용을 제시한 이유는 양면의 내용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소질이 있어 일등을 했다 하더라도 돌아와야 됩니다. 돌아오는 데는 뛰어서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것을 받쳐 들고서 지탱해 가지고 나갈 수 있는 자격자가 되어야 될 것입니다. 상을 받았으면 그 상을 지탱시켜서 다음 인계자에게까지 유지해 줄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합니다. 그지탱시킬 수 있는 힘, 강인하고 끈기 있는 저력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