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리앗을 때려잡은 다윗과 같은 신념을 가져야 할 통일교인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63권 PDF전문보기

골리앗을 때려잡은 다윗과 같은 신념을 가져야 할 통일교인

통일교회 교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야말로 지금의 때는 숨막힌 역사적인 시점이 아니냐?골리앗을 대한 다윗은 비록 양 치는 목동으로 한 벌밖에 없는 남루한 옷을 입고 있을망정, 그의 눈동자에는 뚜렷한 목적관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기를 세워서 약속을 한 그 나라의 승리적 권한은 반드시 자기를 통해서 준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내가 망하게 될 때는 이스라엘 나라가 망하는 것이요. 수천년의 역사시대에 있어서 하나님이 사랑하였던 민족적 선민권이 망해 떨어져 나간다'는 그런 자부심을 가졌던 다윗이었습니다.

그처럼 다윗이 골리앗보다 나아야 하나님이 협조해도 사탄이 참소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협조해 가지고 다윗이 이기게 된다면 사탄이 그걸 어떻게 참소하겠어요?그래서 다윗이 골리앗보다 낫다는 것입니다. 그의 시선은 하나님의 축복의 세계를 바라보았던 것이 아니냐?그는 비록 목자의 생활을 했지만 미래의 이스라엘 국운을 염려했던 것이 아니냐는 거예요. 모든 것이 골리앗보다 못하지 않다는 거라구요. 비록 현실적인 기반에서는 아무것도 없지만, 내적인 심정문제에서 보나 소망적인 면에서 보나 골리앗보다는 백 배 낫다는 겁니다. 참된 자리에 섰다는 거라구요.

그렇게, 다윗은 하나님이 편 되어 줄 수 있는 당당한 자리에 섰기 때문에 그 골리앗을 때려잡은 것입니다. 그런 것을 알아야 돼요. 그러기에 다윗을 왕으로 세운 거예요. 그것은 정의를 위하고 나라를 대신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겠다는 그러한 자세를 가지고 빛나는 사상을 닦아 나온 다윗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다윗에게 있어서는 목자의 생활이 길면 길수록 거기에서 내적 정비를 할 수 있었고, 내적인 심정의 애국사상을 고취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상이 하나님의 뜻과 방향에 일치될 수 있었기에 위대한 다윗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이스라엘 민족 그 누구도, 이스라엘의 어떠한 교역자도, 이스라엘의 교단 그 누구도 갖지 못하였던 당당한 모습으로 하나님의 뜻 앞에 일치되는 사상을 가진 사나이가 아니었느냐 이겁니다. 그러니 '비록 이스라엘 나라는 망하더라도 내가 가진 사상으로 말미암아 다시 나라는 건국될 것이다'는 사상을 가졌던 사나이가 다윗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골리앗에게 외적인 모든 면에 있어서는 비할 바가 아니었지만, 내적인 가치기준에 있어서는 골리앗보다도 무겁고 크기 때문에 거기에 하나님이 편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사탄이 참소할 수 없는 당당한 승리가 된 것이 아니냐?그건 당연한 것이 아니겠어요?그렇기 때문에 다윗은 왕이 된 거예요. 그렇지요?

그와 마찬가지로, 통일교회는 어떠냐?비록 헐벗고 못먹고 있지마는 시선은 다윗과 같은 시선을 가져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이 나라 이 민족의 비참상을 내가 책임지겠다. 그 누구한테도 맡길 수 없다. 비록 나이 어린 소년이지만 나의 책임으로, 내 손으로 해결짓겠다'고 해야 합니다. 그러한 정신이 하나님이 요구하는 최후의 적절한 요구가 아니겠느냐?또는 최후의 통첩이 아니겠느냐 이겁니다.

그런 자리가 왔고 그러한 때가 왔기 때문에, '나는 당당코 생명을 바쳐 새로운 건국도상의 일인자로서 등장하겠다'는 다윗의 전통적 사상을 여러분이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자리에서 보게 될 때, 다윗은 지금까지 하나님이 기대하였던 역사시대의 어떠한 사람보다도 하나님이 바라는 새로운 나라를 지키는 데 필요한 사람이었습니다. 또한 새로운 전통적 교회를 구축하는 데 있어서 대표자였기 때문에 하나님은 양면에 그 사상적인 배후가 확고히 서 있는 다윗에게 이스라엘 나라를 맡기지 않을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윗의 원수를 때려잡고 다윗을 남긴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제 이걸 알아야 합니다. 통일교회에 있어서는 다윗과 같은 그런 신렴을 가져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망해 돌아가는 현세를 바라보게 될 때, 이 책임을 누가 지느냐?그것을 기성교회에 맡기지 말라 이겁니다. 그 책임을 민주세계에 맡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니면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과중한 임무에 불타는 신념을 가지고 '세계를 우리의 손으로, 공산당을 우리의 손으로 책임을 지겠다'고 하는 무리가 있거들랑, 하나님은 이 무리를 빼놓고는 이 세계를 수습할 길이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에 대해서 무엇을 협조해 달라고 안 하더라도, 그런 사상을 가졌으면 하나님이 찾아와 협조해 주려고 하신다는 거예요.

한국이 살 수 있는 길은 이것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우리는 그러한 때를 바라보고 나왔던 것이며, 그야말로 그 때가 목전에 다가왔습니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입장에서, 죽지도 못하고 살수도 없는 입장에서 이왕에 행동하려면 나를 중심삼고 행동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죽으려면 나를 중심삼고 죽지 말라는 겁니다. 다윗과 마찬가지로 행동하는 데에는 나라와 세계의 운명을, 하나님의 뜻을 걸고 행동하자는 거예요. '죽더라도 홀로 죽지 말자! 세계를 대신한 제물로서 죽으라!' 이게 얼마나 고차원적이요. 멋진 이상을 가진 무리들입니까?

그러니 세계사적인 역사를 대표하는 하나의 제물적인 자리에서 내 생명을 하나님 앞에 봉헌할 수 있는 숨막힘과 동시에, 무한한 가치가 맺어져 있는 그런 때를 향하여 내가 나설 수 있는 길이기에 이것은 마치 다윗과 같이 죽음을 넘어갈 수 있는 배후의 사상이 하나님의 심정을 휘어 잡을 수 있는 것입니다. 다윗은 그랬기 때문에 승리의 결정이 벌어진 것이며, 죽기를 바란 다윗은 살고 살기를 바란 골리앗은 죽은 것이 아니냐? 그리하여 망할 수밖에 없었던 이스라엘은 다윗으로부터, 망할 수밖에 없었던 유대교는 다윗으로부터 재편성되어 이스라엘의 건국이념이 창건되었던 것이 아니냐?이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