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시대에 있어서의 우리의 자세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150권 PDF전문보기

광야시대에 있어서의 우리의 자세

오늘날 우리 교회가 그런 위치에 처해 있습니다. 지금 선생님의 입장이 그런 입장이예요. 여러분들은 애급 생활과 같은 생활을 박차고 나와 광야노정을 가고 있는 것입니다. 광야에 나온 우리 앞에는 아멜렉 족속이 걸려 있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아멜렉 족속이 공격해 들어오는 거예요. 이제 사탄과 실체를 쓴 뱀들이 우리 앞길을 선동하여 여러분들을 물어 제끼는 때가 왔다 이거예요.

여러분이 어느 부분을 물렸느냐 하는 건 자기 자신들이 알 것입니다. 마음으로 몸으로 물질로 자녀로 지금까지 우리들이 생활해 나온 모든 조건들이 나를 물어 제끼는 하나의 조건으로 남아 있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옛날의 나의 친구, 나의 부모, 나의 동기가 그렇다는 것입니다. 애급에 있던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을 따라 나와야 할 처지에 있는데 `아! 바로가 잘살게 해주고 있는데 뭐' 그런 사람이 있었다구요. 그건 사탄이 알고 있었다는 거예요.

`우리는 이와 같이 사니 가나안 땅에 들어가도 그거 뭐…. 우리는 더이상 부러울 것이 없어. 우리는 여기에 살겠다' 라고 하며 아니 나오겠다는 사람이 있다 할진대는, 자기 사랑하는 부모, 자기 사랑하는 처자, 자기가 사랑하는 무엇일지라도 끊어 버리고 나서지 않으면 안 될 이런 처지에 처해졌던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오늘날 여러분도 외로운 길에 나선 사람들입니다.

거기에는 어떠한 울타리도 없고, 의지할 곳도 없습니다. 북풍이 불면 남쪽으로, 동풍이 불면 서쪽으로 힘 없이 밀려 가는 처참한 입장에 처해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거기에 있어서 오직 내가 가져야 할 하나의 잃어버리면 안 될 것이 무엇이냐? 모세가 처음 바로 궁중을 박차고 나올때 그의 마음에서 끓어 오르던 간절한 그 심정에 내가 들어가 있다 하는 것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됩니다. 그 심정 위에 내 사정을 박차고 나섰던 그 사정이 있었던 것을 알아야 돼요.

이런 광야시대에 있는 연고로 지금 선생님의 말은 이제 한국에서 믿을 수 없는 사람의 말로 되어 있습니다. 어느누구든지 그 말을 믿어서는 안 된다고 되어 있어요. 몰리고 있던 모세의 일면을 걷고 있는 때에 처해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 믿을 수 없는 환경에 있어서 믿어야 할 심정을 가진 사람이 모세가 찾고 있는 사람이요, 하늘이 찾고 있는 사람이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들도 그와 같은 자리에 처해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한 기로에서 4백 년 조건의 제단을 쌓아 가지고 첫 고개를 넘은 이스라엘 민족은 광야에 나가 가지고 둘째 고개를 넘어야 할 것인데 넘지 못한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가 그런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한국 기독교가 그런 시대에 처해 있음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자기만 망하면 몰라도, 망하는 단계에 들어서서 곁에서 모세를 옹호하는 사람까지도 물어 넘기려고 하는 입장에 서 있는 사실들을 여러분이 실제 느껴야 됩니다.

그때에 조건이 된 것이 모세의 구리뱀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뱀을 들기 전에 모세가 주장하고 부르짖는 음성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 사명을 대신한 것이 오늘날 우리 교회의 원리고, 그 사명을 대신하여야 할 것이 통일교회의 길을 걸어 나가는 우리의 입장인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됩니다. 이런 때가 되었기 때문에 선생님은 역사적인 길을 가려고 합니다. 이러이러하여 우리 선조들이 망했기 때문에, 이것을 복귀하기 위해 문을 가로막고 있는 원한을 박차고 장벽을 무너뜨려 가지고 승리적인 민족의 문을 해방시켜야 할 각자의 책임이 있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선생님이 소원하는 것은 무엇이냐 하면, 여러분들은 옛날 모세의 명령에 움직이던 이스라엘 민족과 같은 사람이 되지 말자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와 아론과 훌을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주길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야 역사적인 원한을 넘고 새로운 가나안 복지를 향하여 행군할 수 있는 하늘의 군대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라구요, 여러분들의 생각이 어떤가. 선생님은 그렇게 생각해요.

12지파를 대신하여 가나안 땅을 정탐하라 할 때 어찌하여 열두 명이 들어갔느뇨? 하늘은 거기에서 서러워한 거예요. 1천 2백이 못 되고, 1만2천이 못 되고, 1백 2십만이 못 되었던 것을 서러워하신 것입니다. 어때요? 정탐하고 돌아온 모든 사람들은 다 반대하는데 거기에 있어서 `승리는 우리의 것이요, 애급에서 우리를 인도하던 하나님은 가나안 칠족이 있다 할지라도 우리 가운데 같이하시므로 어떤 원수도 우리 손으로 굴복시키고 남을 수 있다' 라고 첫번 각오의 심정을 잃지 않았던 여호수아와 갈렙이었지만, 정탐하고 돌아올 때는 낙망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60만 대중을 바라볼 때 소망에 지치고 지쳐 어떠한 하나의 조건도 붙들 수 없는, 이런 기준도 안 가진 마당에 있어서 가나안 7족을 공격한다는 것은 꿈에도 당치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런 미미한 이스라엘을 바로의 마수에서 인도하여 가나안 복지를 약속했다는 것을 철석같이 믿는 여호수아와 갈렙은 믿음의 보고를 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무엇이 있었기에 그렇게 할 수 있었느냐? 신념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가나안을 찾을 수 있는 주인이 되겠다는 신념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반대하던 모든 무리는 다 쓰러지고 충성하고 따르던 무리만이 남아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