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존재물은 사랑으로 대해 주기를 원해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159권 PDF전문보기

모든 존재물은 사랑으로 대해 주기를 원해

소를 끌고 가는 농부가 있다면 그 농부가 봄동산의 환경, 자연의 환경이 변화함과 더불어 거기에 박자를 맞추는 심정을 가지고,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 농토를 갈고 김을 매 주고 한다면, 자연과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뗄 수 없는 인연이 엉클어질 것입니다. 그런데 자연이 박자를 맞춰 자기의 새로운 생활을 준비하여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는데 반하여, 인간은 여기에 꼬드라지고 반대하고 질투심을 가지고, 자연을 업신여기고 밟아 치우는 마음을 가지고 농사를 짓는 다든가 혹은 자연을 대하는 사람이 있다면 자연이 얼마나 싫어하겠느냐 이거예요.

이 봄동산의 자연의 환경을 참 고스란히 백 퍼센트 흡수해 그 가운데에 하나의 생명이 깃들게 해 가지고, 자기 나름의 생활을 시작하려는 그 아름다운 생명체를 보호해 주고 가다듬어 주고 키워 줄 수 있는 입장의 사람이 못 되고, 이것을 밟아 치우고 업신여기고 그 가치를 무시하는 입장의 사람으로 나타나게 될 때 그게 얼마나 무섭겠어요? 사람으로 말하면 그럴 거예요. 얼마나 무섭고 얼마나 싫고 얼마나 끔찍하겠어요? 만약 그런 사람, 그런 주인의 밭에서 자라난 시금치라든가 무슨 채소라면 그것들이 못살겠다고 할 거예요. 그러한 채소, 그러한 푸성귀들이 주인을 대할 때 기쁨으로 뜯길 것이냐, 그저 할 수 없이 뜯길 것이냐?

그렇게 자란 푸성귀면 푸성귀, 채소면 채소들이 자기의 마음, 자기의 사정을 알아주지 못하는 농부의 손에 의해 뜯겨 가지고 어떤 상인의 손을 거쳐 팔려가서 먹히게 되는 그 자리에까지 도달하게 될 때, 그것이 사랑의 마음이 아니라면 얼마나 지긋지긋하고 얼마나 불쌍하고 얼마나 애석하겠느냐. 아름답게 죽어가는 그 자체를 주인이 잘 알아 가지고 주인의 손길을 기다리는 입장에서, 참주인을 반가와하는 자리에서 이것이 뜯겨 가지고, 또 자기를 반겨 주는 사람의 손을 거쳐 가지고 자기를 먹어 줄 수 있는 사랑의 주인을 만나게 된다면 얼마나 기뻐하겠어요. 이럴 수 있는, 처음과 같은 경우도 있을 것이고 나중과 같은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모든 존재물은 어느 것을 원할 것이냐? 처음과 같이 자기를 알아주지 못하는 주인을 맞이하는 것과 자기의 사정을 알아주고 자기의 모든 사정을 전부 다 알아 가지고 사랑스러운 마음 가지고 자기를 품어서 키워 주고 다듬어 주는 사람들의 손을 거쳐 가지고 사랑하는 사람의 입에 들어갈 수 있는 것, 두 종류가 있게 될 때에 모든 존재물은 어떤 것을 원할 것이냐? 틀림없이 첫번째 것이 아니고 나중의 것일 것입니다.

어려움 가운데서, 동삼삭 가운데서, 추운 가운데서 그 봄철을 맞으려고 고대하는 마음이 얼마나 강했겠느냐 이거예요. `어서 봄이 오소서' 그랬을 거예요. 사람 같으면 통일교회 교인 같으면 `풍파시련, 이 핍박 탕감노정 어서 지나가소' 하는 거와 마찬가지로 고기의 세계에서도 그랬을 거예요. 고기떼가 그저 얼음 밑에 모여 가지고 자기 생활을 염려하고 있다가 봄날을 맞이하여 얼음이 녹게 되면, 자기 활동무대가 넓어져 사방 어디든지 갈 수 있게 되어 자기가 즐겁게 활동할 수 있는 봄날을 맞이했다는 입장에서 고기를 잡는 어부들을 가만 보게 될 때, 이렇게 활개치고 좋아서 지금까지 어려운 과거를 잊은 듯이 아주 새로운 희망 가운데서 활개치며 활동하는 첫날에 어부가 `이놈아, 너를 잡으러 왔다' 이러는 것보다 동정하면서 예술적인 가치를 알아주는 것을…. 마음으로라도 말이예요, `나를 그렇게 생각해 주고 그렇게 잡아 주는 어부가 있을 것인가?' 할 거예요. 이왕 잡히는 고기라 할진대는 이렇게 생각하는 거예요.

`참 봄을 맞이하는 너를 잡는 것이 안됐다. 그렇지만 내가 너를 잡는 것은 이러이러한 목적과 이러이러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네가 필요하기 때문에 잡으니 용서해 주라' 이럴 수 있는 어부가 있고, 그저 `나는 너를 잡아먹기 위해 나타났다' 하는 사나이가 있을 것입니다. 이런 걸 생각할 때 거기에는 두 종류가 있다 이거예요.

그거 보면 자연환경에 있어서 자유스러운 천지를 맞이한 동물이나마 자기를 쉬게 하는 데 있어서 그 가치와 사상을 알아주고 그보다도 더 가치를 느끼면서 잡아 줘야만 이 천지를 창조한 그 주인도 역시 `그 녀석, 그래도 괜찮구만' 이렇게 생각하는 거예요. 만약 그렇지 않다면 `이 녀석아!' 할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