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안에 도착한 이스라엘 민족은 먼저 성전을 지었어야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174권 PDF전문보기

가나안에 도착한 이스라엘 민족은 먼저 성전을 지었어야

반대받은 게 나쁜 게 아닙니다. 대한민국 백성이 반대했어요. 그다음 제일 반대한 것이 기독교였어요. 지금도 반대합니다. 반대하는 이것은 어디까지 계승되느냐? 가나안 땅에 들어간 이스라엘 민족에게까지 따라 들어오는 겁니다. 가나안 땅에 있는 칠족이 반대하는 겁니다. 반대가 있어야 돼요. 싸워야 됩니다. 이스라엘 패들에게까지도 사탄이 따라 들어온 것입니다. 이스라엘 60만을 따라 들어온 패하고 가나안 칠족 패하고 하나되는 것입니다. 그 둘의 합한 힘이 이스라엘 민족보다 크다 할 때는 망하는 겁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이스라엘 얘기가 나왔으니 짚고 넘어가자구요. 이스라엘 민족이 40년 동안 광야에서 유리고객(流離孤客)하면서 피폐한 생활을 했습니다. 생활면에서는 주리고 형편이 없었어요. 그런데 가나안 땅에 들어가 보니 가나안 칠족은 잘산다 이겁니다. 비록 우상을 섬기고 있지만 말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은 부모나 아들딸들이 그 집에 붙어 가지고 잘먹고 잘살았으면 하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그러나 거기서 이스라엘 민족은 가나안 칠족을 넘어서 건국을 생각했어야 했습니다. 건국을 위해서는 하나님의 성전을 지어야 됐어요. 그 성전은 나라의 터전이 되어서 나라를 구할 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 성전과 하나되어 가지고 정신적 나라 기준에서 일치될 수 있는 사상적 터전을 이루어야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정신분야의 중심적 주체성을 세워서 국가적 체제권 내에 있어서 환경을 이끌어 갈 수 있는 국가체제의 상대권을 형성해야 했습니다. 상대권이 조성되어 있지 않을 때는 정신분야를 중심삼고 창조해야 됩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바벨론에 가서 살다 돌아와서 한 일이 그거였어요. 또, 가나안 복지에 들어가서 해야 할 일이 그거였습니다. 첫째로 해야 할 것이 뭐였느냐 하면 나라를 지도할 수 있는 성전을 짓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성전을 지어서 뭘할 것이냐? 자기 사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그걸 알아야 돼요. 자기 사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나라를 찾아야 돼요.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복지에 온 것은 나라를 찾아온 것입니다. 왜 찾아온 건가요? 나라를 찾기 위해서였습니다. 건국을 위해서였다구요. 건국, 나라를 세우는데 애급을 능가할 수 있는 나라를 찾아온 것입니다. 이걸 알아야 돼요. 애급에서 고생하고 신음하던 역사를 회상하고 애급에 돌아가겠다는 생각을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 이상으로 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서 그 앞에 나타난 가나안 칠족이 있으면 밀고 넘어가 가지고 그걸 토대로 점핑하여 애급보다도 더 큰 나라로서의 조국을 세워야 된다는 신념을 중심삼고 나가야 했던 것입니다. 누구에 의해서? 하나님과 더불어 성전을 중심삼고. 그래서 언제나 법궤를 모시고 다녔잖아요? 법궤 중심삼은 국민규합입니다. 그것을 알아야 돼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법궤를 중심삼은 국민규합입니다.

정신적인 주체 앞에 상대적 기준으로 국가 체제를 중심삼은 국민연합 체제를 만들어 놓아야 되는 것입니다. 나라를 건국해야 되는 거예요. 몸 마음이 완전히 하나님 중심삼고 하나되었으면 나라를 중심으로 거기에 상반된 모든 것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밀어제낄 수 있는 주체사상화된 행동력을 동반해야 됩니다. 이것이 가나안 복귀노정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가야 할 길이었던 거예요.

바벨론 포로시대에서 돌아와 가지고 말라기 시대에 해야 할 일 또한 성전복구운동이었습니다. 마찬가지예요. 그것을 해야 돼요. 안 하면 안 됩니다. 피폐한 모든 성전을 전부 복구해야 됩니다. 민족 정기의 주체성으로 등장할 수 있는, 하나님을 시봉하는 성전을 중심삼고 완전히 주체성 확립을 전국화시켜야 했습니다. 전국화뿐만 아니라 세계화시킬 수 있는 주체성으로 드러나기를 하나님은 바라셨던 거예요. 그것이 복고사상권 내에 있는 이스라엘 민족에 대해 하나님이 원하는 소원의 길이었다는 것입니다. 이걸 확실히 알아야 돼요. 알겠어요? 「예」

이스라엘 민족이 굶주리다 가나안에 들어와 보니 정착해 살고 있는 가나안 칠족은 양떼를 갖고 있고, 재산을 가지고 배불리 먹더라는 것입니다. 그거 얼마나 부러웠겠어요? 하나님이 원하시는 성전 건축과 조국 건국을 바랐어야 될 텐데, 이 나라를 비료로 삼아서 밟고 넘어가야 할 것이었는데 배고프니까 떡이나 주고 밥이나 주고 양고기 짜박지나 먹여 주면 제일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왜 광야에 끌어 내서 이 고생을 시키나. 가나안 복지가 뭐고 모세가 다 뭐야!' 했던 겁니다. 여기부터 이스라엘이 병들기 시작했습니다. 자기들은 배고파 굶더라도 2세들은 그걸 밟고 넘어갈 수 있도록 교육을 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자기들과 더불어 아들딸들도 가나안 칠족 아들딸하고 짝자꿍시키려고 했던 거예요. 왜? `그래야 우리 아들딸들이 여기서 정착하여 잘살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게 망할 패들입니다. 자기는 그런 입장에 서더라도 2세는 사막으로 내보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러지 않고 2세까지 처박아 넣었으니 망할 수밖에요. 순이 꺾여 나가고 가지와 뿌리까지 다 썩은 거예요. 그러니 망해야 되는 거예요. 마찬가지로 바벨론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민족이 애급에서 가나안으로 돌아와 가지고 한 것처럼 역사적 전통을 찾아 가지고 그 고비에 빠지는 날에는 망하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