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 치하에서 주님을 맞기 위해 정성을 다하던 복중교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231권 PDF전문보기

공산 치하에서 주님을 맞기 위해 정성을 다하던 복중교

요전에 목포에 갔더니, 약속도 없었는데 시장, 경찰서장을 비롯해서 기관에서 선생님을 모시겠다고, 조찬을 대접하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거 누가 결정했어요? 문씨 종친회 중에 유명한 사람이 있었더라구요. 그 사람이 기성교회 장로인데 `기성교회 목사가 이렇게 사기칠 수 있느냐!' 하며, 아주 분해서 쫄쫄이 패들을 모아서 그 목사 모가지를 쳐야 된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선생님이 `지금 제사를 드리는데 길가에서 놀음판이 벌어졌다고 들어가서 춤추겠어? 치워 버려!' 했습니다.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느냐? 그날 춘향의 고을 남원에 들렀습니다. 그곳을 열여덟 번을 지나갔다구요. 육삼 십팔, 6수의 3배, 18수를 지났습니다. 18수, 사탄 수를 넘어 열아홉번째 들른 것입니다. 그런데 허호빈 집단에서는 오시는 주님을 이도령으로, 자기네들을 춘향으로 딱 같이 본다구요. 옥중에서 그 사람 만난다 이겁니다. 애환과 부르짖음 속에서, 옥중에서 그 부인(허호빈)은 죽어 갔습니다. 그들은 공산 치하에서 주님을 맞기 위해서 온갖 정성을 다하던 무리였습니다.

그 내용을 여러분들은 잘 모르지요. 하늘이 얼마나 준비를 했겠어요. 그들은 오시는 주님이 사람으로 와서 어린애 때부터 일생 동안 먹고 살 수 있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일체의 준비를 다 했던 집단입니다. 양복 치수며, 옷 치수까지 전부 다 하늘이 가르쳐 주면서 준비시켰던 것입니다. 그런데 공산 치하가 되어 감옥에 잡혀 들어갔습니다. 나도 지하운동을 한 조직의 책임자니까 같이 감옥에 들어간 것입니다.

감옥에 들어가니 그 부인과 같이 상대가 되어서 교육하고, 전체를 책임지고 있던 황원신이라는 사람이 그 방에 있었어요. 그때가 1946년 8월 11일인데, 11시쯤에 내가 들어갔다구요. 들어가니까 그 사람이 벌떡 일어나더라구요. 전부가 처음 보는데 다른 사람은 인사도 안 하지요. 감옥에 처음 들어오면 누가 사람 대접을 해요? 그러니 똥통 옆에 들어가게 돼 있다구요.

그런데 그 사람은 길을 다 안내해 주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오래 있었어요. 그렇지만 내가 감옥의 전문가 아니예요? 감옥에 대해서는 잘 알거든. 이것은 이렇게 이렇게 되어서 이렇게 되는 것 아니냐고 하니, 벌써 통하는 사람이라는 걸 압니다. 그러니 사실 가르쳐 줄 필요가 없어요. 내가 자기들처럼 어디 가서 얹혀 살게 돼 있지 않아요. 다 볼 줄 알고, 다 알지요.

선생님이 잠을 자려고 하는데, 그 사람은 앉아서 `사바사바' 하고 있더라구요. 나는 고단해 가지고 감옥에 가더라도 무슨 콩밥 주면 콩밥 먹고 잘 자거든요. 자기 집같이 자고 일어나는 거예요. 그런데 그 다음날 아침에 그 사람이 나에게 와서 경배를 하더라구요. 옥중에서도 하나님의 역사는 살아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왜 이러냐고 하니까 `저는 압니다. 저는 말씀을 드려야 됩니다.' 이러면서 자기 집단에 대한 모든 것을 얘기하는 것입니다. 영계에서 통보해 줬기 때문에 이분에게만은 보고해야 되겠다 하는 거예요.

이런 내용을 알기 때문에 보고한다고 하면서 전부 다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그 내용을 보통 사람은 모르는 거예요. 신비적 베일에 싸인 저쪽 편 영적 세계의 사실이에요. 보통 사람은 무슨 말인지 모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이런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하니 놀라는 거예요. 자기가 모르는 걸 알고 있거든. 그러니까 완전히 선생님의 제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거기서 우두머리 놀음을 하는 거예요. 거기서 자기 사모님(허호빈)이 주님을 맞이하는 것은, 감옥에서 춘향이가 이도령 만나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나를 만날 길은 그 길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이 계시를 받을 때는 `복중에서 움직인다.' 해서 복중교라고 했습니다. 주님이 자기 배를 통해서 나타난다는 거예요. 그것이 애기로 태어나는지 어떤지 그것도 모르고 무조건 나타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경찰에서는 복중교 사건을 너무 오래 끄니까 이것이 사회 문제가 된 것입니다. 그때 평양은 한국의 예루살렘이라고 불리는 곳이기 때문에 기성교회의 신앙 판도가 대단했거든요. 종교 문제를 중심삼고 여론이 나빠지니까, 치안 당국에서는 `이 내용을 확실히 모르면서 선전했다. 전부 거짓말이다.'라고 한마디만 하면 내보내 주겠다고 했는데, 복중교에서는 입을 다물고 죽더라도 안 한다고 버티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모든 책임은 내가 질테니 빨리 감옥을 나가는 것이 여러분들이 살 수 있는 길이다.' 이렇게 편지를 썼습니다. 이래 가지고 밥 나르는 사람을 내가 잘 구슬러서 쪽지를 딱 전달했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들켜서 사태가 났습니다. 그때 책상 각목, 큰 각목이 있었어요. 여기 어금니가 그때 그걸로 맞아 가지고 갈라진 것입니다. 그런 걸 생각하면 얼마나 비장해지는지 모릅니다. 그때 나도 고문 참 많이 받았지요.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어머니 대회 격려사를 할 때, 참 그야말로 비장한 심정에서 했습니다. 보통 격려사를 하면 8분밖에 안 걸리는데, 어머니 앞에서 얘기를 하니까 박수를 여덟 번씩 하더라구요. 어머니로 인해 기록이 완전히 깨졌다구요. 그날은 완전히…. 그런 심정을 여러분은 모르지요. 그때 복중교는 옥중에서 이도령을 다시 만나 해원성사, 해방의 한 날을 그리면서 자기 낭군 오기를 기다리는 춘향이의 심정처럼, 딱 그와 같은 상황이었다구요. 내가 그렇게 전도를 했지만 내 말을 듣지 않아서 다 죽었던 것입니다.

주님이 오면 한식으로나 양식으로나 최고의 것으로 수십 트럭 되는 옷을 준비해 가지고, 신식 생활을 하면서 최고의 일생을 살 수 있게 해 놓은 것을 전부 공산당 놀음으로 인해 다 빼앗기고, 그렇게 죽은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사정이라든가 예수님이 어떻게 죽었다는 것을 전부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런 내용을 선생님이나 알지, 다른 사람이 알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