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란된 세계에서 뿌리 될 수 있는 것은 종교밖에 없어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233권 PDF전문보기

혼란된 세계에서 뿌리 될 수 있는 것은 종교밖에 없어

여기에서 뜻이 있어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 세계가 어디로 가야 하느냐? ' 할 때, 평면적인 사건을 가지고는 이 세상을 수습 못 한다는 것을 압니다. 인간들이 제 아무리 나라를 수습한다고 하고, 제 아무리 사상적인 기준에서 인간들끼리 주장하는 동서 사방의 그 어떠한 주장을 가지고도 이걸 수습할 도리가 없다 이거예요. 단 하나의 길이 있다면, 하나님이 있다면 그 하나님으로부터 대책을 강구할 수 있는 길이 나오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생각하는 사람은 그 해결책밖에 없다는 결론을 짓게 되어 있습니다.

북한의 실정을 보아도 그렇습니다. 북한도 역시 마찬가지라구요. 자기들이 주체사상을 중심삼고 주장하지만, 그것 가지고는 안 된다고 하는 걸 알고 있다구요. 소련은 이미 꺼져 버렸고 중공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현재의 경제 체제로 나가면서 공산주의 체제를 끌고 나가려 하지만, 그거 오래 못 갑니다. 때가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혼란된 사회 실상에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역사가 어디로 가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대한민국이 어디로 가느냐가 문제가 아닙니다. 역사라는 것은 개인의 주장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닙니다. 천운에 의해서 움직인다구요. 알겠어요? 무엇에 의해서 움직인다고? 「천운입니다. 」오늘 시간이 없어서 내가 말을 좀 빨리 해야겠습니다. 천운에 의해서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천운이 뭐예요? 천운이라는 말을 하고 있지만, 천운이 뭐냐 할 때는 모르는 거예요. 안 그래요? 천운이 뭐예요? 또, 국운(國運)을 말하는데 국운이 뭐예요? 여러분들이 시장에 가서 그날 이익되는 일이 있으면 `운 좋았다. ' 그러지요? 그런 뭐가 있다구요.

나무를 중심삼고 보게 되면, 나무가 자라기 위해서는 뿌리가 사는 방법하고 가지가 사는 방법이 다릅니다. 그걸 알아야 됩니다. 뿌리는 뿌리대로 땅에서 진액을 빨아들여야 되고, 가지는 공기에서 요소를 흡수해 가지고 조화시켜야 됩니다. 상하를 연결시켜야 된다구요.

이렇게 볼 때에, 우리 인간의 삶에도 뿌리 될 사람이 있어야 되고, 가지가 될 사람도 있어야 됩니다. 그러면 대체로 보게 될 때, 어떤 사람이 뿌리가 되겠느냐? 어떤 급의 사람이 뿌리가 되어야 하겠느냐? 시대가 변천한다고 해서, 춘하추동이 변한다 해서 뿌리가 왔다갔다 변할 수 없습니다. 한번 박히면 천년 만년, 생사지권(生死之圈)이 끝날 때까지 거기에 고착되어 있어야 됩니다. 아무리 옮기고 싶어도 옮겨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에, 인간세계에 오랜 역사를 통해서 뿌리로 남아질 수 있는 단체, 모임, 개인이 있다면 어떤 것이냐? 그것은 종교밖에 없다는 결론이 내려지는 것입니다.

잎과 가지는 수시로 자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잎과 가지가 자라는 걸 보고 `아하, 나무가 잘 크는구나!' 하고 생각하겠지만, 잎과 가지가 자라기 전에 뿌리가 먼저 자라고 있었다는 걸 알아야 된다구요. 그러면 뿌리가 먼저 자랄까요, 가지가 먼저 자랄까요? 어떤 거예요? 「뿌리가 먼저 자랍니다. 」 정말이에요? 「예. 」 그렇게 봐야 된다구요. 왜? 뿌리에서부터 싹이 나옵니다. 원칙이 그래요. 모든 싹이 나오려면 뿌리를 먼저 내려야 됩니다. 그래야 싹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뿌리가 먼저이고 가지는 다음입니다.

이렇게 볼 때, 인류 역사상에 그래도 뿌리의 입장에 설 수 있는 인종지권을 무엇을 중심삼고 인정해야 되느냐? 여기서 종교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가외(加外) 사람들은 전부 가지입니다. 가지는 전부 곧기를 바라고 종대를 중심삼고 동서남북으로 뻗기를 바라는데도 불구하고 그 가지가 구부러진다면 그건 이상적인 가지가 아니예요. 그런데 제멋대로 가지가 찢어지고 별의별 병이 나고 별의별 요소가 다 있다구요. 그걸 바라보면 절망적입니다. 그 가지 자체로 봐서는 희망이 없지만, 그 자라는 나무 전체를 볼 때는 희망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뿌리 될 수 있는 사람은 종교권에 있는 사람이요, 가지가 될 수 있는 사람은 일반 세상을 중심삼고 사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종교인들과 세상 사람이 둘이 되어야겠느냐, 하나가 되어야겠느냐? 둘이 되면 둘 다 망하는 거예요. 없어지는 것입니다. 주체와 대상이 상대적 기준을 갖지 못하게 될 때는 그 주체마저도 없어지는 것입니다. 전기로 말하면, 플러스가 있어도 마이너스가 안 나타나면 플러스도 없어지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이 세계를 평가해 보면 뿌리 될 수 있는 사람은 틀림없이 종교권 사람이고, 가지 될 수 있는 사람은 세상의 방향을 따라가면서 사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햇빛이 나오게 되면 모든 순(荀)들은 전부 햇빛을 따라가지요? 이와 같이 일반 사람들은 가지와 같이 세상의 모든 이익을 따라서 살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들이 둘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걸 하나 만들어야 됩니다.

우리 자체를 두고 보게 되면, 우리 자체에서의 뿌리가 뭐예요? 세계의 뿌리가 종교권이라면 우리 자체의 뿌리는 뭐예요? 여러분, 마음과 몸이 있지요? 여기서 마음이 뿌리가 되겠어요, 몸이 뿌리가 되겠어요? 「마음입니다. 」 그 마음은 어디에 달려 있어요? 자기 조상에게 달려 있습니다. 맨 밑에 들어가면 물론 하나님에게 달려 있는 거지만, 조상에게 달려 있는 거라구요.

그러면 조상들이 선했다고 보느냐, 악했다고 보느냐? 악했다고 보는 것입니다. 천 사람 만 사람 불러 세워 놓고 이 세상이 선한 세계냐고 묻게될 때에, 선한 세계라고 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구요. 이처럼 모든 사람들이 이 세계를 악한 세계라고 볼 때는 거쳐간 역사도 악한 역사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인류 역사는 순로가 아닌 역로적 길을 걸어왔다는 논리를 부정할 수 없습니다. 아시겠어요? 그러면 어떻게 가야 되느냐? 순로를 찾아가야 할 텐데, 순로를 찾아가는 데는 반드시 중심이 있어야 됩니다. 모든 것은 초점을 맞춰야 됩니다. 둘이 하나되기 위해서는 초점을 맞춰야 된다구요. 남자 여자가 하나가 되는 데는 사랑이라는 초점을 중심삼고 하나되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눈도 초점을 맞춰 가지고 하나되는 것입니다. 전부 초점을 맞추는 거예요. 귀도 초점이 맞아야 잘 들리고, 보는 것도 초점이 잘 맞아야 잘 보이고, 숨 쉬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코도 초점이 안 맞으면 찡찡대지요? 다 초점이 맞아야 돼요. 손발도 초점이 안 맞으면 불구가 됩니다. 다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 인간도 초점을 맞추어야 되는데, 그 초점은 일시적 초점이 아닌 영원한 초점이 되어야 됩니다. 그러면 인간에게 있어서 몸과 마음이 무엇에 초점을 맞추느냐? 사랑이라는 거예요. 내 개인을 두고 볼 때, 종적인 면에서 초점을 맞추는 데는 사랑을 중심삼고 맞추는데, 그게 무슨 사랑이냐 하면 참사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