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힘의 작용 법칙과 진화론의 허구 - [8대교재교본] 천성경 우주의 근본

나. 힘의 작용 법칙과 진화론의 허구

오늘날 진화론을 적용하는데, 아메바면 아메바가 번식해 나오는 데 있어서 아메바보다도 큰 게 생겨나기 위해서는, 현재의 것보다도 크게 되기 위해서는 다른 힘이 가해져야 됩니다. 힘이 플러스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아메바 스스로가 혼자서 힘을 플러스시키면서 발전할 수 있습니까? 자체가 그런 힘을 가입시킬 수 있느냐 이겁니다. 그런 능력이 있느냐 이겁니다. 조금 더 올라가서 더 큰 것이 될 수 있다면, 여기에 더 큰 힘을 플러스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체가 힘을 창조하여 플러스시킬 수 있는 능력이 없는데 어디서 어떻게 오는 거예요? 그런 논리가 성립돼요? 미스터 김이라면 미스터 김, 미스터 박이라면 미스터 박이 있을 때 `내가 뭐 무하마드 알리 같은 것은 문제없이 잡아 치운다.` 그럴 수 있습니까? 그러려면 여기에 더 큰 힘이 가해지든지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했더라도 한계선을 넘을 수 없는 것입니다. 미스터 박이 `돌연변이에 의해 내 힘이 커지면 알리를 때려 눕힌다.` 해서 그렇게 될 수 있습니까? 그럴 수 있습니까? (89-73, 1976.7.11)

힘의 공식적인 원칙을 보면 말입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들어오는 힘과 나가는 힘이 같을 수 있습니까? 힘이 들어와서 이렇게 작용했는데, 작용하려고 들어오는 힘과 작용하고 난 후의 힘이 같을 수 있습니까? 여기에는 소모가 벌어집니다. 그렇지 않아요? 운동을 하면 소모가 벌어지지요? 그러니 들어오는 힘과 같을 수 없습니다. 작용하고 난 후에는 힘이 언제나 작게 마련입니다. 진화론자들은 작용하고 나면 힘이 더 커진다고 합니다. 그런 공식은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이 세상은 뒤집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2의 힘이 필요합니다. (55-256, 1972.5.9)

진화론자들은 아메바가 점차 진화해 고등동물인 원숭이가 되고, 그 원숭이가 진화되어 사람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사람이 사람 이상의 힘을 발휘하려면, 그 힘을 어디에서든 보충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힘의 원칙이 그렇습니다. 힘은 작용을 하면 반드시 소모됩니다. 여기에 힘을 보충해 주어야 또 작용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38-156, 1971.1.3)

주체와 대상이 작용하여 현재보다 못하게 되면 작용을 안 하는 것이요, 보다 나을 수 있는 서로의 목적을 발견하면 작용을 하는 것이 원칙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 문제를 중심삼고 진화론을 보면, 진화하는 데도 보다 나을 수 있는 목적적인 그 무엇을 갖지 못할 때에는, 발전할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발전하기 위해서는 횡적으로 보다 강한 힘이 가중되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발전할 수 없습니다. 그 힘은 작용할 수 있는 목적과 대상이 없어가지고는 절대 안 됩니다. (54-13, 1972.3.9)

진화론의 모순이 무엇이냐? 아메바가 진화·발전하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합니다. 점점점 커 나가기 위해서는 제3의 힘이 필요합니다. `내가 윗단계, 높은 단계의 물건으로 태어나겠다!` 하려면 거기에다 어떤 무엇인가를 플러스시켜야 되는 것입니다.

힘이 가해지지 않고는 커질 수 없는 것입니다. 제3의 힘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아메바가 더 커갈 수 있는 힘을 창조해 가면서 아메바가 자랄 수 있느냐, 살 수 있느냐 이겁니다.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265-58, 1994.11.20)

진화론에서는 발전이 어떻게 됩니까? 진화론은 입력과 출력의 법칙과 반대입니다. 세상에 이런 원칙이 어디 있습니까? 진화론은 절대 커지는 것이지요? 진화가 작아진다는 말이에요? 진화론에서는 아메바가 자연 발생해가지고 점점 커 올라가서 원숭이로 진화·발전하고 사람으로 진화·발전했다고 합니다. 진화론에 따르면 그것이 커지는 거예요, 작아지는 거예요? 그러나 힘의 원칙에서는 입력과 출력이 같을 때 절대로 커질 수 없습니다. 작아지는 것입니다. 힘의 소모가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37-16, 1970.12.22)

역학세계에서는 입력·출력권을 중심삼고 작동하면 반드시 로스(loss:손실)가 생기기 마련입니다. 내려가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향진할 수 있는 논리가 어디서 나오느냐 이겁니다. `진화`라는 자체가, 나아가면서 화한다는 자체가 플러스 플러스한다는 말인데, 그것이 어디에서 플러스됐느냐 이겁니다. 투입한 입력보다도 출력이 커야 되는 논리를 어디에서 찾을 것이냐? 작용하면 로스가 생기기 때문에 입력은 출력보다 큰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진화라는 논리는 형성될 수 없습니다. 3점 가입을 그 자체가 투입할 수 없고, 그 다음에 운동하는 세계에는 입력보다도 큰 출력을 자체가 발생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면 무한동력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문제가 뭐냐? 오늘날 진화론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성관계를, 플러스와 마이너스, 남과 여, 암술과 수술, 플러스 이온과 마이너스 이온이 합해 운동을 통해서 나왔다는 것을 잊어버렸습니다. 아메바에서 사람까지 오려면 몇천 단계의 사랑의 문을 통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게 그냥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엉터리 같은 녀석들! 모든 종의 원칙이라는 것은 엄격한 것입니다. 제3자의 개입을 허용하는 존재가 없습니다. (214-193, 1991.2.2)

진화론을 주장하려면 진화될 수 있게 하는 힘을 어디서부터인가 보충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핵의 변혁 형태를 자기 자체에서 이뤄 연합시킬 수 있는 자제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진화는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오는 겁니다. (117-73, 1982.2.1)

주체와 대상이 있으면 반드시 목적이 있어가지고 방향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진화에 어떻게 방향성과 목적이 있을 수 있느냐 이겁니다. 진화론에서는 이런 이론을 적용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목적과 방향성으로 공산주의를 깨야 됩니다. 이 엉터리 이론을 가지고 세계를 유린해 버리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아메바가 작용을 하면, 들어오는 힘보다 작용이 작을 텐데 어떻게 커지느냐 이겁니다.

어떻게 큰 게 나와요? 아메바에 있어서 입력보다 출력이 작기 때문에 큰 것이 나올 수 있기 위해서는 제3의 힘이 투입돼야 됩니다. 그러지 않고는 진화론의 근거가 깨져 나가는 것입니다. 아메바 자신이 제3의 힘을 투입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까? 이 엉터리 같은 녀석들! (210-156, 1990.12.18)

진화론을 말할 때 진화되는 아메바 자체가 진화의 시작인 3점을 만들어낼 수 있느냐? 작용하려면, 운동하려면 3점에서 돌아오면서, 회전할 수 있는 4점 기준을 거쳐야 됩니다. 3점에서부터 4점을 거쳐야 됩니다. 원형으로 주고받으며 운동하려면 3점에서 4점을 거쳐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메바 자체가 다시 자기 위치로 돌아올 수 있는 360도로 순환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느냐? 없습니다.

그러면 3점의 힘은 누가 가했느냐? 그것은 이론적으로 또 다른 힘이 첨부되어야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니까 진화할 때 진화의 방향이 어떻게 되느냐? 그 방향성을 누가 결정하느냐 이겁니다. 진화되는 아메바 자체는 방향성을 갖출 수 없습니다. 그걸 볼 때 돌연변이라는 것은 미치광이 수작입니다. 그걸 누가 받아들여요? 요즘에 진화론이라는 것은 이미 쓰레기통에 들어가서 다 썩어 버린 말입니다. 뭐라고 할까, 거름더미와 같이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는 물리학이 발달해 모든 원자에도 의식이 있다고 하는 이원론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 논리는 통일교회의 이성성상 원리 말씀과 같습니다. 차원은 다르더라도 만물이 다 알아듣는다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그래야 세균 같은 것도 살아먹는 겁니다. 안 그래요? 세균같이 보이지도 않는, 몇천만 분의 일밖에 안 되는 크기로 살고 있는 세균에게 귀가 있겠어요, 없겠어요? 눈이 있겠어요, 없겠어요? 코가 있겠어요, 없겠어요? 입이 있겠어요, 없겠어요? 거기에 생식기가 있겠어요, 없겠어요? 다 갖추고 있다는 것입니다. (209-187, 1990.11.29)

하나님도 이 세계를 창조할 때 3점부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진화론이라는 것, 진화라는 말을 우리가 인정할 수 없습니다. 아메바가 작용을 한다면, 작용을 하는 데 있어서 3점 기준을 자기 스스로 택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 3점 기준은 또 다른 하나의 힘에 의해 형성되는 것입니다. 이래가지고 운동하면 할수록 거기에는 반드시 원형을 거쳐서 운동한 그 점수를 가해 구형운동을 거쳐 나가는 것입니다. (212-278, 1991.1.8)

진화론 믿는 멸종분자들. 여기에 진화론 믿는 패들 있어? 교수란 짜박지들이 그런 걸 잘 믿지? 그게 왜 그러냐? 상대가 안 되는 물건을 아무리 힘을 통해가지고 해도, 하나님이라 해도 화합작용도 안 하거니와 하나도 안 돼! 왜? 이게 우주의 법입니다! 왜? 사랑이상을 중심삼고 지었고, 상대성을 가려줬기 때문에 우주는 쌍쌍제도로 되어 있습니다.

아메바에서부터 사람이 돼요? 직선상에서는 조화가 없습니다. 이런 거 이론적으로 얘기하려면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직선세계에서 어떻게 3점을 만들어내느냐? 3점, 4점, 4각형을 어떻게 만드느냐 하는 문제, 여기서부터 조화가 벌어집니다. 원형이 어디서 나오느냐? 직선에서는 안 나옵니다. 아메바가 3점 자체를 책정하고 그것을 형성할 수 있는 자체력이 있느냐? 없습니다. 운동하게 되면 직선으로 하는 것입니다. (211-254, 1990.12.30)

아메바를 중심삼고 수천 계단이 사랑의 법으로 다 쌓여 있는데 그게 어떻게 사랑의 문, 남자와 여자의 사랑의 문을 다 넘어갈 수 있습니까? 없습니다. 진화론의 문제가 뭐냐 하면, 제3은 어디서 왔느냐 하는 것입니다. 사랑의 고개를 넘어서야만 종의 번식이 가능한데, 그 문을 통해 갔느냐, 그냥 그래도 넘어가서 원숭이가 됐느냐 그겁니다.

그 다음에는 진화론이라는 것이 암놈과 수놈이, 이 모든 광물에 있어서 원소세계도 플러스와 마이너스가 있는데, 플러스와 마이너스라는 상대적 개념보다 먼저 있었느냐 할 때, 그건 나중에 있었다는 게 사실입니다. 그러면 이 우주의 주체와 대상 관계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건 자기 정도 이상을 넘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263-274, 1994.10.15)

직선상에는 조화가 벌어지지 않습니다. 직선은 뭐냐 하면 2점을 연결한 것입니다. 창조가 되기 위해서는 3점, 4점, 스페이스가 필요합니다. 이 3점을 누가 갖다 만들어 놨어요? 직선 자체가 할 수 있느냐 이겁니다. 답변해 보십시오. 위 3점에 아래 3점을 누가 갖다 뒀느냐 이겁니다. 그러면서 우주의 모든 발전을 하는 것입니다. 그 말은 운동이라는 것은 주체와 대상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체와 대상이 없어가지고는 안 됩니다.

또 그 다음에 하나는 뭐냐? 역학세계에서는 입력이 출력보다 큽니다. 그러면 아메바가 운동하는 데 있어서 출력이 크다는 논리가 어디 있습니까? 올라가는 게 아니라 내려가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진화론은 다 정리해야 됩니다. (215-232, 1991.2.18)

직선상에는 조화가 없습니다. 3점에서부터 모든 구형세계의 조화 기준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진화론에는 3점을 제시할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창조를 무시할 수 없는 전통적인 내용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직선상의 점에는 그런 것이 없습니다. (227-267, 1992.2.14)

우주의 창조를 두고 볼 때, 직선세계에서 어떻게 3점의 기준을 세우게 되었는가 하는 생각을 해 본다면, 진화론의 관점에서 우주가 시작되었다는 결론을 지을 수는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3점을 중심삼고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세 점이 있다는 것은 반드시 상대를 중심삼고 볼 때, 그것을 연결시켜 주는 핵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227-31, 1992.2.10)

진화론은 이미 지나간 폐론입니다. 방향성이 없습니다. 이런 것을 중심삼고 볼 때 방향성이 설정됐다는 것은 플러스와 마이너스 둘에게, 상대권에 다 공동적인 이익을 가져다 줄 수 있는 길이 결정된 것입니다. 중도(中道)인 동시에 정도(正道)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둘 다 좋아할 수 있는 길을 가는 것입니다. 진화론자들은 입력과 출력의 관계에 대한 논거에 해답을 못했습니다. 그리고 또 방향성 제시를 못했습니다.

제3의 힘을 가해서 더 큰 물건을 끌어들일 수 있는 내용적 힘을 아메바 자체가 개재시킬 수 있는 자주력을 가졌느냐 할 때, 없습니다. 말도 말라는 것입니다. 그 방향성은 사랑의 방향성입니다. (207-256, 1990.11.11)

진화론을 결론짓고 넘어가자면 진화될 수 있기 위해서는, 아메바가 클 수 있는 제3의 힘을 자기가 창조해요, 보급받아요? 아메바가 진화되어 크기 위해서는, 현재 상태에서 크려면 제3의 힘이 가해야 할 텐데, 자기가 창조하면서 커요, 남의 힘을 받아서 커요? 창조 못하면 힘을 받았다는 논리를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또, 무턱대고 뼈다귀가 같다고 진화해? 그런 미친 녀석들이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정신병자입니다. 아메바에서 원숭이까지 갈 때는 수천 종의 계급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종의 구별이 있다 그겁니다. 그것이 뭐냐 하면, 모든 종들은 남과 여, 수놈과 암놈의 사랑의 문을 통해서만 나오게 돼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수천 종 사랑의 문을 통과하는 걸 잊어버리고 뼈다귀가 같다고, 닮았다고 진화했다고 할 수 있습니까? 그 수천 계급의 고개를 넘어가가지고 발전했느냐 그 얘기입니다. (263-273, 1994.10.15)

태어날 때 눈을 감고 태어나요, 눈을 뜨고 태어나요? 그럼, 내가 언제 눈을 뜬다 하고 떴어요, 자연히 떴어요? 또, 엄마 젖을 먹는다는 교육을 받았어요, 안 받았어요? 그런데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됐어요? 거기에는 보이지 않는 지남석 줄이 있습니다. 작용하는 모든 것의 원칙적인 길이 다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모든 작용이라는 것은 우연히 벌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여기서 알아야 됩니다.

오늘날 진화론자들은 `우주가 발전했다. 자연발생이다.` 이렇게 말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자연발생 하느냐 이겁니다. 어떻게 그냥 그대로 자연발생 할 수 있느냐 이겁니다. 원인도 없고, 동기도 없고, 과정도 없고, 결과도 없이 발생할 수 있느냐 이겁니다. 동기가 제일 먼저고, 원인이 제일 먼저고, 그 다음이 방향입니다. 그러면 방향이 왜 나왔느냐 이겁니다. 존재 그 자체가 `나는 이렇게 가야 된다.` 하는 걸 의식하고 가요? 눈은 왜 떠지는 거예요? 눈을 뜨면 뜨자마자 안을 들여다봐요, 밖을 내다봐요? 왜 그렇게 봐야 되느냐 이겁니다. 그런 방향성이 어디서 나오는 거예요? 어떻게 그렇게 되느냐 이겁니다. 존재하는 것은 방향을 따라가기 위해서 존재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94-11, 1977.6.19)

우리는 눈 하나 놓고도 대답을 다 못합니다. 오늘날의 변증법이나 진화론을 가지고 이걸 이야기 못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앞으로 공산주의자와 싸워야 됩니다. 이제 진화론과 변증법을 깨뜨려야 됩니다. 진화론만 깨뜨려 버리면 변증법은 깨진다 이겁니다. 지금 싸움은 뭐냐? 의식이 먼저냐, 물질이 먼저냐 하는 문제입니다. 공산세계는 `물질이 제일이다. 물질이 처음이다.` 하고, 민주세계에서는 `의식이 먼저다.`라고 합니다. 눈이 어떻게 생겨났느냐 할 때 눈이 그냥 생겨나고 싶어서 생겨났다고 생각하는 녀석은 미친 녀석입니다.

코는 가만히 있는데 눈은 왜 움직여요? `왜 눈이 움직여?` 할 때에 `움직이고 싶어서 움직이지.` 하는 것이 진화론식이고 변증법식입니다. 눈의 목적은 보는 것입니다. 보는 데 목적이 있기 때문에 움직이는 것입니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움직이는 것입니다. 코는 먼지가 붙어도 가만히 있는데 눈은 왜 이렇게 자꾸 깜박거리느냐 이겁니다. 왜 그래요? 왜 그러냐 하면 수분이 증발되어 마르니까 수증기를 뿌려주기 위해서 그러는 것입니다. 눈썹은 왜 났어요? 먼지를 막기 위해 났습니다. `왜 그렇게 돼 있느냐?` 할 때, 그렇게 되고 싶어서 되었지 하는 게 진화론식이고 변증법식입니다. 그것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그냥 그렇게 됐다는 녀석이 있으면 `이 녀석아, 미친 녀석아! 수작 마라!` 이럴 것입니다. (93-176, 1977.5.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