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 진화론은 이미 시대에 뒤진 사상 - [8대교재교본] 천성경 우주의 근본

② 진화론은 이미 시대에 뒤진 사상

지금 세계의 주류사상으로 볼 때는 개념과 실재가 철학세계의 2대 주류가 되어서 유신론과 유물론, 좌익과 우익의 투쟁으로 세계에 미친 그 피해는 막대한 것입니다. 좌익사상이라고 하는 것은 진화론에 의해서 세계적으로 패권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남자와 여자라고 하는 개념이 먼저예요, 사랑이 먼저예요? 남자와 여자가 있기 전에 사랑이라는 개념이 먼저 있었습니다. 사랑이 먼저 있었기 때문에 남자와 여자도 거기에 대비해서 그 사랑의 개념에 일치하게끔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념과 실재는 갈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개념과 실재가 사랑에 의해서 하나 될 수 있다는 것을 공산주의는 몰랐습니다. (228-162, 1992.3.27)

지금까지 세상 학자들에게 있어서 진화론이 먼저냐, 하나님의 창조가 먼저냐 하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사랑 개념이 있기 전에 먼저 진화 개념이 있었어요? 어느 게 먼저예요? 진화론이 먼저가 아니라, 그것은 이 사랑의 개념이 먼저 있고 난 후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쌍방제도의 우주가 먼저 생기고, 그 가운데 형체적인 구조가 맞는 것이 진화론 형태로 맞을 뿐이지, 근본이 그래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모든 새 종류는 형태가 다 마찬가지입니다. 그렇지만 종의 구별이라는 것은 다릅니다. 참새와 멧새가 부부가 되어 새끼를 낳을 수 있습니까? 그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아메바에서부터 사람까지는 몇천 단계의 종의 구별이 있는데 이것을 무시하고 한꺼번에 `쑤욱` 사람이 나올 수 있습니까? 천만부당입니다. 종의 구분은 절대적입니다. (228-61, 1992.3.3)

공산주의도 신이 있다고 돌아갈 수 있는 그런 사상적 개념을 어디서 찾느냐 이겁니다. 절대적으로 유물론을, 절대적으로 진화론을 부정할 수 있는 확정을 지어야 되고, 몸과 마음이 하나 될 수 있는 확정을 지어야 되고, 이상적 출발을 나에게서 시작해야 된다는 이런 기준을 어떻게 만드느냐, 통일하느냐 하는 문제가 세계사적 문제입니다. 공산 블록이 진화론을 주장했고, 창조론은 종교권이 주장해가지고 이 둘이 싸웠습니다. 그래서 세계적 블록이 주장하던 것이 다 실패했습니다. 그러니까 어디서부터 이걸 출발해야 되느냐 하면, 세계적 기준이 아닙니다. 개인에 들어가야 됩니다. 개인에서부터 잘못되어 이런 결과가 됐으니 개인에서부터 유심·유물을 중심삼고 판정을 해야 됩니다.

진화론을 걷어치워 버리고, 절대적 하나님을 중심삼은 창조론을 중심삼고, 절대적 하나님을 중심삼은 절대가치의 핵을 세우지 않고는 세상이 왔다갔다한다는 것입니다. (270-97, 1995.5.7)

오늘날 진화론이라든가 유물변증법·인식론·유심론·유물론 등으로 인하여 세계의 사상계는 모순과 혼란에 빠지고 말았으니 절대진리를 수립해야만 절대적 가치세계의 형성이 가능한 것입니다. 절대가치적 존재는 영원·불변·유일한 존재입니다. 그러면 우주 가운데서 영원·불변·절대의 원리가 무엇이냐 하면, 원인과 결과, 주체와 대상의 관계라는 결론이 됩니다. (89-226, 1976.11.27)

오늘날 진화론이 사실이냐, 조화의 창조가 사실이냐 하는 것이 큰 문제가 돼 있습니다. 그 진화론의 방향성은 누가 결정하느냐? 자기가 결정하나요? 발전하는 그 물질이 결정할 수 있습니까? 또 문제는 그 자체가 이상권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힘을 어떻게 길러낼 수 있느냐, 더 품어낼 수 있느냐, 플러스시킬 수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에 의해서 가능한 것입니다. 그런 문제는 과학도 해명 못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물질에도 역시 사람의 욕망과 같은 것이 있는데, 그 욕망적 방향은 하나님과 하나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목적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여기에 있어 우주의 모든 원소들의 종합적 대표, 이 물질세계의 대표가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111-127, 1981.2.8)

생각의 근거지가 어디냐? 어떤 사람은 머리에 있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가슴에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 내가 가슴에 있는 거예요, 머리에 있는 거예요? 그것만도 아닙니다. 이렇게 보면 내가 존재하는 것보다도 생겨나기를 존재하는 것은 결과적인 것이니, 어떻게 해서 생겨났느냐? 즉 기원이 어떻게 되었느냐? 이게 문제입니다. 내가 어디서부터 시작됐느냐?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인간이 동물계로부터 진화됐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할 수 없이 만든 방편적인 이론입니다. 논리적인 연결을 짓기 위해서 할 수 없이 방편적으로 갖다 붙인 말이지, 진짜 진화했느냐 하는 것은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정신적 밑바탕이 아메바에서부터 시작했느냐? 정신적 조상이 아메바냐 이겁니다. 진화론에서는 아메바에서부터 출발해가지고 전부 발전했다는 것입니다. (117-69, 1982.2.1)

오늘날의 철학사상, 그 철학사상이 뭐냐 이겁니다. 이것은 전부 맨 밑에서부터 탐구해 들어가야 됩니다. 그런데 이것이 `어떻게 돼 있을까?` 하고 이론적인 추구를 해왔지만 `인간이 무엇이냐? 참된 인간이 무엇이냐?` 하는 것에 대하여 아직까지 결론이 안 났습니다.

모든 학자들, 모든 유명한 철학자들이 인간 문제를 중심삼고 생각했지만, 이것이 아직까지 결론이 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무엇이냐? 인간의 기원이 무엇이냐?` 하는 것에 대해 진화론이나 창조설에 의한 여러 가지 학설을 통해서도 아직까지 해결이 안 났습니다. 이렇다 할 수 있는 결정이 안 났다는 것입니다. (170-145, 1987.11.15)

모든 경서를 보면 공자도 애매합니다. 인격적 신을 몰랐습니다. 아버지를 몰랐습니다. 태어난 우리 인간의 근본인 아버지가 있을 텐데 아버지를 몰랐습니다. 또 불교도 만상귀일의 법을 논하지만 인격적 신을 모릅니다. 까딱 잘못하면 유물론에 떨어지기 쉽습니다. 진화론에 떨어지기 쉽습니다. 진화론적 견지의 발전적 신앙기준에 서기 때문에, 이것은 유물론에 접근하기 쉬운 것입니다. (198-257, 1990.2.4)

불란서 혁명 이후 인본주의 사상을 중심삼고 계몽사상을 거쳐 지금의 공산주의로까지 나오는 그 과정에서, 이 찰스 다윈의 진화론을 중심삼고, 공산주의가 하나로 엮어져 지금까지 기독교를 완전히 파괴의 구덩이로 몰아넣은 것입니다. (213-65, 1991.1.14)

오늘날 과학자들은 말하기를 이 우주는 힘으로 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힘이 있기 전에 작용이 먼저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습니다. 작용이 있기 때문에 주체와 대상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혼란이 생기는 것입니다. 주체와 대상의 개념에 의해 사물을 판단할 때, 진화론은 근본적으로 깨져 나가는 것입니다. (131-214, 1984.5.4)

요즘 진화론 같은 것은 미국의 큰 대학에서는 강의하지 않는 데가 많아졌다고 합니다. 그건 당연한 일입니다. `자연히 됐다!`고 하는데 여러분이 자연히 되었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허망하겠소! `자연히 돼? 자연도 주체적인 자연이 있느냐?` 하면 `그건 난 모르지.` 합니다.

이 따위 소리가 어디 있습니까? 어떻게 돼서 주체적인 자연이 있느냐? `그거 그렇게 되어 있지. 생리작용이 그렇게, 발전 현상은 그렇게 되어 있지.`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왜 그렇게 되느냐?` 하면 `그건 아무도 모르지. 그건 그렇게 되었으니까 그렇지.`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논법은 있을 수 없습니다. 원인이 없는 결과는 있을 수 없습니다. 인과법칙을 부정하는 과학 논리라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159-268, 1968.5.19)

이제 진화론은 흘러간 하나의 역사적 유물이 됐지만, 진화되어 발전한다고 하지요? 진화하면 거꾸로는 왜 안 됐어요? 거꾸로 될 수도 있지 않나 말입니다. 동으로도 갈 수 있고, 서로도 갈 수 있고. 진화할 수 있는 방향을 누가 잡아줬어요? 자기가 자라면서 방향을 잡나요? 아메바에서부터 이것이 발전해가지고 사람이 될 때까지 수많은 고차원 단계를 거쳐가는데 그 방향을, 고차원을 향해서 발전할 수 있는 방향을 누가 잡아 주었느냐는 겁니다. 왜 그렇게 고차원을 향하느냐 이겁니다. (166-213, 1987.6.7)

각 종교 경전의 결점이 뭐냐 하면 창조설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한 프로그램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별의별 논리를 중심삼고 논고를 쓰는 것입니다. 창조설이 없으니까 창조 방향과 창조 목적을 모르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세상이 제멋대로고, 뭐 진화론이니 무슨 논이니를 들고 나와 자기 뜻대로 해먹고 자기 마음대로 행동해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창조설이 어떻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그 다음에는 방향성과 목적성이 있어가지고, 이것이 이런데 왜 이런 악한 세계가 되었느냐 하는 그 이유를 규명해야 됩니다. 그 원인을 규명해가지고 성서라든가 역사적인 과정에, 인류역사 가운데 망한 나라들이 왜 망했느냐 하는 그 모든 기원을 풀어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일반 상식적인 입장에서 누구든지 타당성 있게 공인할 수 있는 논리적 체제를 갖춘 역사관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212-323, 1991.1.11)

절대적인 사랑 앞에는 제3의 상대자를 절대 부여하지 않습니다. 이런 논리가 진짜라면 진화론은 있을 수 없습니다. 아메바도 혼자 발전할 수 없습니다. 양성과 음성의 내용을 통해서, 사랑의 문을 통해서 새로운 차원을 거쳐가야 되는 것입니다. 모든 종교의 교리는 사랑의 문을 통한다는 논리, 또한 여기에는 제3자의 개입이 불가능하다는 천리를 생각할 때 진화론은 있을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203-343, 1990.6.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