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반하는 형제를 사랑해야 하는 이유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24권 PDF전문보기

배반하는 형제를 사랑해야 하는 이유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셨다가 부활하셔서 누구를 찾아가셨습니까? 제자들을 찾아가셨습니다. 하나님을 찾아가시지 않고 왜 제자들을 찾아가셨겠습니까? 예수님이 아무리 십자가의 길을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 해도 그것은 상대적 관계가 아니면 안 됩니다. 즉, 예수님이 아무리 극심한 시련과 고통의 십자가를 짊어지셨다 하더라도 그것은 혼자 짊어진 십자가입니다. 형제와 더불어 짊어진 십자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최후에 사탄이 무엇을 잡고 나타나느냐, 형제를 잡고 나타납니다. 자신은 됐다 하더라도 형제를 통하여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배반한 열 두 제자를 찾아간 것입니다. 그때는 예수님이 아들로서 책임할 때이기 때문에, 열 두 제자와는 형제지간이었습니다. 이 형제 가운데 접해있는 사탄을 극복하지 않으면 예수님 자신이 해방 받을 수 없습니다. 즉, 양자를 접붙여 놓지 않으면 책임을 완수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양자를 접붙여서 자기와 같은 자리에서 감람나무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자녀로 만들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자녀를 만들지 못하고 돌아가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성사시켜야 할 목적이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부활하여 제자들을 다시 찾아가신 것입니다.

십자가는 모든 것을 부정하는 부정의 자리입니다. 제자가 선생을 배반했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자기 자신이 배반 받는 자립니다. 형제에게 배반 받는 자리, 이 자리는 지극히 외로운 자리입니다. 역사시대는 언제나 이러한 과정을 겪었습니다.

아벨은 자녀 입장이고 가인은 양자 입장입니다. 그러므로 가인은 아벨 앞에 절대 복종해야 합니다. 그런데 아벨이 가인으로부터 배반당했습니다. 아벨은 가인을 다시 찾아가야 합니다. 즉, 예수님이 십자가의 죽음을 당하시고도 부활하여 제자들을 찾아가신 것과 마찬가지로 아벨도 가인에게 죽음을 당하였지만 찾아가야 합니다. 배반한 가인의 후손을 찾아가야 합니다. 그러한 입장을 대신한 것이 노아 시대의 함과 셈이었습니다.

어느 시대든지 하나님은 배반한 인간들을 찾아오십니다. 하나님을 찾아오시게 하려면 부정의 인연을 완전히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부정적인 주인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다시 찾아오시는 데는 무엇을 갖고 찾아오시느냐? 원수의 마음, 복수의 마음을 가지고 찾아오시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의 마음, 제물과 희생의 마음, 봉사의 마음을 갖고 찾아오십니다. 사탄세계에는 이러한 것이 없습니다. 사탄세계에는 이러한 것이 없기 때문에 이러한 것이 이 땅 위에 남아지는 것입니다.

배척 받는 자리에 섰다고 남아지는 것이 아니라, 배척 받고 억울한 자리에서도 원수를 사랑했다는 데에서 남아지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복귀원리를 중심삼고 볼 때, 십자가상에서 예수님이 '저들이 알지 못하니 저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한 것은, 메시아로서 담당해야 할 응분의 말씀이었습니다. 여기에서부터 새로운 역사가 출발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신약의 마감입니다.

원리적 기준으로 볼 때, 하나님은 배척한 무리를 다시 찾고 계십니다. 그들이 진정한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사죄를 할 때 구원의 닻이 이지상에 내려지는 것입니다. 부정할 수 없는 이 사실을 우리는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