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귀섭리는 몰리고 핍박받는 외로운 자리에서부터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24권 PDF전문보기

복귀섭리는 몰리고 핍박받는 외로운 자리에서부터

그러면 어느 때, 어느 시대에 복귀섭리는 뒤넘이치느냐? 복귀섭리의 승패가 어디에서 결정되느냐? 이것은 양자인 가인과 자녀인 아벨에서 결정됩니다. 누가 부정해야 되느냐? 여기에서 반드시 아벨이 부정해야 복귀가 되는 것입니다. 부정하지 않으면 복귀가 안 됩니다. 그래서 아벨 한 사람이 만민을 대표해서 오게 됩니다. 그는 아무개네 집의 한 사람이 아닙니다. 이 세계 인류를 대신한 사람입니다. 이 아벨적 기준에 선 사람은 어떤 자리에 서야 하느냐? 이 땅 위의 그 누구보다도 외로운 자리에 서야 합니다. 그래서 몰리게 하는 것입니다. 전세계 인류가 몰아넣는 것입니다.그는 그 나라의 거지, 빌어먹는 사람까지도 싫어하는 자리, 그런 최하의 자리에 나가야 됩니다. 그렇게까지 떨어져야 합니다. 즉, 제일 외로운 자리에 서야 된다는 것입니다. 거기서부터 기반을 닦고 다시 올라가야 됩니다. 올라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옛날부터 뜻을 대하여 나왔던 사람들은 전부 다 희생당했습니다. 참과 선을 위하여 노력하던 의로운 사람들도 전부 피를 흘렸습니다. 그런 선열들은 한 번 가고는 다시 오지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기독교의 예수님만은 돌아가시면서, '내 다시 오마'라고 당당코 약속했습니다. '다시 오겠다' 이것은 올 수 있는 길을 열었다는 것입니다. 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갔다가 다시 오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아들로서 다시 오셔서 이 지상을 구원할 수 있는 기반을 세워야 합니다. 이와 같이 다시 오셔야 되는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통일교회를 중심삼은 여러분들이 아벨적 자리에 서기 위해서는 통일교회가 국가나 민족 앞에 배척을 받아야 됩니다. 대한민국에 통일교회가 나오기 전에는 국가적인 입장에서 한국이 일본으로부터 지배를 받았습니다. 배척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들에 대해 마음대로 죽일 수도 없고 원한을 풀 수도 없는 최악의 궁지에 몰리는 것입니다.그러나 국가적으로 몰리는 이런 자리에서 뜻을 중심삼고 하나됐더라면 국가적인 십자가를 완전히 넘어설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기성교회가 하나되어 받들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지금까지 통일교회와 국가의 운명은 수난의 길을 걸어왔던 것입니다. 이러한 공식과 원칙은 현사회를 중심삼고 역사의 배후에 엄연히 전승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이런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아들딸이라면 여러분들을 들이 몰아치는 것입니다. 여러분을 부정한다는 것입니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야? 이녀석…'이런 별의별 일을 다 겪어야 합니다. 통일교회 초창기에 자식이 교회에 나간다고 반대하는 부모가 많았습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칼을 들고 자식이 교회에 나가면 목을 찌르겠다고 하는 일들이 많았습니다. 형제들이 교회에 나간다고 때리기도 했고, 나가면 다리를 꺾어버리겠다고 위협도 했고, 머리를 빡빡 깎아버리기도 하면서 극심한 반대를 했습니다. 그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것은 자기 집에서부터 비롯되는 것입니다. 심정적인 유대를 가진, 즉 자기로부터 가장 가까운 자리에 있는 가정을 부정해 버리지 않고는 하늘나라를 이룰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자기 집안 식구가 원수' 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세상을 중심으로 생각하면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러한 내용, 즉 탕감원칙에 부합될 수 있는 내용이 성경에만 있습니다. 따라서 기독교만이 시대상을 대표하여 역사적인 과정을 거쳐온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 통일교회가 핍박을 잘 받았습니까, 못 받았습니까? 잘 받았습니다. 핍박을 받고 어떻게 되었습니까? 기진맥진했습니까? 나이 많은 사람들, 기진맥진했습니까? 예수님의 3년노정과 마찬가지로 3년만 지나가게 되면 지칩니다. 우리는 3년 반이지요? 전 3년 6개월, 후 3년 6개월 해 가지고 7년노정입니다. 전 3년 6개월은 기뻐서 뛰는 기간이요, 후 3년6개월은 지쳐서 따라가는 기간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통일교회를 믿습니다.그렇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