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추억의 날을 어떻게 남겼는가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29권 PDF전문보기

예수님은 추억의 날을 어떻게 남겼는가

여러분, 예수님을 한번 생각해 보세요. 그는 갈릴리 해변에서 어부와 같은 입장에 있었습니다. 그는 마을 마을을 거쳐 다니면서 얻어먹는 생활도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동네의 뭇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받고 좋지 않는 평을 받는 사나이였습니다.

그가 갈보리 산상에서 십자가에 죽는다는 것은 있어서는 안 될 일입니다. 그런데 그가 죽은 것이 어떻게 되었기에 오늘날 20세기 문명을 지배하는 민주세계를 이룩하는 데 있어서 하나의 터전이 되었느냐? 이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누구라도, 피 뿌리며 죽는 사람은 많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에게 있어서 단 하나 다른 것은 예수님이 인류가 공히 추모하는 하나의 추억의 결정으로서 죽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심정을 그 누구보다도 많이 가지고 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이 피를 흘리며 죽어갔으나 그가 남긴 길을 찾아보니, 하나님을 중심삼은 예수님의 이념의 내용이 역사성을 띠고 있다는 사실이 여실히 드러났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예수님의 심정적 터전이 역사의 원천이 되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인간들이 그 원천을 그리워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역사의 누룩이 될 수 있는 터전으로 남아졌기 때문에 이후에 하나님을 중심삼고 한 방향으로 가는 인간이 그 터전에 접하게 되면 자동적으로 감화를 받게 되었고, 그 목적을 재차 수습하는 일이 개인에서 종족, 종족에서 민족, 민족에서 국가의 형태로 넓혀졌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오늘날 기독교를 중심한 예수님의 사상이 세계적인 문화권을 창조했다는 사실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됩니다.

예수님의 죽음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그로 인해 예수님은 역사상에 없었던 하늘땅을 연결시킬 수 있는 심정의 최고봉에 서시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자기의 아버지라 했고, 자기는 하나님이 독생자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위대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아들된 도리로서 아버지의 뜻을 위하여 효(孝)를 다하고 그 나라를 위하여 충(忠)을 다하고 갔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인류역사상 하나님 앞에 있어서 더할 수 없는 효자요, 하나님께서도 비로소 독생자라고 선포할 수 있는 주인공이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효라는 것을 통하여 승리의 출발을 하겠다는 일편의 이념을 남겼던 것입니다.

오늘날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예수님이 2천년 전에 이 땅에 왔었는지 안 왔었는지를 알려고도 하지 않지만,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죽음을 애도하고 그의 생애를 추모합니다. 주님이 인류를 위해 희생하였다고 하면서 눈물을 흘리며 그를 진정으로 추모하는 현실이 아닌가!

그러면 예수님은 왜 역사가 미치지 못하는 자리, 혹은 시대가 미치지 못하는 자리에 서시게 되었던고? 다시 말해서 그 국가의 주권자도 나가지 못하는 자리에 서셨던고? 그것은 단 한 가지 하나님을 아버지라 하였고 자기는 그의 아들이라고 하면서 하늘 가정을 추구하는 자리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 뜻과 더불어 추억의 내용을 남겨 놓았습니다.

모든 종교에는 그와 같은 추억의 터전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느 한 종교의 추종자가 그 뜻을 위해서 자기 몸을 바쳐 희생할 수 있는 내용이 깊고 넓고 클수록 그 종교는 세계적인 종교가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날 전세계 인간들은 삶의 역경이 휘몰아치는 경각에 처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세계는 그렇더라도 우리 인생에는 추억을 남길 수 있는 하나의 기점이 있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복잡다단한 사망의 물결이 소용돌이 치는 경계선에 처해 있는 이 현실세계에서는 깊은 마음의 터전에 안식을 바랄 수 있는 종교가 있어야 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오늘날 인간인 우리들은 앞을 바라보는 그 과정에 있어서 어차피 현실을 부정하지 않으면 자신의 존재를 찾을 수 없는 입장에 처해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