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의미에서 현실을 부정하라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29권 PDF전문보기

진정한 의미에서 현실을 부정하라

이와 같은 환경에 있는 청소년들도 앞길의 행복을 이루기 위해서는 현실을 부정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면 부정하는 데는 가치있는 것을 위하고 추억의 한 내용을 남기기 위해서 부정하느냐? 아닙니다. 이들은 방향을 모르는 메뚜기 떼와 같습니다. 초원에서 날지 못하고 사막에서 사막으로 날으는 메뚜기 떼와 마찬가지입니다. 뜻 앞에 있어서 안내자가 없으면 초원을 발견하지 못하고 날다가 한꺼번에 다 쓰러지는 메뚜기 떼와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들이 살고 있는 그 자리에서 추억이 될 수 있는 그 무엇을 남길 수 있고, 금후의 세계에 있어서 추억을 남길 수 있는 터전을 만들기 보다는 그런 현실을 모두 부정하는 입장에 서야 된다는 것입니다.

종교인들은 과거에서부터 지금까지 현실을 부정해 왔습니다. 자기 나라도 부정해 왔습니다. 자기의 종족이 있더라도 그 종족을 자기 종족으로 사랑할 수 없었습니다. 자기 가정이 있더라도 그 가정을 자기가 안식할 수 있는 터전으로 만들 수 없었습니다. 또한 자기 한 개인의 인격으로 하여 온 우주를 지닐 수 있는 권위를 갖추지 못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는 완전한 부정에서부터 출발한 것입니다.

그러나 종교인은 그 부정과 인연을 맺지 못하였습니다. 그 부정에서 이상의 가치를 찾아 거기에서 행복의 요인을 모색해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습관적인 부정권에 들어가 있었기 때문에 행복의 터전과 하나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에서 부정을 하고 나설 수 있는 기준만 세워지면 종교에서는 새로운 방안이 모색될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오늘날 통일교회는 현실적인 이 세계에 공헌을 해야 되겠습니다.

오늘 이 추억의 날이라는 제목을 두고 생각해 볼 때, 지금부터 만 21년전 5월 20일이 생각납니다. 이날은 어떤 날이냐 하면, 평양 내무서에 잡혀가서 재판을 받고 흥남감옥으로 이송되어 간 날입니다. 이런 것을 볼 때 여러분은 뜻을 아는 사람이니 여러분이 뜻과 더불어 선생님과 일치되기 위해서는 무엇을 찾아 들어가야 되느냐? 보통의 생활이나 평범한 생활에서 나온 이념으로 찾아가면 그것은 그냥 흘러가 버리게 되고 맙니다.

통일교회가 지금까지 통일교회로서 나타날 수 있는 하나의 기원을 남겼다면 그 배후에 깃들어 있는 그 추억의 날이라는 것은 어떤 날이냐? 여러분들이 통일교회에 들어와서 남긴 추억의 날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이 추억의 날은 반드시 통일교회와 더불어 남을 수 있는 날이어야 합니다. 자기를 중심삼은 추억의 날이 아니라 통일교회와 더불어 남을 수 있는 추억의 날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통일교회가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할 때, 그 역사의 배후가 어떻게 되어 있는가? 그 배후에 어떤 입체성이 있으며 어느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추억의 내용을 가졌는가? 이것이 중요한 문제입니다. 여기에 금후의 세계를 움직일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가 달려 있는 것입니다. 또 아무리 제한된 환경일지라도 어떤 대표자가 그 제한된 환경을 넘어서서 세계를 하나님 앞에 어떠한 내용으로 결속시키느냐 하는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앞으로의 통일교회 후대들 앞에 추억의 모체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행복한 통일교인으로 걸어갈 것이냐?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통일교회 자체를 생각할 때 통일교회에 들어오면 잘먹고, 잘살고, 누구보다도 복을 많이 받고 산다고 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인류의 심정을 밝히고 새로운 인간으로 재창조할 수 있는 폭발적인 원동력을 보여줄 수 있는 추억의 역사를 지닐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개인에게 인연됨으로 말미암아 그 개인이 새로운 결심을 하고 새로운 다짐을 하여 새로운 목적을 향하여 갈 수 있는 하나의 모체가 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