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은 마음과 몸이 일체된 곳에서 시작돼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46권 PDF전문보기

천국은 마음과 몸이 일체된 곳에서 시작돼

그것이 몸뚱이의 세계에서는 찾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세계 가운데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기점이라는 것은 내 마음속에서부터 다짐해 가지고, 마음속에 그리는 것을 실천궁행(實踐躬行)해 가지고 거기에 일치될 수 있는 한 곳입니다. 그 한 곳을 찾음으로 말미암아 천국을 맞이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국은 앞으로 나타날 어떠한 종말세계를 거쳐 가지고 오는 것이 아니라 자기 마음에서 하나의 기점을 그려 가지고 그 기점과 더불어 오는 것입니다. 그 기점을 중심삼아 가지고 저울질할 때 저울대를 수평으로 만들 수 있는 하나의 지지점(支持点)이 되는 것이 아니냐? 그 지지점과 같은 것입니다. 지지하는 그 점이 수평만 되어 가지고는 안 됩니다. 저울은 수평되는 것이 목적이겠지만 이것은 수평에서 바른쪽으로 기울어져야 됩니다. 무게가 왼쪽으로 기울어져서는 안 됩니다. 바른쪽으로 기울어져야 합니다. 바른쪽으로 기울어지는 그것이 출발입니다. 새로이 바른쪽으로 돌아가고 넘어갈 수 있는 것이….

그 수평된 것이 새로운 한 점을 결정할 수 있는 목적은 되지만 새로운 방향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기점은 못 되는 것입니다. 하나의 점은 될 수 있을는지 모르지만 방향을 전환시킬 수 있는 전체의 내용은 못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출발입니다. 방향을 전환시키는 데 있어서 출발점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천국은 어디에서부터 오느냐? 마음에서부터 시작되어 오는 것입니다. 마음의 어디서부터냐? 세상을 이긴 마음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아무리 환경적으로 천국이 와 닿았다 하더라도 내 마음이 악하고 내 마음이 그것을 그릴 수 없고 내 마음이 거기에 동할 수 없는 입장에 있다면, 천국이 와도 그 천국은 쓸데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국을 맞이할 수 있는 터전이 되는 것은 환경이 아니라 나 자신입니다. 나 자신이 문제입니다. 천국을 유지할 수 있는 지주, 지지하는 그 지지점이 어디냐 하면 환경이기에 앞서 내 마음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천국은 어디 있느냐? 따르고 있던 제자들이 현실을 청산짓지 못한 자리에서 앞으로 올 천국을 중심삼아 가지고 행복의 터전을 갖추어 세계적인 권위와 출세의식을 갖고 있는 것을 보고, 예수는 그 근본을 격파해 버리고 '천국은 네 마음에 있다'고 한 것입니다. 마음의 천국을 그리지 못한 사람은 환경 천국이 되어도 그 천국을 움직일 수 없는 것입니다. 마음이 결심하지 못하고서는 완전한 행동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완전한 결심에서 완전한 행동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네 마음이 선을 얼마나 동경하느냐? 그 동경하는 것이 역사적 선과 더불어 하나되겠다, 아무리 피눈물 나는 환경이 있다 하더라도 선과 동행하기 위해 그것을 극복하겠다, 아무리 외로운 역사적 종말의 환경 가운데 투쟁의 노정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피해 가는 것이 아니라 격파하고 가겠다는, 그런 마음이 변치 않는 일로를 개척하여 그 마음에 일체가 될 수 있는 몸의 생활환경을 결의하고 다짐하는 데서부터 천국이 시작되는 것이지, 마음과 몸이 따로 행동하는 데에 천국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과 몸이 일체된 데서부터 천국 방향을 향한 전진이 벌어지는 것이지, 마음과 몸의 행동이 갈라지는 데서는 천국은 벌어지지 않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예수님이 설파한 것은, 마음과 몸이 일치될 수 있는 내용을 중심삼아 가지고 좌우로 기우는 것이 아니라 그 기우는 환경을 제거해 가지고 전진의 가중된 행보를 갖출 수 있는 주체성을 갖추어야만 천국을 맞이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 준 것을 우리는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천국은 남으로부터, 남에 의해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이기 때문에 우리는 자신을 부정해야 됩니다. 나 스스로 가지 못하고, 내가 이것을 제시하지 못하게 될 때에는 그 누구로 하여금 제시될 것입니다. 그 누가 제시했다 할 때는 내가 천국 가려면 그와 하나되어야 합니다. 따라가야 됩니다. 절대적으로 보조를 맞추어야 됩니다. 그가 동으로 가면 나도 동으로 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가 동으로 가는데 나는 서로 가겠다, 그가 이렇게 했는데 이렇게 하면 안 된다 하는 마음을 갖고 가서는 안 됩니다. 거기에 비판이 있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길은 두 길밖에 없습니다. 내가 가야 할 것을 원칙으로 하되 그 원칙을 수행할 수 있는 나 자신이 못 되었으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내가 가는 길인데 내 마음대로 하지'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럴 때는 반드시 딴 분을 통해서 가야됩니다. 그 딴 분이 누구냐? 오늘의 인간 앞에 표준이 될 수 있는 분입니다. 그래서 그 딴 분을 인간 앞에 가르쳐 주기 위해서 수많은 종교가 나오게 된 것입니다.

자기 스스로 갈 수 없는 타락권내에 있는 인간이기 때문에 자기 일생을 잴 수 있는 그 잼대를 가지고 영원한 세계를 재겠다고 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입니다. 영원한 세계를 잴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시대 시대마다 영원한 하나님이 같이 보조를 맞추어, '너는 이러한 사명분야에서 이만큼 책임을 져라' 하는 특정한 사명을 주어 하나님 대신 보조를 맞추게 하여 기반을 닦아 주는 세계적인 대표자들이 있는 것입니다. 그 대표자들이 그 시대의 환경권내에 있어서 지침이 되고 혹은 지주가 되는, 사람들을 지도할 수 있는 사명을 맡겨서 보내는 사람들이니. 그들이 수많은 종교의 교주들입니다. 우리 타락 인간은 자기 스스로 갈 수 없기 때문에 따라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가는 길밖에 없습니다. 따라가는 데는 한 중심을 중심삼아 가지고 이렇게 찾아들어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림 3] 참조) 그럴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느냐? 이렇게 중심을 찾아 가지고 그 중심에 정지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세계의 어느 한 곳을 찾아서 그것을 향하여 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가야 할 중심 곳은 인류 앞에 없습니다. 그렇지 않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