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적 양심을 중심삼고 참된 것을 찾아서 접붙임을 받아야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163권 PDF전문보기

우주적 양심을 중심삼고 참된 것을 찾아서 접붙임을 받아야

그래 마음에 맞춰라! 마음에 맞추는 데에 있어서 몸은 세상과 더불어 균형을 취해 가지고 맞춰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양심은 외적 세계에 접촉해서는 안 됩니다. 중앙선에서 몸이 접촉하는 거예요, 양심의 명령에 따라 가지고. 그런데 몸뚱이가 양심이 작용하는 이상으로 하는 날에는 탈이 납니다. 그렇게 할 수 없는 거예요. 수직선의 운동에 힘이 없는 데 몸뚱이 자체가 운동을 하게 되면 자체가 파괴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우주적 활동을 할 수 있는 몸뚱이를 가졌다고 할 때는 우주적 양심기준을 확정지어야 됩니다. 그런 논리가 성립되는 겁니다.

이 우주적 양심이 하나 있으면, 그 양심을 중심삼고 보이지 않지만 거기에 접붙여야 됩니다. 10리 거리, 50리 거리에 있지만 붙어서 가야 된다구요. 알겠어요? 그러면 하나되는 거예요.

이 양심의 기준을 세우기 위해서 하늘이 역사시대에 수많은 선각자들을 보냈습니다. 하나님이 보냈는데 그들이 무엇을 중심삼고 보냄을 받았느냐? 어느 하나의 명문가를 대표해서 보내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이름으로 보냄을 받았습니다. 그들을 보내신 목적은 수직적 기반을 상실한 혼란된 마음의 세계를 어떻게 하든지 우주 중심 수직선에 갖다 맞추기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수직선에 갖다 맞추려니, 수직 기준은 중앙점에 있는데 저 동쪽 끝에 가 있는 것을 갖다 붙이려니, 전부 다 양심에 의해 참되고 참된 것을 찾아서 중앙선에 접붙임을 받자는 것입니다. 이런 놀음을 하고 있다고 보는 거예요.

하나님이 계시다면 왜 본래부터 그렇게 안 되고 요렇게 되어 있어요? 90도 각도가 딱 맞아 가지고 한바퀴 뺑 돌려 놓으면, 이것은 변함없이 영원히 돌 텐데 왜 이렇게 되었느냐 말이예요? 그렇게 되었기 때문에 타락되었다는 것입니다. 상하가 거꾸로 되고 좌우가 거꾸로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몸뚱이는 세계가, 이것도 저것도 전부 다 자기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몸이 그런다고 해서 마음이 '야, 이놈아, 그런 생각 하지 마' 하고 욕을 안 한다구요. '그래라, 그래라, 그래라' 마음도 그런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얼마나 좋겠나, 얼마나 좋겠나, 얼마나 좋겠나' 그러는 거예요. 작은 것이 커지면 얼마나 좋겠어요? 다 크기를 바라지요? 여자도 조그만 여자는 볼품이 없거든요. 큰 것은 다 좋아하는 거예요.

이렇게 볼 때, 과연 이 땅 위에 하나님의 양심은 이 우주의 수직선으로 똑바로 돼야 되겠어요, 한 0.5도 각도라도 기울어져야 되겠어요? 절대적입니다. 똑바른 거예요. 사람이 동쪽에 있으면 그 기준에 동화(同化)해 가지고 동쪽이 그 기준에 붙어야 됩니다. 보이지는 않아요. 서울 KBS방송국에서 전파를 보내면 저기 만주 끝에서도 듣게 됩니다. 그 전파가 전부 어디에 붙어 있나요? 서울 방송국에 붙어 있지요? 마찬가지라구요. 방송국을 떠나 가지고는 관계없는 거예요. 수직선 방송국이 있습니다. 수직선 방송국, 그런 말 들어 봤어요? 마음은 전부 다 거기에 붙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양심은 곧은 것입니다. 양심은 곧다구요. 양심적이다, 한국 사람은 양심적이라는 말을 합니다. 일본 사람들도 료신데기(りょうしんてき; 양심적) 라는 말을 하고, 동양 사람들도 다 양심적이라는 말을 하는데, 그 양심적이라는 것이 표준이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