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란 위하려고 하는 데서 시작돼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169권 PDF전문보기

사랑이란 위하려고 하는 데서 시작돼

이스라엘 나라가 세계 제패를 왜 못 했느냐? 이걸 알아야 합니다. 메시아가 오게 되면 이스라엘 나라가 세계를 하나로 만든다고 생각했는데, 메시아가 왔는데도 불구하고 왜 세계를 하나 못 만들었느냐? 이걸 생각할 때, 이스라엘이 메시아가 옴으로 말미암아 세계 최상의 자리에 올라간다고 세상적으로 생각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온 세계를 자기들의 발 아래 밟고, 자기들이 주도자의 입장에서 로마 이상의 높은 자리에 서서 행사한다고 생각했다는 거예요. 그건 세상적이예요. 그것이 아니예요. 하나님의 뜻은, 사랑의 세계의 뜻은 이스라엘 민족이 높은 자리에 올라가거든 자기들을 위하라고 하는 것보다도 위하려고 하는 방향을 취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소원이었습니다. 인간과 다르다는 겁니다. 거기에서 역사는 뒤바뀌어지고, 생사가 결정되며, 승리하는 민족과 망하는 민족이 벌어지게 됩니다.

어려운 거지가 더 어려운 거지를 볼 때, 자기의 온 마음을 가지고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동정하고 꽁꽁 싸 놓은 쌈지 돈을 전부 줄 수 있게 되면 그 거지의 후손 중에서 왕이 나는 겁니다. 왕이 나오는 거예요.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예」 자기가 거지이니 얼마나 비참해요. 그 사실을 잘 안다는 것입니다. `너는 나보다 더 불쌍하고, 비참하다. 너를 진정 동정하는 사람이 아직 없지 않았느냐? 나는 너를 진정으로 동정한다' 한다면, 그 사람은 비록 거지세계에 있지만, 그의 아들딸 가운데서는 왕이 나온다는 거예요. 바뀌어진다는 것입니다. 그거 알겠어요? 「예」

이스라엘 민족이 왜 망했느냐? 이 바꿔치는 놀음을 못 했다는 거예요. 하나님의 선민이라고 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민족이라고 해서 `우리를 섬겨라'고 했지 위하려고 하지 못했다는 겁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남자 여자가 서로 사랑받겠다고 하면, 그 남자 여자는 합할 도리가 없습니다. 동서로 서 가지고 서로 `야 와라, 와! 와서 나를 사랑해라!' 또 저쪽에서도 `오라! 오라! 와서 나를 사랑해!' 이러면 언제 만나겠어요? 그것은 만날 길이 없는 것입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위하려고 하는 데서 시작되는 겁니다.

천지창조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자기 사랑의 대상을 짓게 될 때 거기에 하나님의 모든 것을 투입했습니다. 하나님 자체를 투입한 거예요. 전체를 투입했어요. 전체를 투입해서 없어지면 저쪽에서 고기압이 되어 가지고 돌아오는 것입니다. 수평이 돼 가지고는 안 돌아옵니다. 고기압이 되어야 돼요. 모든 걸 다 투입하면 이쪽이 완전히 저기압이 되기 때문에 자연히 돌려받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창조의 시작에 있어서 본연의 하나님의 정신적 자세는 위하는 것입니다. 위하는 데서 창조를 시작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게 모든 천리의 원칙입니다. 위하는 마음을 가지고 창조했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만물을 천대 안 합니다. 만물은 사랑의 상징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에게 줄 하나의 선물이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줄 수 있는 예물이다 이겁니다. 소유물이다 이거예요. 그래서 그걸 무시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특권을 부여하는 거예요.

지음받은 그 물건을 대해 천대할 수 없는 거예요. 비록 보잘것없지만 앞으로 사람을 지으면 사람에게 소유물이 필요하기에 사람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위해서, 한분 사랑의 대상을 위해서…. 이렇게 위하는 전통권 내에서 생겨났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거기에는 하나님의 모든 정력이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신성이 투입되어 있어요. 그래서 신비로운 경지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사지백체를 볼 때에도 전부 다 그렇습니다. 눈도 사랑을 하기 위한 길에서 눈을 봐야 됩니다. 애기들을 보게 되면 피곤한 줄 모르지요? 사랑하는 애기, 엄마가 하루 종일 밖에 나가 노동판에서 일하다 지쳤지만, 애기를 보면 정신이 버쩍 들어요. 피곤함을 극복할 수 있는 거예요. 왜? 어머니의 위하는 사랑의 배후에는 천지조화의 힘이 사통팔달 교류해 가지고 자기 이상의 힘으로 군림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논리가 가능합니다. 피곤을 잊어버리고, 잠을 잊어버리고, 고달픈 인생행로를 잊어버리고…. 그렇게 수고롭게 위해 살고 나면 맨 나중에 `나는 일생을 잘 살았다' 이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의 길에서는 그럴 수 있다는 거예요.

그러지 않고, 자기를 위하라고 한다면 어떻겠어요? 생각해 봐요. 자기를 위하라고만 하면, 일생 동안 얼마나 고독하겠어요? 얼마나 고독하겠느냐구요? 열 친구 가운데 아무리 학식이 많고 권위가 있다 해도 `전부 다 날 위하라! 위하라!' 하면 친구들이 남아 있나요, 도망가나요? 도망가지? 「예」 그러나 못나고 갖추지 못한, 변변치 못한 그런 친구라도 끝까지 위해 주는 사람은 친구들의 마음을 점령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친구들을 지배할 수 있는 자리까지 가는 거예요. 그가 어려울 때 10년을 위해 주었으면 다음에 100년을 위해 달라는 요청을 해도 반대 못 하는 것입니다. 그런 놀라운 일이 있다는 거예요. 자기 이상의 기준도 연결될 수 있는 그러한 길이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