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상에서의 예수님과 양편 강도는 역사를 대표해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211권 PDF전문보기

십자가 상에서의 예수님과 양편 강도는 역사를 대표해

우리 통일교회도 기독교의 일파니만큼 예수님을 잘 알지요?「예.」여기에 기성교회 다니던 양반들도 있으리라고 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갈 때 오른편 강도 왼편 강도가 있었지요? 그게 뭐냐? 역사를 대표하는 것입니다. 역사 전체를 대표하는 거예요. 예수님은 진리의 본체 되는, 인류에 있어서 표본적인 남성이요, 대표적인 남성입니다. 인류의 표본적인, 대표적인 남성 앞에 대표적인 여성이 있어야 되겠어요, 없어야 되겠어요? 예수 믿는 사람들도 예수님이 남자인지 여자인지 모르지요?「남자입니다.」뭐가 남자예요? 예수님을 하나님이라고 하잖아요? 그런 논리는 전부 다 곤란한 논리입니다. 하나님이 왜 죽어요? 이런 것은 세 번만 물어 봐도 다 던져 버리고 도망갈 텐데 그걸 어거지로 닦달해 가지고 통해요?

기독교의 이런 모든 것을 전부 다 교통정리해 놓아야 됩니다. 개인이 가는 데 걸리지 않고, 가정이 가는 데 걸리지 않고, 종족이 가는 데 걸리지 않고, 민족이 가는 데 걸리지 않고, 세계가 가는 데 걸리지 않아야 됩니다. 이 교통정리를 못 하고 있어요. 법규를 만들어 가지고 한계선을 정해서 방어해 줄 것은 방어해 줘야 되는데 그것을 못 한다구요. 오늘날 과학이 발전되어 가지고 컴퓨터 시대까지 오기 위해서는…. 모든 과학은 공식을 중심삼고 발전하는 것입니다. 단위를 중심삼은 그 기반 위에 공식을 연결시켜 가지고 발전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수학에 들어맞는 것입니다. 공식에 들어맞기 때문에 어디 가든지 틀림없는 답이 일정하게 나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두고 볼 때 공유적인 존재는 맹목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공유적인 존재는 우주의 모든 흐름이…. 여러분 공기가 어때요? 서양 공기와 동양 공기에 차이가 있어서 덥든가 차든가 했다면 어떻게 되겠어요? 공기에 빛이 있어요? 열도가 있어요? 없지요? 그게 있으면 어떻게 될까요? 그거 문제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중심삼고 볼 때 예수님이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이라고 했는데, 거기에 하나가 빠졌어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했는데, 거기에 사랑이라는 말이 빠졌습니다. 그래서 내가 거기에 `사랑'이란 말을 집어넣어야 된다고 하니까 축자영감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으―, 성경에는 일자 일획도 가감 못 한다. 문총재 이단이다!' 하고 야단하는 거예요. 들어 보라구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하나님 아버지 앞에 갈 자 없다.' 하는 것을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요 사랑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하나님 아버지 앞에 갈 자 없다.' 이렇게 할 때 비로소 모든 것이 훈훈해지는 거예요. 찬바람이 불어오더라도 양털옷을 뒤집어쓴 맛이 나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보라구요. 길이요, 길은 딱딱하지요? 진리요, 진리도 딱딱하지요? 생명이요, 생명도 딱딱하지요? 사랑 빼 놓고 무엇이 본연적인 거예요? 이 성경을 누가 썼느냐? 사람들이 썼어요. 그 사람들은 완전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쓴 게 아니라구요. 바울서한을 중심삼은 바울신학은 큰 실패를 했어요. 그렇기 때문에 바울신학 종착점은 하나님과 석별해야 된다 이겁니다. 그래서 지금 다 석별하고 있잖아요? 인류와 더불어 석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얘기 하려면 끝이 없습니다.

자, `나라는 것은 공유적인 존재다!' 이것은 인정하지요?「예.」눈 보고 `너 어떻게 태어났느냐?' 하고 물어 보면 눈은 벌써 천문학적 지식을 갖고 나왔다는 것입니다. `내가 태어날 때 태양이 있는 것을 알았고, 내가 태어날 때 복사열에 의해 수분이 증발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누선을 가지고 태어났고, 내가 태어날 때 공기 속에 먼지가 있다는 것을 다 알고 태어났소!' 한다는 거예요. 그게 사유적(私有的) 존재예요, 공유적(公有的) 존재예요?

또 코를 보라구요. 코를 보더라도 서양 백인들 코는 길어요. 그것은 한대지방이기 때문에 북극곰처럼 추우니까 코가 길지 않으면 찬 공기가 그냥 들어가서 폐렴에 걸리는 거예요. 그러니 이렇게 파이프를 길게 해 가지고 들어가니까 괜찮다는 거예요. (웃음) 아니야! 웃을 일이 아니라구요. 그런 거예요. 황인종은 두루뭉수리같이, 차고 덥고 하니까 중간축에 있는 것입니다. 또 흑인들은 요게 짧지요? 발딱 들려 가지고 짧아요. (웃음) 그게 전부 다 환경여건 가운데 공유적인 목적을 가진 공유적인 존재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자, 그만하면 알겠지요? 「예!」

`나'라는 것은 나 개인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나라는 것은 전체를 위해서 태어난 공유적 존재임에 틀림없다 하는 것을 문총재 말에 의해 알게 되었으니 여러분 가슴 깊이 기억해도 손해가 안 날 것이다 이겁니다.「아멘!」(박수)

여러분, 예수님이 뭐냐 하면 인간 대표의 이상적인 인격을 가지신 분입니다. 그런데 그분이 이 땅 위에 가는 데 있어서 장애물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장애물이 뭐였느냐 하면, 오른편 강도가 있는 반면에 왼편 강도가 있었다는 거예요. 왼편 강도가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당장 이 자리에서 너를 구하고 나를 구해라!' 한 반면에, 오른편 강도는 `우리는 응당히 이렇게 십자가에 달려 죽어야 마땅하지만 이 분은 지난 모든 생애에 있어서나 지금 죽는 자리에 있어서 가당치 않기 때문에 반발하는 너는 틀렸다. 너도 이 분을 위하고 편 되어야 된다!'고 강조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 문선생이 나타나더라도 `아―!' 하면서 반대하는 왼편 강도 같은 패가 있고, 또 오른편 강도 같은 패가 있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패는 오른편 강도 같은 패고 기성교회 패들은 왼편 강도 같은 패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이것은 역사시대에 있어서 개인에서부터 세계까지 이와 같은 관계, 유형적, 동류와 같은 것, 통일교회로 말하면 동시성형과 같이 연결되면서 모든 것을 청산지어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그것이 나에게도 마찬가지냐? 나라는 것을 볼 때 나는 마음만의 나가 아닙니다. `나' 할 때는 몸만의 나가 아닙니다. 나 할 때는 몸과 마음을 합한 데에서의 나다 이겁니다. 그래요? 나를 중심삼고 볼 때 오른편에는 마음이 있는 것이요 왼편에는 몸뚱이가 있는 것입니다. 그걸 알아야 됩니다. 결국 인간이 서 있는 이 땅 위에는 필시 옳은 것이 있는 반면 악한 것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옳은 것만 있지 악한 것이 있느냐? (녹음이 잠시 끊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