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이 하나님보다 먼저 알아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253권 PDF전문보기

양심이 하나님보다 먼저 알아

여러분의 양심이 여러분의 일생에 지낸 것 중에 모르는 것이 있어요, 없어요?「없습니다.」자기가 한 것을 모르는 양심을 가진 사람, 손들어 봐요. 한 마리도 없구만. 그건 마리라고 해도 괜찮아요, 없으니까. 양심에게 교육이 필요해요? 하나님에게 교육이 필요해요? 양심에게 친구가 필요해요?「아닙니다.」독자적이라구요. 그래 그걸 알았어요. 종적인 계대를 잇는 데는 하나님이 주체이지만 나를 기준으로 마음 몸을 중심삼고는 마음이 하나님 자리입니다. 종대 순은 근본 뿌리와 마찬가지예요. 대등한 거예요. 거기에서 컸을 따름입니다.

양심은 나에게 절대적인 하나님의 자리에 있는 것이요, 하나님을 주체로 하는 데는 대상적인 자리에 서 있는 것이기 때문에 내 양심을 하나님 같이 모시고 하나님같이 위하고 살게끔 되어 있는 것이 천리의 원칙적이요, 도리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양심이 내가 하는 일을 모르는 것이 없는데 하나님은 내가 하는 일을 모르는 것이 있겠어요, 없겠어요?「없습니다.」그러면 내가 하는 일을 하나님이 먼저 알겠어요, 양심이 먼저 알겠어요? 이거 중요한 말이에요. 이것을 가리지 못하면 하나님 자리와 천국 자리와 지옥 자리를 가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내 몸뚱이가 하는 일을 하나님이 먼저 알겠어요, 내 양심이 먼저 알겠어요? 두 패가 있지요? 어떤 거예요?「양심입니다.」

여자의 마음은 여자의 몸뚱이를 남자의 마음과 양심이 먼저 알아요? 남자가 먼저 알면 여자는 부속품밖에 안 된다구요. 또 다른 상대적 존재가 아니라구요. 연결된 부속품밖에 안 되는 거예요.

몸과 같은 부속품밖에 안 된다구요. 그러나 이것은 또다른 상대적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뿌리가 달라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사람과 하나님이 그 사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먼저 아느냐, 양심이 먼저 아느냐 할 때 결론이 뭐예요?「양심이 먼저 압니다.」양심이 먼저 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먼저 알면 인간은 부속품이라구요. 알겠어요? 상대적 존재가 완성을 이루어 가지고 '다 됐습니다.' 해서 주체를 부르고 합하게 되어 있어요. 주동적인 입장에서 먼저 알면 안 되는 것입니다.

완성한 후에 하나되는 것이지, 완성하기 전에는 하나될 수 없는 것입니다. 상대적 존재는 그 몸과 마음이 먼저 완성해야 되는 입장이기 때문에 하나님보다도 양심이 먼저 알아야 된다는 논리가 형성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부속품밖에 안 되는 것입니다. 이걸 잘 알아야 돼요. 창조원리에서 하나님이 95퍼센트를 창조하고 5퍼센트의 책임을 주어서 인간이 같이 창조했다는 가치를 부여하겠다는 말과 같은 이치라구요.

아담 해와가 타락해서 무화과나무 아래에 숨어 있을 때 하나님이 와서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할 때, '여기 있습니다.' '뭘 하노?' 이럴 때 '당신이 지은 해와가 타락하게 만들어서 이렇게 됐습니다.' 하고 답변했다는 것입니다. 물어보았지 '이놈아, 너 타락해 놓고 엎드려 있지?' 그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왜 물어봤느냐? 또 다른 주체적인 입장에 설 상대적 절대가치를 인정하는 하나님이기 때문에, 양심이 먼저 알 수 있는 자리에 세워 주시기 위해 물어보지 않을 수 없는 하나님인 것을 알지어다! 중요한 말이에요.「아멘.」(박수)

아무리 부모가 자식에 대해 다 알더라도 물어보지요? '너 이런 거 했지?' 이렇게 다 알면서도 물어보지요? 왜? 양심이 먼저 알기 때문이에요. 선생님이 아무리 다 알아도 물어보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양심은 부모의 앞에 있는 것입니다. 먼저 아는 거예요. 양심은 스승 앞에 있는 것이요, 양심은 하나님 앞에 있는 것입니다. 그런 양심을 존경해 봤어요? 선생의 말은 들을 줄 알고 부모의 말은 들을 줄 알고 하나님의 말은 듣겠다고 하면서 하나님보다도 먼저 알 수 있고 부모보다도 먼저 알 수 있고 부모의 교육이 필요없고 스승의 교육의 필요없는 절대적인 자리에 서 있는 양심의 명령을 얼마나 존중했느냐 이것입니다. 이게 문제예요.

무력한 양심을 수습해 가지고 절대적인 힘을 가진 양심으로 배양하지 않고는 하늘나라에 들어갈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몸뚱이가 명령할 때 '이놈의 몸뚱아 안 돼!' 하고 컨트롤할 수 있어야 됩니다. 타락적인 요소가 뭐냐? 자기를 제일 좋게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좋게 만들겠다는 것을 제일 부정하라는 것입니다. 제일 나쁘게 대하라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양심이 본연의 자리를 찾아갈 길이 없습니다. 이것을 지워버릴 수가 없습니다. 고무로 지우려면 쓰기보다 더 힘든 것입니다. 알겠어요? 부정해야 돼요. 부정의 부정을 거치지 않고는 완성의 완성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