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사에 훈독할 수 있는 책임자가 필요해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367권 PDF전문보기

신문사에 훈독할 수 있는 책임자가 필요해

그렇게 알고, 지금 몇 살인가?「마흔 여섯입니다.」나이 많이 먹었구만. 고개 넘었네. 연실이가 사람이 좋아?「예.」언제 좋아졌나? 자기보다 외적인 면의 세계는 못하다고 생각하겠지만 그게 아니에요. 사람은 마음이 아름다워야 돼요. 그 물결이 아름다운 데는 말이에요, 달빛이 찾아와요. 햇빛이 찾아와요. 반사해 주니까. 안 그래요? 제2세계는 전부 다 자기 빛권 내에 소유할 수 있다는 거예요. 제2세계에 다리를 놓을 수 있다는 거예요.

그런 면에서는…. 이름이 연실이지? 착하고 마음이 아름다운 여자라구. 몇 년 동안, 5년 동안 그러고 다녔나? 약혼하고 그렇게 도망다녔나?「예.」그거 잘했어?「잘못했습니다.」얼마나 잘못했어? 여자 보기에 면목이 서지 않지. 사지가 떨릴 수 있는…. 그런 여자를 어디 가서 얻겠나? 대학원, 석?박사 되는 여자라도 그런 여자 없다구. 또 한 곳에 지성을 드리는 데는…. 여기에 오지 말래도 찾아와. 새끼들 기르고 남편이 있는데도 말이야.

신문 기자가 얼마나…. 글 쓰게 되면 나쁜 것을 좋게도 쓰고 좋은 것을 나쁘게도 쓸 줄 알아요. 이랬다저랬다할 수 있는 변덕 대왕마마들이 신문 기자라구요. 신문 기자를 믿을 수 없어요. 그 사람 믿고 오게 되면 한번 싸움하게 된다면 또 도망갈 텐데. 지금 도망가고 싶은 생각 안 갖나?「지금은 없습니다.」지금은 없으면 어제까지는 있었구만. (웃음)

저 사람도 여기 와서 있는데 정원주라고 말이야, 정원주가 훈독회 하는데 자기도 선생님 앞에서 훈독회 한번 하면 좋겠다고 자기 마음은 그랬을 거라구. 요전에 내가 한번 읽게 하니까 잘 읽더라구. 강조만 조금만 하게 된다면 말이야, 감동적이겠어. 바이올린 연주도 아름답게 잘 해야 하지만 공명하는 그 바이올린 자체도 소리가 아름다워야 돼요. 본성이 아름다우니까 음색도 그렇고 마음도 그렇고 감동하는 뭐라고 할까, 감정이라고 할까, 그것도 예민하고 다 그런 면에서 상당히 소질이 있다고 해서 시켜 보니까….

남편은 온 줄 몰랐더니 언제 들어왔나?「밖에 있었습니다.」여기 한꺼번에 들어올 때 들어왔나, 나중에 들어왔나?「함께 들어왔습니다.」그래?「예.」내가 왔을 때 몇 번이나 왔나? 몇 번 얼굴을 보지 못했어.「요즘에는 자주 왔습니다.」언제? 선생님 올 때는 자주 오나?「최대한 오려고 합니다.」

이제부터 신문사에 훈독할 수 있는 책임자가 필요해요. 사장이나 할 것 없이 전부 편집일 하는 것보다도 누구 불러 가지고 훈독회 할 수 있는 그런 걸 빨리 연습하라구. 그래 가지고 물어 보면 답변할 수 있게 빨리 준비해. 훈독 책임자는 앞으로 출세할 수 있는, 신문사에 출세할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을 알아? 아나 말이야?

지금 사내에 혁명을 했어요. 이놈의 자식들, 회장이, 주인이 누군지 몰라 가지고 지나가는 거지새끼로 알고 있어요. 지나가는 거지가 잘먹고 간 거지는 칭찬하는 것보다도 먹을 때는 좋아하지만 지나가고 나서는 물어 보게 된다면 부잣집이라고 해 가지고 나쁘게 얘기한다구요. 복 받으라는 얘기 안 해요. 자기들 잘산다고 말이에요.

그래, 집에서 훈독회 하고, 동네에서 자기들 또래들, 친구 있겠구만.「예. 많습니다.」많아?「예.」얼마나 많아? 한 백 명 되나? 몇백 명?「모임도 있고 그렇습니다.」응?「제가 주관하는 모임도 있고 그렇습니다.」아, 글쎄 모임도 있는데 얼마나 되나? 친구들이 얼마나 되나 말이야?「친한 친구는 한 수십 명 되고요.」자기가 끌고 가면 달려올 사람이 수십 명밖에 안 돼?

그래, 그 말은 무슨 말이냐? 경제적인 면에 글을 썼으면 수백 명, 수천 명이 읽을 텐데 말이야, 거기에 연결될 수 있는 글을 못 썼다는 결과도 되잖아? 그래도 친구들이 있겠구만.「예.」친구들을 모아 가지고 혁명을 해. 뜻의 길은 틀림없이 이루어진다구. 지금 46세면 뭐 오십이 되겠구나. 선생님이 미국에 갈 수 있는 때, 세계에서 전부 싸우기 위해 한국을 내버려두더라도 자기들이 자립한다고 봐 가지고 미국에 가기 위한 준비를 다 하고 그랬더랬는데.

원래는 내가 1962년도에 미국에 가게 돼 있었어요, 공화당 보호 밑에서. 민주당하고 공화당이 싸우는데, 박보희 씨가 선생님이 이 땅에서 핍박받지 않고 미국에 가면 출세할 것은 정한 이치인데 가라고 해 가지고 간 거예요. 자기가 뭐 희생양이 됐지. 이래 가지고 통일교회 선생님을 위해 희생해 가지고 1962년도에 당력을 통해 가지고 미국에 갈 수 있는 수속을 다 했어요, 완전히. 누구도 몰라요. 그때 갔으면 내가 핍박도 안 받지요. 1972년도, 10년 후에 간 거예요. 그런 것은 국내 자체가 자리를 못 잡았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내가 미국에 갈 때 누구도 몰랐어요. 남들은 ‘문 총재가 도망갔다. 크게 잘못해서 도망갔다.’ 했어요. 미국에 가서 부모님이 얼마 안 가서 세계적인 기반을 닦았어요. 여러분 젊은 사람들은 그러한 도약을, 도약보다도 도약은 각도 가지고 날아가는 것이지만 비약을 해야 돼요. 수직으로 날아 가지고 가서 부딪칠 줄 알아야 된다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