⑦ 위해서 살면 천국 간다 - [8대교재교본] 천성경 인간의 삶과 영혼의 세계

⑦ 위해서 살면 천국 간다

천국은 희생한 자가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가정은 종족을 위해, 종족은 민족을 위해, 민족은 국가를 위해, 국가는 세계를 위해, 세계는 천주를 위해, 천주는 하나님을 위해 희생하는 겁니다. 결국 목적은 하나님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점령하는 것입니다.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의 최고 이상은 하나님의 사랑을 점령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최고의 목표로 한다는 겁니다. 그 특권을 갖고 있는 것이 인간입니다. (249-50, 1993.10.7)

영계에 가면, 상대를 중요시하고 전체를 위해 봉사·희생한 사람이 높은 데 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천국민의 공통된 성격입니다. 어떤 사람이 높은 영계에 가느냐 하면, 모든 것을 투입하여 하나님처럼 투입하고, 투입하고 잊어버리는 사람입니다. 인류 구원을 위해 많은 사람들을 하나님편으로 끌어 붙인 사람이 천국에 가는 겁니다. 천국 국민을 얼마나 많이 연결시키느냐에 따라 영계에서의 자신의 자리, 위치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249-81, 1993.10.8)

위해 보지 못하고 사랑을 가지고 살지 못한 남자 여자가 얼마나 불쌍한지 영계에 가 보면 똑똑히 알게 됩니다. 저 나라는 전부 위하는 사람뿐입니다. 여기서 그렇게 살면, 그냥 그대로 하나님에게로 쏵 올라갑니다. 그걸 알기 때문에 문 총재는 지금까지 나타나기를 싫어했습니다. 제자들을 전부 앞세우고 영광된 자리를 다 내어 준 것입니다. (202-251, 1990.5.24)

참을 찾아 나간다면 마음을 절대 위할 수 있는 몸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 되어가지고 하늘땅에 하나님을 중심삼고 90각도로 연결되면, 동서남북 상하고저 어디에 가든지 압니다. 자동적으로 영계가 통합니다. 배우지 않고도 다 압니다. 문 총재 같은 사람이 어떻게 천지의 비밀을 다 알았겠어요? 그 경지에 들어가니까 다 알게 된 겁니다.

참된 사랑을 중심삼고 몸과 마음이 공명되는 경지에 딱 들어가 보니 다 보이더라 이겁니다. 하나님도 보이고, 천상세계가 다 보이고, 역사가 보이고, 다 보입니다. 왜? 참된 사랑을 통해서 관계 맺고 인연짓고 이상적 생활을 할 수 있는 환경적 요건이 본래의 하나님의 창조이상의 원칙이었기 때문에 그 경지에 들어가 보니 안 통하는 데가 없습니다. 영계의 조상도 부르면 재까닥 나와가지고 만나 뭘 물어 볼 수 있습니다. (199-372, 1990.2.21)

우주를 만든 하나님은, 우주의 법도를 세운 하나님은 어떤 분이냐? 온 우주를 통해서 누구보다도 위해 사는 대표적인 자리에 선 분입니다. 그분이 하나님이다 이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분을 만나려면 위해 살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분은 지식의 대왕이지만, 지식 가지고 하나님 앞에 오라고 하지 않습니다. 능력의 대왕이지만 능력 가지고 오라고 하지 않습니다. 권력에 대한, 돈에 대한, 물질에 대한 주인이요, 대왕이지만 그것을 가지고 오라고 하지 않는다구요. 위해서 오면 전부가 올 수 있다고 하는 겁니다. (133-18, 1984.7.1)

우리의 본향(本鄕)은 하나님을 위해서 존재하는 자들만이 들어가는 곳이요, 위해서 나고, 위해서 살고, 위해서 죽어간 사람들이 들어가는 곳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본향(本鄕)의 이상적 구조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본향에 찾아오게 하기 위해서 역사 과정에 수많은 종교를 세워가지고 훈련시켜 오는 것입니다.

종교가 온유·겸손해야 되며, 희생해야 한다고 가르치는 이유는, 영계에 돌아가야 할 인간들에게 영계의 법도가 그렇기 때문에, 종교가 지상생활 과정에서 그 영계에 알맞도록 훈련시키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차적인 종교일수록 보다 차원 높은 희생을 강조하고 봉사를 강조하게 되는 것은, 평소의 생활을 통해 그 세계에 일치시키려는 데에 그 원인이 있는 것입니다. (75-321, 1975.1.16)

돈 따라가고 싶은 사람은 영생길을 못 갑니다. 지식 따라가는 사람도 영생길 못 가요. 지식에 학문에 영생이 어디 있어요? 지식은 많을수록, 알면 알수록 교만해지는 겁니다. 교만의 주인이, 교만의 왕초가 사탄입니다. 사탄세계에 가까이 가는 겁니다. 교수들 미안합니다. 내가 아는 진리는 그렇습니다. 죽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내가 왜 그른 말 했나 영계 가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가서 보고 그때 나한테 항의하라는 겁니다. 올바로 가르쳐주니 올바른 선생입니다. 거기서도 선생이고, 여기서도 선생입니다. 데데한 선생이 아닙니다. (200-127, 1990.2.24)

영계에 가면 고집이 큰 원수입니다. 국회의원 해먹던 사람들 영계에 가면 참 곤란합니다. 그걸 똑똑히 알아야 됩니다. 교수들을 재교육해야 할 텐데, 그래서 껍데기를 벗기고 노동자에서부터 땀을 흘리게 하는 겁니다. 땀을 흘리며 땅도 파 보고 해야 됩니다. 그래야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교수들을 전부 엮어 놨는데, 이 사람들을 지금까지는 후대했습니다. 이렇게 하다가는 영계에 가면 참소합니다. `선생님이 이걸 다 알면서 왜 그랬소? 왜 올바로 가르쳐 주지 않았소?` 하는 겁니다. 이거 사실 얘기입니다. 내 말이 맞는지 안 맞는지 가 보라는 겁니다. (201-257, 1990.4.28)

영계에 가 보면 전부 다 위하여 사는 사람이 가지 위하라고 하는 사람은 못 갑니다. 그래서 학자가 되고, 세상에서 대통령이 되고, 왕 된 사람들은 지옥 가는 것입니다. 위해서 살지를 않았거든요. 목사들의 심정을 보게 되면, 자기가 얻어먹을 생각을 하지 주고 살려고는 안 하는 것입니다. 부모라는 것은 암만 자식에게 주었더라도 또 다른 무엇을 준비해가지고 주려고 하는 것입니다. 주고 싶은 마음이 연결되는 그런 기반에는 발전하는 것입니다. (276-304, 1996.3.10)

영계와 인간이 관계를 맺으면 숨길 수 없습니다. 물을 보면 물은 반드시 위에서 아래로 흘러 내려가고, 공기는 공간이 있으면 채워지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영계가 움직이는 데에는 빈 곳이 없습니다. 채운다 이겁니다. 물을 받으려면 그릇이 비어야 할 텐데, 그릇이 차 있으면 비어 있는 나머지밖에 안 채워진다는 겁니다. 마찬가지로 공기도 비어 있는 부분에는 다 들어가는데, 막혀 있으면 그 막힌 부분에는 공기가 채워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280-11, 1996.10.13)

영계에 쓱 가보면 천년만년 된 사람들이 전부 다 자기를 중심삼고 모여들려고 하는 겁니다. 자기가 움직이면 무리를 지어서 전부 다 모여 옵니다. 여러분도 선생님과 가까운 곳에서 살고 싶지요? 가까운 데서 `이렇게 보면서 살고 싶다.` 하는 그런 생각을 하는 겁니다. 그거 누가 그렇게 해요? 자기가 아닌 것입니다. 천운이, 우주의 법칙이 그런 사람을 중심삼고 전부 다 모여들어 하나 되게 하려고 하는 겁니다. 그게 원칙입니다. 아무리 떨어지라고 해도 떨어질 수 없습니다. (255-173, 1994.3.10)

위하여 사는 사람이 되라. 이것이 천주 생성, 형성의 근본입니다. 하나님도 위하여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평화의 세계가 목전에 전개되는 겁니다. 천주의 모든 것들 가운데 이것을 거스르는 것이 없습니다. 이렇게 주체적, 생성의 근원, 엑기스적, 핵심적인 자리에 선 그 사람은 천주, 하나님까지도 환영하는 것입니다. 지금 선생님 같은 사람이 그렇다는 겁니다. 여러분은 그런 것을 모르기 때문에 실감을 못하는 겁니다. 영계도 선생님을 중심삼고 움직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세계를 모르지요? 그렇기 때문에 아무렇게나 하고 있는 겁니다. (255-176, 1994.3.10)

참사랑을 중심삼고 위하여 사는 사람은 밤이든 낮이든 천주만주 어디에 가든지 환영을 받습니다. 여러분은 어차피 영계의 전시장에 전시되는 겁니다. 인간의 박람회를 하는 곳이 영계입니다. 영계에서는 지상에서 어떤 생애를 산 사람인지 금방 전시되는 것입니다. 거기서 꼴찌가 되고 싶어요, 모두가 찬양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어느 쪽입니까? 최고로 찬양을 받는 사람이 되고 싶지요?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선생님이 얘기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안 됩니다. 최고로 찬양을 받으려 하기 전에 최고로 위해서 살라고 하는 겁니다. 그런 사람은 틀림없이 중심자가 되는 겁니다. (255-181, 1994.3.10)

청년들은 그걸 모릅니다. 20명의 친구들이 있다고 한다면, 친구들의 중심으로 남는 사람이 누구냐? `너희들 모두 나를 위해라!` 하게 되면 모두 도망가 버린다는 겁니다.

20년, 10년, 일생을 마칠 때까지, 죽어서도 그 친구들을 위했을 경우에는, 영계가 있다면 그곳에 가 모두 그를 중심하고 모입니다. 그것은 틀림없는 진리입니다. 위하여 사는, 더 위하여 사는, 더 희생하는 사람이 중심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257-45, 1994.3.13)

위해 사는 사람은 망하지 않습니다. 또, 위해 사는 사람은 영계에서 자꾸 코치해 줍니다. 자꾸 새 것과 관계 맺게 만들어 준다는 겁니다. 새 것과 관계 맺으니까 그 사람은 자연히 유명해지고 세계적으로 알려집니다. (292-28, 1998.3.27)

부모는 고생하는 아들딸을 먼저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심정의 조류라는 것이 뭐냐? 불쌍한 사람들을 찾아서 어떻게 나와 같이 만들 것이냐 하는 놀음을 할 줄 알아야 됩니다. 그렇게 되면 세상은 전부 다 나를 반대하고 천대하지만 하나님과 하늘나라는 나를 옹위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영계의 영인들이 나를 옹위해가지고 보호하고 다니는 것입니다. 구름같이 나를 옹위해 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은 망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지나가게 되면 구름이 환경을 전부 다 휩쓸어가지고 정리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투입하고 수고한 대가만큼 창조해 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나는 고생하고 핍박받지만 천운이 뒤에서 와가지고 그 기반을 닦아주는 것입니다. 성인들이 당대에서는 핍박을 받지만 후대에 가가지고 이름을 남기는 것은 영계가, 하늘이, 천운이 그렇게 만들어 주기 때문에 그런 현상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207-101, 1990.11.1)

천국에 가고자 하는 사람은 비참하게 살아라, 비참하게 죽어라, 비참하게 가라는 것입니다. 그 말이 좋은 말이냐. 나쁜 말이냐? 좋은 말입니다. 그렇다면 죽도록 나가 전도하라는 말도 좋은 말입니다. 남을 위해 목숨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자기를 위해서가 아니라 남을 위해서, 세계를 위해서, 천하를 위해서 목숨을 버리면, 대우주의 주인으로서 세워 주는 것입니다. (49-303, 1971.10.17)

영원히 남는 것이 있다면 공적인 고생입니다. 공적인 고생을 하고 영계에 갔는데, 거기서 망하거든 선생님에게 항의해도 됩니다. 민족과 세계, 하늘땅을 위하여 일하다가 맞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19-30, 1967.12.10)

도의 길에 들어선 사람은 죽을 때까지 죽음길을 가야 합니다. 죽어서 할 고생을 살아서 탕감하려니 그런 길을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죽어서 억천만년 고생할 것을 축소시켜 생전에 탕감해 버리자는 것입니다. 이처럼 도의 길은 영원히 가야 할 수난의 노정을 이 땅 위에서 고난의 길을 걸어감으로 탕감하자는 것입니다. (31-320, 1970.6.7)

통일교회에 오게 되면, 땅 위에서 잘살라고 하지 않습니다. 지지리 못살고, 지지리 고생하다가 죽어 길가에 쓰러져 개도 안 물어갈 주검을 남겼더라도 그 자리에는 꽃이 필 날이 올 것입니다. 거기에는 모든 거룩한 사람들이 모여들어 도성을 만들 것입니다.

통일교회 무리들을 나라를 위해서, 세계를 위해서 지긋지긋하게 고생을 시켜서 효자, 충신으로 만들어 보자는 것이 선생님의 생각입니다. 안 가겠다면 후려갈겨야 됩니다. 발길로 차서라도 현재의 비참함을, 현재의 어려움을 극복시키는 것이 사랑입니다. (49-304, 1971.1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