⑤ 영계에서의 의식주 문제는 자유자재 - [8대교재교본] 천성경 인간의 삶과 영혼의 세계

⑤ 영계에서의 의식주 문제는 자유자재

저 나라의 생활은 어떠냐? 먹을 것 걱정 없습니다. 살 것 걱정 없습니다. 입을 것 걱정 없습니다. 왜? 자기의 심령상태대로 원하는 모든 것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저 나라에서도 먹습니다. 저 나라에서도 자기를 만져 보면 핏줄이, 맥박이 뛰는 걸 다 압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영적인 몸이지만 마찬가지다 이겁니다. 내가 무엇을 먹고 싶다 하면 대번에 벌어집니다. 이러이런 걸 먹고 싶다 하면 대번에 나타납니다. 그거 어디서 오느냐? 근원 세계를 동원할 수 있는 능동적 자주성을 행사할 수 있는 세계가 영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체를 동원할 수 있는 주체적 능동권을 가진 것이 뭐냐? 권력도 아니요, 지식도 아니요, 돈 가진 세력도 아닙니다. 사랑입니다. (194-42, 1989.10.15)

하나님이 창조한 이 거대한 우주! 그곳에는 자동차도 없고, 음식점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영계에서 마치 창조주이신 하나님같이 온갖 종류의 것들을 참사랑의 개념을 중심삼고 창출해 낼 수 있듯이, 사랑을 중심삼고 원래의 힘을 발휘하여 모든 것을 만들 수 있습니다.

내가 사랑을 중심삼고 이와 같은 것, 저와 같은 것 등을 지적하면 실재물이 완전히 모습을 나타낼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떤 공구 나타나라!` 하면 바로 그 공구가 생겨나요. 그게 얼마나 훌륭해요? 또 만찬장에 수십 수백만 명이 참석했을 때 `이런 음식 준비를 해야지!` 하고 원하기만 하면 식사가 문제없이 나온다는 겁니다. 금빛 정장을 원하면 즉시 그런 정장이 나오는 것입니다. 얼마나 멋지고 훌륭해요! 그것 참 좋다! (217-293, 1991.6.2)

저 나라에 자동차공장이 있겠어요, 없겠어요? 이런 것들 타고 순식간에, 1초 동안에 몇억만 킬로를 갈 수 있습니다. 선생님이 그런 것을 환히 알기 때문에 지상에 살고 싶은 생각이 없습니다. 그 방대한 세계가 사랑을 중심삼고 전부 다 엮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 사랑에 화(和)한 하나님의 심정권을 딱 소지하게 되면 모두 끝납니다. 창조역사는 영원히 계속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랑의 마음에 화해가지고 자기가 구상한 모든 것을 해야 됩니다. 일시에 딱 결심하고 명령하면 즉각적으로 벌어진다는 겁니다. (202-87, 1990.5.6)

영계에 가면 소변 보겠어요, 안 보겠어요? 가 보라구요, 이 다음에. 나는 소변 본다고 하는데 안 본다고 하는 사람 가 보라구요. 소변 보나 안 보나. 그러면 소변보다 더 큰 것 하겠어요, 안 하겠어요? 다 합니다. 다 하지만 즉각적으로 원소로 돌아갑니다. 우주의 근본 원소가 107개라고 하는데, 자꾸 늘어나고 있지만 그 원소로 돌아갑니다.

그러므로 청소할 필요가 없습니다.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손짓을 하게 되면 깨끗이 본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사랑의 마음으로 뭐 나와라 뭐 나와라 뭐 나와라 하면 주욱 나옵니다. 사랑의 마음으로 하면 모든 것의 출동이 가능합니다. (212-30, 1991.1.1)

저 나라에 빵공장이 있겠어요, 없겠어요? 코카 콜라나 주스를 만드는 공장이 있겠어요, 없겠어요? 없긴 왜 없어요? 모르지 뭐! 거기에 자동차를 만드는 공장이 있겠어요, 없겠어요? 저 나라에 가서 `나 좋은 차 타고 다닌다.` 하면서 이러고 다닐래요? 여기서는 뭐 벤츠를 타고 다니고 뭐 어떻고 어떻다고 자랑하고 하지만 거기선 그거 다 필요없습니다. (207-94, 1990.11.1)

영원히 눈을 뜨고 영원히 듣고 영원히 안 먹을 수 있는데 지금이 좋은데 밥 먹으라고 해서 먹겠어요? 밥 먹으라고 하면 먹을래요? 난 안 먹습니다. 옷을 입어도 내가 마음대로 옷을 입을 수 있습니다. `오늘 아침에는 전부 다 황금 옷을 입어라. 자, 다이아몬드로 몇 캐럿짜리를 끼어라. 영국의 왕비는 517캐럿을 가졌지만 그 이상 되는 1만 7천 캐럿짜리를 껴라!` 하면, 그런 거 다 가질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을 다 만들 수 있습니다. 그렇게 볼 때, 레버런 문은 망상가입니다. 그러나 가능한 이론권 내에서 말을 하고 있다 하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112-18, 1981.3.15)

영계라는 곳은 사랑의 공기로 충만한 곳이다 하는 개념을 우리가 이 땅 위에 있는 인식 구조를 가지고 찾을 수 있다는 겁니다. 사랑의 하나님이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세계 인류를 한꺼번에 전부 다 먹이고 싶고 좋아하게 하고 싶어서`밥 생겨나라!` 하면 생겨납니다. 영계에서도 먹어야 되니까 그렇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의 음식을 먹는 겁니다. 서로 보는 것도 사랑의 눈을 가지고 보고 다 그런다는 겁니다. 모두 맞아 터져도 또 맞으려고 합니다. 신비롭기가 형용할 수 없는 곳입니다. 들어도 자꾸 더 듣고 싶고, 뭐 잠이니, 피곤이니, 무엇이니 하는 관념은 있을 수 없습니다. 피곤할 여유가 있고, 흥분할 뭐가 없습니다. 지루하고 방해될 무엇이 없습니다. 그게 없는데 왜 피곤하겠어요? (112-18, 1981.3.15)

영계에는 의식주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의식주는 완전히 자유자재입니다. 사랑의 일체권, 하나님의 상대권에 서게 되면, 하나님이 할 수 있는 것도 할 수 있습니다. 뭐든 할 수 있습니다. 몇억만 년의 세월도 한순간에 초월할 수 있습니다. 사랑의 속도는 초스피드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곳에 갔다 오겠다 할 때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는 겁니다. 금방 갔다 올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랑의 상대자를 만나는 것은 순간입니다. 그곳은 절대권이기 때문에 아무런 장애가 없습니다. 그러한 한계를 넘어선 세계, 시공을 초월한 세계입니다. 그러한 무한의 세계가 인간을 위해서 준비되어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참부모에 의해서 그런 걸 알게끔 되었습니다. (259-58, 1994.3.27)

영계에 가면 무엇을 중심삼고 사는지 알아요? 영계에는 공장이 있겠어요, 없겠어요? 영계에 자동차 있겠어요. 없겠어요? 소모품 공장 있겠어요, 없겠어요? 영계에서 밥 먹겠어요, 안 먹겠어요? 옷 입겠어요, 안 입겠어요? 이런 것이 영계에는 없지만 자기 인격 구조가 하나님의 대상적 가치기준을 가졌으면 하나님이 할 수 있는 능력을 이어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영계에서는 백만 명이 순식간에 뱅퀴트(연회)를 할 수 있습니다. 자기가 진정 사랑의 마음을 가져가지고 `이들을 이렇게 먹여야 되겠다.` 하는, 하나님과 같이 진정 사랑하는 마음이 딱 되어 있으면 만사가 무불능통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의 동산에서, 사랑의 세계에서 헤엄치고, 뭐라고 할까, 사랑의 세계에서 그 모든 파장에 박자를 맞출 수 있는 생활의 훈련을 한 사람은 하나님 속에도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왜? 참사랑의 파장은 같기 때문에 상충이 안 벌어지는 겁니다. (203-342, 1990.6.28)

영계에 가면 먹는 것만 하더라도 `오늘은 이런 음식으로…` 하면 바라는 대로 금방 나타나고, 사랑하는 사람이 보고 싶으면 `휙` 일체화되어 이렇게 이렇게 부탁하면 금방 나타납니다. 그리고 한순간에 몇만 몇십만의 뱅귀트 룸이 만들어질 수도 있는 겁니다. 이것은 허구가 아니라 이론 자체가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는 먹다 남은 것은 원형(原形)으로 되돌아갑니다. 원상태의 원소로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편리한 곳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가는 곳은 천주 전부가 그리워해서 쫓아가려고 하는 그러한 곳입니다. (227-101, 1992.2.10)

창조이상세계에는 천국이 내 집입니다. 그렇게 방대한 천국이지만 그것이 내 생활권의 무대가 돼 있는 것입니다. 내 나라가 아닙니다. 나라에는 제도도 많고 직종도 많지요? 그러나 영계는 그렇지 않습니다. 단순합니다. 경제지원 할 수 있는 공장들이 있겠어요, 없겠어요? 옷 만드는 공장이 있겠어요, 없겠어요? 밥 만드는 공장이 있겠어요, 없겠어요? 생활필수품이나 이 세상에서 필요한 것은 하나도 필요없습니다. 그러니 공장이 있겠어요, 없겠어요? 꽃만 피는 이상적 사회라는 겁니다.

먹는 것은 언제든지 먹게 돼 있습니다. 자기 생각하는 것이 딱 나타나는 겁니다. 거기에는 쓰레기통이 있겠어요, 없겠어요? 쓰레기통이 없습니다. 손짓만 하면 원소로 돌아가는 세계입니다. (204-175, 1990.7.8)

하늘의 영원한 세계, 저 나라에 가게 되면 정치체제가 있는 겁니다. 경제체제는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언제든지 자기가 필요로 하는 건 전부 다 공급받게 돼 있습니다. 경제적인 것은 부차적인 문제입니다. 영계에 갈 때, 밥그릇 들고 들어가는 줄 알아요? 무슨 깡통 차고 가는 줄 알아요? 영계는 먹고 싶으면 벌써 밥이 나타납니다. 그걸 먹다 남기면 영(零)으로 돌아가라면 돌아가는 겁니다. 그러니 전부 인격적 능력을 가지고 활용할 수 있는 대상일 뿐이지, 그게 주체적인 영향은 아무것에도 미치지 않는 겁니다. (167-59, 1987.6.14)

영계가 얼마나 좋은지는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거기는 의식주가 염려 없는 곳입니다. 집도 다 있고, 옷도 다 있고, 먹을 것도 다 있어서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습니다. 사랑의 심정의 가치 내용에 따라 상대적 기준을 자유로이 공급받을 수 있는 겁니다. 사랑을 중심삼고 완성한 인격 기준에 따라서 그의 상대적 환경 요건을 자유롭게 보급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자고 있더라도 아침 저녁 먹을 수 있는 장소에 뭄뚱이가 끌고 간다는 것입니다. 영계를 보면 그렇다는 겁니다. 그렇게 자유롭다는 겁니다. 자면서도 먹고 자고 할 수 있는 대로 찾아가는 것입니다. 몸뚱이가 그렇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248-163, 1993.8.1)

영계에 들어가면 어떻게 되느냐? 거기에는 밥 먹을 것이 걱정 없습니다. 밥벌이 안 합니다. 저 나라에 가게 되면 밥벌이가 필요없습니다. 먹고 싶을 때는 언제나 먹을 수 있습니다. 참 재미있는 것이, 먹고 난 다음에 그 찌꺼기는 어떻게 하느냐? `돌아가!` 하면 원소로 돌아갑니다. 근본의 세계, 원소로 돌아가 버립니다. 그런 것이 가능한 세계에서 사방팔방으로 기동할 수 있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취하는 생활을 하는 사람입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은 이상(理想)이 백방으로 실현되는 곳이 영계이니만큼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취해서 산 사람들이 주도적인 입장에 서는 것입니다. (198-294, 1990.2.5)

영계에서는 원소를 마십니다. 물 하게 되면 물 원소를 마십니다. 원소 같은 것 알아요? 그래가지고 실컷 먹고 손짓만 하면 원소로 돌아갑니다. 쓰레기통이 없습니다. (211-245, 1990.12.30)

영계에 가면 일이 필요해요? 거기서도 여덟 시간 일해야 되나요? 밤이 있나요? 밤이 없습니다. 언제나 눈을 뜨고 있습니다. 언제나 이 모든 기관이 일하고 있는데, 뭘 하는 거예요? 무슨 일을 하는 거예요? 영원히 눈뜨고도, 영원히 자지 않고도 좋아할 수 있는 그런 일이 뭐냐? 사랑입니다. 그런 사랑이상만 딱 지녔으면 `야, 뭣이 나와라!` 하면 재까닥 나온다는 겁니다. 여기 만 명이 모이면 `만 명 식당과 식탁 준비!` 하면 재까닥 준비된다는 겁니다. (107-331, 1980.6.8)

영계에도 공기가 있어야 되겠나요, 없어야 되겠나요? 왜 공기가 필요해요? 숨 안 쉬고 살면 얼마나 좋아요? 왜? 어째서? 숨 안 쉬고 살면 클 수가 없습니다. 두 세계를 연결시키지 못해요. 두 세계를 연결시켜야 됩니다. 육신과 영혼을 연결시켜야 된다는 것입니다. 영인체도 크려면 몸뚱이가 커야 됩니다. 고착할 수 없습니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보이지 않는 것도,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 사랑의 공기로 호흡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생명의 원천이 되는 원소 공급을 하는 겁니다. (197-42, 1990.1.7)

이 눈이 깜박깜박 하는 것은 공기 속에 있는 세상에서 먼지가 들어갈까봐 그러는 겁니다. 영계에는 먼지가 있나요, 없나요? 영계에서는 하나님이 눈을 천년만년 뜨고만 있다면 그거 기분 좋아요? 지상에서 습관성으로 깜박깜박 했기 때문에 영계에 먼지가 없더라도 깜박깜박 해야 되는 겁니다. 왜? 우릴 닮아서. (197-17, 1990.1.7)

영계에 가고 싶어요, 안 가고 싶어요? 문 총재가 거짓말하는지 모르지 뭐. 거짓말이라도 하나님의 말같이 믿게 되면, 하나님은 창조의 능력이 있기 때문에, 그가 원하는 이상의 것을 만들어 줄 수 있는 주체인 것을 알아야 됩니다. 악마가 `야, 이거 하나님이 이렇게 말했다.` 할 때 악마가 말하는 이상의 것까지 믿고 나가 행동하게 되면 하나님은 창조해서 이루어 줄 수 있는 길이 얼마든지 있다는 것입니다. (212-31, 199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