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에 대한 바른 인식이 필요한 때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10권 PDF전문보기

예수님에 대한 바른 인식이 필요한 때

예수님은 오늘날 여러분이 `오! 주여' 하며 믿고 있는 분이 아니었습니다. 오늘날 잘 믿는 사람들이 그때에 태어났더라도 `이 사람이 너의 주님이다'라고 하면 안 믿었을 것입니다. 한 사람도 안 믿었을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예수님의 가치를 세계적인 기준에 올려 놓고 믿으라고 하니 믿는 거지요.

옛날 제사장들이 여러분만 못해서 예수님을 죽였겠어요? 천만에요. 예수님은 가문으로 보든지 그 무엇으로 보든지 형편없는 입장에 계셨습니다. 예수께서 돌아가신 후에 성경에서 그 가문이 훌륭하다고 하니까 그렇게 알지 그 당시의 사람들이 알 게 뭡니까. 과거를 보나 현실을 보나 무엇하나 믿을 수 없는 예수님이었습니다. 그러기에 동생들까지도 예수님 대해서 흉을 보았습니다. 오순절이나 어떠한 행사 때가 되면, 형님이 무엇을 나타내기를 바란다면 사람들이 모이는 예루살렘에 가지 왜 이러고 있느냐고 핀잔을 하기도 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공생애 노정에서 하나님의 권능에 힘입어 이적과 기사를 행하시면서도 수난을 겪으셨습니다. 예수님을 보고 저 사람의 동생이 누구이며 아무개 형이 아니냐고 경시(輕視)했습니다. 형편이 없었단 말입니다.

예수님은 30여 년의 생애를 준비하면서 자기 어머니를 붙들고 간절히 말씀하시고 싶은 무엇이 있었습니다. 형제들을 붙들고도 간절히 말씀하시고 싶은 무엇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말씀하시지 못하였습니다. 왜? 상대기준이 조성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부모인 요셉과 마리아 그리고 자라는 동생들과 함께 엉클어진 심정을 끊고 나설 수 있는 환경이 되지 못한 것을 아신 예수님은 서른 살이 되자 집을 박차고 나오셨던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복음을 전하시기 위하여 나오신 줄 알지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만민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나와요? 예수님이 요셉가정을 중심삼고 친척을 중심삼고 왜 전도를 하시지 못했습니까? 친척들이 예수님의 울타리가 되었더라면 그는 돌아가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형편이 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집을 박차고 나온 예수님이었기 때문에 가나의 잔칫집에서 마리아가 나타나서 포도주가 없다고 예수님에게 말하였을 때에 마리아에게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당연하다는 겁니다. 당연해요. 뺨을 안 치신 것이 다행입니다. 나는 그렇게 봅니다. 그심정을 누가 알겠어요, 이렇게 사정이 엉클어지고 가슴이 미어지는 듯한 심정에 사무치면 사무칠수록, 천륜을 대하는 마음이 간절하면 간절할수록, 때가 가까와 옴을 느끼면 느낄수록 그의 초조함과 불안함은 더해간 것입니다.

이 땅 위에 사는 사람들은 갈 길을 몰라 초조해지고 불안해하지만 예수님은 인간이 가야 할 길을 가르쳐 주시지 못해 불안해하고 초조해하셨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