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날에 있어서 우리들은 예수보다 나아야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62권 PDF전문보기

끝날에 있어서 우리들은 예수보다 나아야

아벨이 생명을 바쳤어도 이루지 못한 뜻, 노아가 120년 동안 수난길을 가 가지고도 성사시키지 못한 이 뜻, 아브라함이 가정과 아내를 빼앗기는 자리에서도 이루지 못한 섭리의 뜻, 야곱이 21년 동안 수난길을 극복하고 하늘의 축복을 받고 돌아왔으나 그 축복을 가지고서도 이루지 못한 이 뜻, 모세가 바로 궁중과 자기의 영화, 인간으로서 가질 수 있는 모든 영광을 다 저버리고 이어받았으나 이스라엘 민족사를 바로잡지 못한 기막힌 그 뜻, 4천년 역사의 종국에 하나의 꽃으로 피어났던, 하나님이 특별히 택하였던 세례 요한이 메뚜기와 석청만을 먹으면서 30여 평생을 광야에서 보내며 조롱과 손가락질을 받아도 참고 고대하여 메시아를 증거 하였으나 이루지 못한 그 뜻, 예수가 30여 평생 온갖 힘과 정성을 다 기울였지만 살아서 이루어야 할 뜻을 살아서 이루지 못하고 간 그 뜻, 이런 엄청난 뜻입니다. 모두가 실패로 귀결된 일로를 공식처럼 밟고간 그 뜻…. 그것을 해원성사시키고, 그것을 승리의 기점에서 뜻 앞에 일치화시킨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 않느냐?

이것을 생각하게 될 때, 오늘날 통일교회 여러분들, 아벨 이상의 죽음 길을 각오하지 않고는 안 되는 겁니다. 노아의 120년 수난길 이상을 극복할 수 있는 각오와 신념을 갖지 않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처자식을 집시의 무리와 같이 이끌고 국경을 넘나드는 행각의 행로에 있어서 소망을 갖고 그 생활을 흥미롭게 느낄 수 있는 나그네의 신세를 거치지 않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나라 없는 백성으로서 자기의 조국광복을 바라던 것보다도, 밤이면 하늘의 별을 바라보고, 아침이면 태양을 바라보고, 저녁이면 달을 바라보면서 우리의 조국을 찾게 해 달라고 아우성치고, 원한을 품고 하늘 앞에 그 사연을 통고하는 민족이 아니고는 안 되는 겁니다. 2천년의 이스라엘 민족사는 수난의 역사요, 슬픔의 역사인 것을 알아 가지고 이것을 가로막고 민족적 사명을 대신 책임하겠다고 나섰던 세례 요한, 민족적 자각자요. 새로운 시대의 중보자로서. 그런 사명을 짊어지고 생애를 바쳐 노력하였던 세례 요한마저도 망한 길이 아니었더냐.

예수가 하늘의 특명을 받아 이 땅 위에 와 가지고 성취의 일념을 갖고 30여년의 생애를 제물로 바쳐 가면서도 이루지 못한 그 뜻이 아니냐.

이러한 뜻을 이어받고, 이러한 뜻의 승리의 종결을 바라보고 나가는 무리가 땅 위에 있다 할진대, 이는 죽음길을 간다는 각오밖에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여기에는 누구의 아들딸이니 뭐니 하는 것이 통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가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시옵소서 (마 26:39)"라고 기도하던 그 이상 심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가 심각했던 그 이상으로 심각하다고 해서, '야 야, 이놈아, 너 예수가 심각했던 그 이상 심각하면 그건 죄야!' 그럴 사람이 있어요? 또, 예수보다도 더 효도하겠다고 나오는 사람이 있으면, '야 야, 그것은 예수가 차지할 자리니, 너는 여기서 스톱, 됐다' 이런 하나님이 될 수 있어요? 하나님은 '더 해라, 더 해. 예수가 한 것보다 천배 만배 해라' 할 것입니다.

조상보다 후손이 천배 만배 나으면, 그 후손은 망하지 않는다 이거예요. 끝날에는 예수보다 못해서는 안 된다는 결론이 나오는 겁니다. 예수보다 나아라 이거예요.

예수는 반대하던 이스라엘 민족을 중심삼고, 반대하던 유대교를 중심삼고 '아버지여,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옵소서' 했지만, 지금 시대에 있어서는 그 범위가 세계시대로 넓어졌다 이거예요.

통일교회는 세계를 앞에 놓고 통일교회로서 남아질 수 있는 겟세마네 동산을 생각해야 됩니다. 아무리 못난 아들딸이라도 모여서 그런 신념을 가지고 그것을 행하기 위해 각오를 가지고 하늘 앞에 담판하고 나서는 무리가 있다면, 하나님이 '야 야, 그건 안 된다' 그럴 수 있어요?

부모 앞에 맏아들이 효도를 하는데 맨 막내 아들인 조그만 녀석이 와 가지고 '아 형님, 형님이 효도하는 거 틀렸소. 이거 뭐요. 형님은 안돼 먹었소'라고 하면, 그 부모가 '야, 이 녀석아 형님이 왜 안돼? 효자인데' 그런다고, 그 부모가 기분이 나빠요? 야 그 녀석 봐라…. 귀에 피도 안 마른 조그마한 녀석이 형님이 효자인데도 불구하고 '형님 뭐야, 그게 효자야' 그렇게 참소한다고 해서 기분 나빠할 부모가 있어요? 그것을 기분 나빠하는 부모는 없는 것입니다. 그럴수록 '야, 요 녀석 봐라' 그러는 겁니다. 안 그래요? '요 녀석 봐라. 요거 크면 무엇이 될까? 아, 우리 집에서 제 형의 백 배 되는 효자가 되면 얼마나 좋겠느냐' 그러는 거예요. 그것이 틀렸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