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하는 데 있어서는 사랑을 중심삼고 해야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138권 PDF전문보기

위하는 데 있어서는 사랑을 중심삼고 해야

그래서 나 통일교회 문 아무개는, 여러분이 가정을 버리고 떠나서 가정을 버리고라도 그 버린 가정 이상으로 나라를 사랑하라고 가르쳐 왔던 거예요. 나라를 버리더라도 더 큰 세계를 위해 살라고 가르치고 있는 거예요. 내 자신이 그렇게 살아 왔어요. 그렇게 살다 보니 남는 것이 뭐냐? 뒤를 돌아보니 사막이 따르는 것이 아니라 내 발자국 뒤에는 사막의 샘인 오아시스가 터지고, 그 샘줄기를 따라서 푸른 동산이 벌어져 오더라 이겁니다. 누가 그런 원인을, 그런 동기를 만들었느냐? 그 푸른 동산이 말하기를 '내가 이렇게 된 것은 내가 스스로 된 것이 아니고 아무개 때문에 이렇게 됐다'라고 한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그들이 모셔 주려고 한다는 거예요.

그러면 하나님은 어떤 분이냐? 천년 만년 중앙에 있고, 또 있기를 바라는 만유의 존재들 앞에 하나님은 어떤 마음과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느냐? 하나님은 보다 위하려는 중심존재로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영원히 같이 있고 싶어한다는 거예요. 떠나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여러분의 마음은 보다 위할 수 있는 천주적 챔피언이 되기를 원해요. 그게 누구냐?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아시겠어요?

그러면 위하는 데 있어서 무엇을 중심삼고 위하느냐? 돈을 중심삼고? 구형이 있다면 구형을 채울 수 있는 것은…. 돈은 일방성이에요. 지식도 일방성이에요. 권력도 일방성이에요. 그렇지만 구형적이고 사방성을 지님과 동시에 입체성을 지니고 화동시킬 수 있는 하나의 힘은 사랑입니다.

사랑은 어떤 것이냐? 사랑은 납작한 것이라고 하면, 기분이 맞아요? 사랑은 뾰족한 것, 기분이 맞아요? 사랑은 가늘고 긴 것, 기분이 맞아요? 사랑은 두리둥실하지요. 두리둥실하다는 그 말이, 한국 말이 참 멋져요. 두리둥실. 둘이 다 둥실둥실한 게 뭐가 좋아요? 둘이 둥실하니까 둘이 둥실둥실하면서 굴러간다 그 말이에요. 안 그래요? 그거 참, 한국 말이 계시적인 말입니다.

사랑은 중심이 되는 것이고, 사랑은 돌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사랑은 납짝한 것이 아니예요. 둥근 거예요. 뾰족한 것이 아니예요. 모가 지지 않았어요. 그리고 반항적이 아니예요. 수동적이예요. 사랑하는 사람의 손길이 오게 되면 끌어당긴다는 것입니다. 끌어당겨서는 뭘할 것이냐? 자기 자리에 갖다 놓는다는 것입니다. 끌어당겨서 내 자리에 놓고, 나는 네 자리에 가겠다는 작용을 한다는 거예요. 사랑의 힘은, 사랑은 그런 작용을 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얌전한 미인 여자라도 사랑하는 자기 남편의 손이 오게 되면 가슴에 쏘옥…. 추워서 손이 얼었으면 자기 가슴에다 넣어 녹여 주려고 하고, 겨드랑이에 갖다 넣어 녹여 주려고 한다 이겁니다. 자기는 차가워지더라도 바꾸려고 합니다. 하나되려고 하는 힘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본질이 그렇잖아요?

하나님은 위하는 세계의 주체로 있어 가지고 이 온 우주를, 통일교회로 말하면 화동해 주기 위해서 계십니다. 본질이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부부가 화동할 수 있기 위해서는 먼저 서로가 위해야 되고, 그 위하는 데 있어서는 위하는 사랑의 마음을 가져야 돼요. 그것도 그런 거예요.

종교에서 희생하라고 하는데, 희생하라는 말이 뭐예요? 희생이라는 말 자체하고 위하라는 말하고 비교하면 '희생'은 비참해 보여요. 위하는 것은 그래도 좀 나아 보인다구요. 희생도 위하는 면에 있어서 하나의 속성과 같은 거예요. 희생하는 마음, 사랑을 중심삼고 희생하는 마음이 있으면 모든 것이 새로와집니다. 왜? 하나님이 그러한 본성을 중심삼고, 그러한 속성을 중심삼고 우주를 창조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위하고 사랑하는 곳에는 창조의 능력이 발동되는 거예요. 새로와진다는 거예요. 한바퀴 돌게 되면 위의 것이 아래로 가고, 아래 것이 위로 가고, 그렇게 바꿔지지요? 그러면서 발전하는 거예요. 그러면서 발전해 나가는 거예요. 커가는 거예요. 구르면 구를수록 커가는 거예요.

왜 이런 얘기를 하느냐 하면 말이에요, 아까 말하던 우리 인간들의 전체 목적, 이 존재세계에 있어서 크나 작으나 목적이 일치할 수 있는 그런 종착점에 우리가 도달했을 때 그 자리가 어떤 자리여야 되느냐 하는 것을 알기 위해서입니다. 위하는 사랑을 가진 사람이 그 종착점에 도달했다면 거기에 천만인이 있더라도 상충이 안 됩니다.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거예요. 왜 좋으냐? 내가 보다 큰 것을 위할 수 있는 자리에 들어가는 것이요, 내가 보다 큰 가치의 자리에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천 사람을 위할 수 있는 사람은 천 사람의 위함을 받는 거예요. 알겠어요? 만 사람을 위할 수 있는 사람은 만 사람의 위함을 받는 거예요. 그다음에 수십만 명의 어머니 아버지를 위했다면 그 어머니 아버지가 그를 위할 뿐만 아니라 그 어머니 아버지의 아들딸도 위하는 놀음이 벌어진다는 거예요. 그러니 수십만 사람을 위하는 일을 했다면 수십만 이상의 사람이 위할 수 있는 환경으로 발전해 나가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