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을 중심으로 살아가고 있는 인간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141권 PDF전문보기

정을 중심으로 살아가고 있는 인간

그렇기 때문에 인간들이 아무리 세계의 무대에 나가 성공하고 자기가 원하는 대로 되었다 하더라도, 성공하고 나서는 어디로 가려 하느냐 하면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거예요. 여러분도 그렇지요?

고향이 별거 아니예요. 고향에 갔다고 해도 별거 아니예요. 보게 되면 뭐, 고향의 생활적인 환경으로 보게 되면 자기가 현재 외부세계면 외부세계에 나가서 성공한 환경보다도 못하다 이거예요. 못하지마는 거기에 무엇이 있느냐? 옛날에 정서적인 자신의 과거가 살아 있다는 거예요. 정을 중심삼고 살던 옛날의 그곳을 잊을 수 없다 이겁니다.

타향살이와 고향살이의 차이가 어디에 있느냐 하면 정서적인 내용이 다르다는 거예요. 타향에서 아무리 잘살더라도 말이예요, 고향의 깊은 사랑의 내적인 인연을 중심삼고 관계가 맺어지면 다르다는 거예요. 환경적인 여건으로 보더라도…. 예를 들어 미국 같은 데를 갔다 하면 말이예요, 우리 같은 사람이 미국 가게 되면 벌써 사람이 달라요. 환경이 달라요. 거기에는 백인이 살고, 여기와는 환경이 다르다는 거지요. 환경이 달라요. 그리고 모든 생활환경이 전부 다 반대된다구요. 여기서는 오라 하면 이렇게 오라고 하는데 그쪽은 이렇게 오래요. 전부가 반대예요. 자는 데도 동양 사람은 이렇게 자는데 그 사람들은 대부분이 엎드려 잔다구요. 전부 반대라 이거예요.

그게 그래야 될 게 아니예요? 그래야 모든 것이 합할 수 있지요. 반대가 나쁜 것이 아니다 이거예요. 그것은 멀리 돌아서 합할 수 있는 상대적 위치를 취하는 놀음이다, 이렇게 보는 거예요. 그것이 뭐냐? 돌아가서 다시 만나야 된다는 것을 예상했기에 습관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동서양의 출발이 다르고, 생활풍습이 다르고, 모든 문화배경이 다르고, 출발 기준이 다르지마는 심정을 중심삼은 역사적 과정은 반드시 돌아가야 할 것이기 때문에 하나의 깊은 심정적 기준에서는 차이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가면 갈수록, 어디로 가고 싶으냐? 점점점점 끝, 세상 끝에 가면 갈수록 세상 끝을 그리워하는 것이 아니라, 중앙선을 넘게 되면 벌써 '난 돌아가야 된다' 이렇게 생각하는 거예요. 그런 작용을 하는 거예요.

그래서 사람은…. 늙은 할아버지 할머니, 임종시에 있는 그분들도 어디 가서 죽고 싶으냐 하면, 외지에 나와서 죽고 싶은 사람은 없는 것입니다. 고향 가서 죽고 싶어합니다. 왜? 왜 그러냐? 고향에서 잘먹고 잘살아서 그런 게 아닙니다. 그건 뭐냐 하면 정서적인 내용, 잊을 수 없는 내용이 거기에 남아 있다는 거예요. 거기에 가야만 옛날에 자기가 자랄 때에 아버지 어머니에게 사랑받던 것을 다시 회상하고, 또 옛날에 거기에서 결혼할 당시에 신랑을 만나던, 혹은 아내를 만나던 모든 인연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때 그 시대의 사랑을 중심삼고 엮어진 자연환경이라는 것을 잊을 수 없다는 거예요. 그때가 처음이기 때문에. 처음 것은 귀한 것이라는 거예요. 세상에서도 그렇지 않아요?

옛날 내가 잊을 수 없는 것이 있어요. 고구마 있지요? 여러분, 고구마 알지요? 고구마. 고구마가 본래 외국, 일본에서 들어온 것인데, 우리 외가집에 가면, 내가 몇 살이나 되었느냐 하면 일곱, 여덟 살 되었을 거예요. 고구마라는 것은 넝쿨 아래에 열매로 맺힌다구요. 외가집에 가면, 아이쿠 우리 아무개 왔다 하면서 외할머니가 고구마 넝쿨을 제끼고 고구마를 캐다가, 혹은 감자를 캐다가 삶아 줍니다. 이것을 삶아 주는데 참 맛있다구요. 뭐 둘이 먹다가 어떻고 어떻다 하는데 그만큼 맛있다구요. (웃음) 그것도 소쿠리로 한 소쿠리를 삶아서 주는 거예요. 그게 지금도 잊혀지지 않아요. 처음 먹을 때, 꺼풀이 있잖아요, 꺼풀? 그 꺼풀을 벗길 게 뭐예요, 그냥 먹기가 바쁘지. (웃음) 막 그저 먹어요. (웃음) 어디에 가든지 그 생각이 나는 거예요. 어디에 가서 색다른 걸 먹게 될 때에는 그 고구마 먹던 생각이 나요. 그래서 첫번 그 맛을 들인 것, 그 첫 것이 귀하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사람도 첫정을 느끼는 것은 부모를 중심삼고, 어머니 아버지의 품에 안겨 자기가 자라던 여러 가지 사연을 첫정으로 느낍니다. 모든 것이 생생히 살아나는 거예요. 무엇을 중심삼고 살아나느냐? 정을 중심삼고 살아나는 거예요. 이게 귀한 겁니다. 지식을 중심삼고 살아나는 것이 아니예요. 자기의 무슨 뭐 어떤 경험을 중심삼고 살아나는 거예요. 정서적인 면에 있어서 강하게 느껴질 때 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서적인 관계에서 맺어진 모든 사건이나 인연은 잊을 수 없다는 거예요. 안 그래요?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지요? 「예」

그렇기 때문에 고향에 가면 옛날의 정서적인 그 시절을 다시 회상하는 거예요. '아! 내가 지금은 늙었지마는 옛날에는 이랬구만. 철이 없을 때에는 이렇게 지냈고, 결혼을 해서 아기의 엄마가 되었고 이제는 할머니가 됐구만' 하는 거예요. 고향에 돌아올 때는 그 모든 것이 그리워집니다. 그렇게 고향에 돌아와 손자를 보게 될 때 그 큰 손자가 자기를 대신한 것 같은, 즉 '과거에 당신 이랬소' 하는 것처럼 느껴지게 된다는 거예요. 젊은이들을 보게 되면, 혹은 둘이 좋아하는 부부를 보게 되면 '아, 옛날에 우리가 좋아 지내던 것을 잊어버리지 말라고 보여 주는구나' 이렇게 생각하게 된다구요. 옛날의 모든 것을 대할 수 있다는 거예요. 이것이 맞춰질 때는 주체적인, 정서적인 배경이 딱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환경을 정서적으로 수습할 수 있는 이런 인연이 나를 중심삼고 가정 전체, 부락 전체와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그 고향을 잊을 수 없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성공을 해서 고향에 돌아오게 된다면 금의환향이라는 말을 하잖아요? 고향을 멀리 떠나간 사람이 성공을 하여 금의환향해야 거기에는 아무도 없다는 것이지요. 안 그래요? 10년, 20년, 30년이 지나 50이 넘고 60이 넘어 떡 성공해 가지고 집에 돌아와 봐야 어머니 아버지 다 떠났고 형님 뭐 누나 다 떠났고, 거기에 지금 그들의 손자만 남아 있더라도 금의환향해 가지고 그 모든 것을 고향 땅에 심어 놓고 싶다는 거예요. 안 그래요? 선생님 같은 사람도 그렇다구요. 오랫동안 나가서 복잡하게 싸우고, 뭐 어떻고 어떻고 어떻고 한 사연은 많지만 그 사연은 전부 다 흘러간다는 거예요.

그래, 조국이 좋다는 것이 왜냐? 선생님이 조국을 찾아오게 되면…. 김포 공항에 내리자마자 어디로 가고 싶으냐? 여기가 조국이지만 김포 공항을 찾아온 것이 아니라구요. 그럼 어디로 찾아가요? 한국의 중심지가 서울이라면 서울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서울을 지나, 중심지를 지나, 저 시골 평안북도 정주 산과 바닷가에 있는 집, 그곳을 찾아가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마련이예요. 그건 왜? 왜 그래요? 출발을 거기에서 했으니 거기에 가서 만나야 된다는 거예요. 돌아간다는 거예요. 무엇을 중심삼고? 정서적인 기준을 중심삼고 돌아간다는 거예요. 이러한 사실을 미루어 볼 때 인간이 그러니 하나님도 마찬가지가 아니겠느냐? 하나님도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그러면 하나님은 정서적인 그 느낌을 어디에서 느낄 수 있느냐? 여러분 혼자 마음과 몸을 중심삼고 이렇게 있다 할 때 정서적인 것을 느껴요? 혼자는 못 느낀다구요. 그걸 느끼는 데는 새 새끼라도 보고, 혹은 꽃이라도 보고 '아름답다!'라고 해야지요. 그 꽃 속에 꿀이라도 있어 가지고 벌이나 나비가 와서 그 꿀을 빨아먹는 것을 볼 때 거기에 정서가 미쳐진다구요. 꽃만 봐 가지고는 재미가 하나도 없어요. 그 상대적인 무엇이 있어서 작동이 벌어져야 비로소 정서가 유발되는 거예요. 하나님도 그와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혼자는 정서라는 것이 발동을 안 해요. 움직이지 않아요. 그건 반드시 상대와 관계를 맺어야 발동을 하는 거예요.

그 정서적인 것이 관계맺는 것은 이것만이 아니예요. 반드시 어떠한 중심, 만약에 이렇게 맺어지면 직선이 되는 중앙선이 이렇게 되어 가지고 저렇게 표준삼고 여기에 연결될 수 있는 관계, 고향이라든가 고향의 부모라든가…. 그렇지 않아요? 그것은 하나님도 마찬가지라구요.

하나님이 그리워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겠느냐? 오늘날 기성교회에서 하나님은 거룩한 창조주이고 우리는 속된 피조물이라고 하지만, 하나님이 사랑하고 싶고 하나님이 관계맺고 싶은 것이 무엇이겠어요? 원숭이? 원숭이가 사람으로 되었다고 그러는데 원숭이와 사람과는 40여 가지나 내용이 틀리다구요. 그런데도 사람이 원숭이를 닮았다고 그래요. 원숭이가 사람의 조상이다 그럽니다. 여러분도 그래요? 너희 할아버지는 원숭이같이 생겼다 하면 듣기 좋아요? (웃음) 저기 저 녀석 생기기는 잘생겼는데, 빨리 뛰기는 잘 뛰는데 원숭이같이 잘 뛴다 그러면…. 내가 원숭이 띠예요. 나 원숭이 띠라고 해도 원숭이 닮았다 하면 기분 좋지 않다구요. (웃음)

자, 이걸 볼 때 무엇을 닮았느냐 하면, 싫든 좋든 '저 녀석은 자기 아버지, 어머니를 닮았어' 이렇게 말하면 기분 나빠하는 사람이 없다구요. 아무리 강도 새끼라도 자기 아버지, 어머니 닮았다 하면…. 자기 아버지 어머니 닮은 것이 자연 이치지요. 다른 사람 닮았다 하면 싫어하는 거라구요. 안 그래요?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닮은 소성을 비례적으로 얼마만큼 소유하고 있으면 그 기준에 비례하여 감정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