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화신학교를 중심한 대학 건립 계획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188권 PDF전문보기

성화신학교를 중심한 대학 건립 계획

「그런데, 아버님, 참 이해가 안 되는 게 하나 있습니다. 성화신학교에 제가 가 봤는데요, 그렇게 장중하고 예술적이고 무게 있고 품위 있는 건물을 왜 그 자리에 앉히게 하셨는지 저는 그걸 아직도…. 그 위치가 어딘가 모르게…」 이제 한 5년만 두고 보면 알지. 5년만 둬두고 보면…. 지금은 몰라도 괜찮아. (웃음)

그 뒷산을 다 들어내야 된다구요. 「그런데 그거 들어내는 돈 가지고 말입니다, 그 몇 배의 좋은 땅을…」 그거 들어내는 건 학생들이 하루에 점심 먹고 세 시간씩만 구루마(くるま)로 하게 된다면 순식간에 다 들어낼 텐데…. 「그게 리어카로 들어낼 물건이 못 됩니다」 그건 말이야, 다이너마이트, 소리 안 내고 풍 깨는 것이 얼마든지 있다구. 그렇게 해 가지고 리어카로 했다고 해야 역사가 남아, 이 사람아.

우리 청평수련소 그거 임도순이가 기동대 몇 명 해 가지고…. 그때 몇 명이었나? 「28명이었습니다」 그때 있었나? 「예」 그래 가지고 산을 헐어 집 짓지 않았어? 「예, 12일 만에 지었습니다」 12일이 뭐야? 집 짓는 건 일주일이었다구. 일주일 만에 지었지. 「나중에 정리작업까지 해 가지고…」 「뭐 저는 참 아직도 아버님, 참 도대체 이해가 안 갑니다」 (웃음) 뭐? 임자가 이해하면 하나님이 어떻게 하나님 노릇 해먹겠나? (웃음) 이해가 안 되기 때문에 하나님 노릇 해먹지. 안 그래?

내가 요전에도 애기했다구요. 30년, 40년 있어도 선생님을 모른다고 말이예요. 그거 왜? 내가 날 모르는데? (웃음) 누가 알아, 누가? 거 알 수 없다구요. 상부의 명령대로 사는 사람들이 자기가 알 게 뭐예요? 지령만 떨어지면 행동해야 되는 건데. 거 심각한 말이라구요.

「거 성화신학교 가 볼 때마다 아무리 생각해도 답을 얻지 못하고 돌아왔습니다」 「최악의 조건에서 최선의 문화가 창조되니 뭐…」 거기를 근거로 해서…. 지금 만들어지고 있는 땅만 해도 비탈길이어서 초가삼간도 못 짓게 될 땅이었어요. 거기에 집터를 닦고 저만큼 지어 놨다는 것만 해도 기적이라구요.

「그런데 정면에 바로 도로가 있구요, 들어앉은 집은 남향도 아니고 동북간입니다. 그런데다가 앞이 탁 가로막혀 있고…. 앞이라도 툭 트이고 뒤는 양쪽에 이렇게 날개를 받치고 있는 이런 자리도 아니고…」 거 울타리 전부 다 그건 생각 안 했나? 앞 동네랑…. 「앞 동네가 다 울타리라구요」 「울타리인데 울타리가 너무 가까이 막아져 있으니까 앞이 좀…」 앞 동네를 전부 다 우리 땅이라고 생각하고 학교를 삥 둘러 짓는다고 생각해 보라구. 「그래도 골짝이 좀 좁은 것 같아요. 아버님 스케일로 봐서는 골짝이 좀 좁은 것 같아요」 아, 골짝을 우회해 가지고 산 너머도 다 땅 사서 해야지요.

「전 답을 못 구하고 왔습니다」 「그 뒤에 넘어가면 들판이예요, 완전 들판」 「1994년도에 가 봐요」 「그런데 문교부 직원들이 와서 그런다는데요? 그 학교를 다 둘러보고 난 다음에 깜짝 놀래 가지고 이러한 악조건에다가 아버님께서 그렇게 큰 학교를 지은 걸 보니까 이거 좁은 입지 조건에서 아버님께서 크게 하신 그와 같은 그 내용은 뭐 틀림없이…. 아주 뭐 120퍼센트…」 이제는 지어 놓고 학생들 안 내놓나 보라구요. 이놈의 자식들. 한번 긁어대는 거예요. 누군 와서 무슨 애기 했고, 누군 와서 무슨 얘기를 했다는 게 다 기록이 있거든? 이걸 일지에 전부 다 해 가지고 신문에 써대는 거예요.

자기들이, 문교부에서 지금 문제가 생겼다구요. 학교 시설이 부족해 가지고 학교가 뭐 어떻고 뭐 3류학교 뭐 어떻고 하는 판인데 아시아에 없는 학교를 딱 지었는데 허가도 안 내주고 떡 이러고 있으니 그 꼴이 뭐야? 외국 기자들 와 가지고는, 워싱턴 타임즈로부터 세계일보에서 쓱 한번 순회해 가지고 긁는 거예요. 쓰는 거예요. 대사관에 아주 폭탄이 떨어지게끔 전부 다 하는 거예요. 「이제 앞으로 천안 시민들이 전부 다 연판장을 써 가지고 문교부에다 갖다 주면 때려 가지고…」 (녹음이 잠시 끊김)

그 집 한 채가 180억이 들었어요, 180억. 180억이면 돈이 얼마예요? 단국대학 한 채가 10억도 안 된다구요. 「모서리 돌은 하나가 3미터짜리가 있습니다」 어디가? 「그 돌이 말입니다」 그렇지. 3미터짜리야? 하나에 50톤 돼요, 기둥 하나에. 「뭐 엄청난 작업입니다, 그게. 건축을 좀 아는 사람들이 보면 그건 정말 대작입니다. 그런 집이 명당에 좀 앉았으면 하는 아쉬움을…」 그게 얼마나 명당 자리인지 알아, 이 사람아? (웃음)

「이젠 그 앞에 가 가지고 학교를 쳐다보면 목이 아파 가지고…. 그래서 우리가 그랬습니다. 저쪽 앞 산에다가 전망대를 하나 만들어 가지고 거기서 관망하면 참 좋겠다구요」 좋지. 앞으로 거기 길 닦아 가지고 그 아래에 올림픽 스타디움 모양으로 떡 운동장 만들고, 건너편에 농원 있잖아? 「예」 그 농원을 이쪽으로 다 사고 있다구, 지금. 쭉 해서 쓱 상대로 동서남북으로 보고 저쪽 뒷산 터 버려 가지고 전부 다….

그러면 저 안양서부터 다 보이는 거예요. 그리스의 무슨 신전인가? 신전 보이듯이 말이예요. 「파르테논 신전…」 그 신전같이 그렇게 보이게 하는 거예요. 「온양에도 땅을 또 사셨지 않습니까?」 그 학교 몇천 명, 몇만 명만 하겠나? 몇십만 명의 학교를 만들어야지. (웃음) 생각해 보라구요. 앞으로 한 나라에서 천 명씩만 온다고 생각해 보라구요. 「그래서 제가 말씀드린 거 아닙니까? 아버님 스케일에 비해서 골짜기가 너무 좁은 것 같다구요」 그러니까 단과대학, 신학대학의 한 블록이 있고, 또 법과대학의 한 블록, 이렇게 짓는 거지.

「캠퍼스가 좀 같이 있게끔 해서…」 앞으로 천안시까지 철수할지 알아? 「천안시가 있는데요, 뒤에는…」 아, 천안시를 철수시킬지 알아? (웃음) 왜 웃어요? 천안이 뭐예요? 천안이 `천안(天安)' 아니예요? 「예, 그렇습니다」 「하늘이…」 하늘을 모시려면, 그게 예루살렘 된다는 말인데 말이예요, 천안을 옮겨야지 그거 가지고 뭐 예루살렘 되겠나요? 거 우리 애들이 들어가 가지고는 뭐 기분이 얼마나 좋겠노? 세계에서 제일가는 학교에서 지금 공부하고 있다는 게…. 여러분도 그렇게 공부시킬 거라구요.

내가 요전번에 `이놈의 자식들, 성화신학교 안 보내고 딴 데 보낸 이놈의 간나 자식들 두고 보자!' 그랬어요. 이번에 딴 데 가게 한 교역자 자식들은 내가 이제 장학금도 전부 철회시켜 버리려고 해요. 선생님이 이렇게 정성들이면 다 하늘의 뜻이예요. 앞으로 성화신학 나온 사람이 얼마나 유명해질지 알아요? 뭐 서울대학, 그 서울대학은 여기 변소간도 못 간다구요.

축복가정이란 자들! 김영휘 딸은 없나? 「벌써 3년 전에…」 성화신학 짓기 전에? 「예, 그때는 없었습니다」 핑계도 잘한다. 「아버님, 그렇습니다. 지금 고등학교에 가면요, 인문계 이과계로 갈라지거든요. 자연계는 성화신학교는 못 갑니다. 여긴 인문계밖에 못 갑니다. (김영휘 회장)」 못 가긴 왜 못 가? 자기가 가고프면 가지.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시험문제가 다릅니다」 「고등학교 때 딱 정해집니다」

인문계통은 자연계통에 못 가? 자기가 원하는데도 안 되나? 「안 됩니다. 그게 다릅니다」 그 말은 뭐냐면 대학 나온 사람은 신학대학 못 간다는 얘기 아니야? 「아닙니다. 대학 나와서는 갈 수 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해 가지고 대학 갈 때입니다」 아, 글쎄 신학과는 갈 수 있잖아? 가면 가는 거지 뭐. 「대학교 나와 가지고 가는 건 괜찮은데요, 대학 들어갈 때 인문계통하고 이과계통하고 시험이 다르게 나옵니다. 시험문제가 다르게 나옵니다. (김영휘 회장)」 「이미 지원을 합니다」 「신학교는 인문계통이거든요」

거 학교 다 가 봤나? 「예」 요즘은 돌 작업은 다 끝났을 거라. 「거의 끝났습니다」 거 가 보니 근사하지? 「근사합니다, 아버님. 그것 참…. 거 뭣도 모르고 봐서 그렇지요, 건축을 좀 아는 사람이 보면 정말 대작입니다. 뭐 세계에서도 대학 건물을 그렇게 짓는 건 없을 것입니다」 그거 세 번씩 헐었어요. 때려부수고. 그래서 유명하다구요.

온양에 지금 땅 사 놓은 데도 자리가 좋지요. 「거기가 좋습니다. 거기가 오히려 지금보다 뭐 보면 경치가 참 좋습니다. 그런 데를 사 가지고 이런 건물이 거기에 앉았으면 하는 그런 아쉬움이 말입니다…」 여기는 여기대로 괜찮다구. 몰라서 그렇지. 임자 생각하는 것하고 내 생각하고는 다르지.

「거기가 삼용동이어서요, 굉장히 자리가 좋아요. 다리로 연결시켜 가지고 탕정면하고 연결되기 때문에…. (송영석 전북교구장)」 「신과대학으로선 참 위치가 괜찮은 것 같습니다. 신과대학은…」 「거기에 성화신학이 들어섰기 때문에 탕정면에 땅을 산 거거든요」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