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판 노동으로 친구의 수업료를 대납해 준 일화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328권 PDF전문보기

노동판 노동으로 친구의 수업료를 대납해 준 일화

학생 시절에 친구들이 학교의 수업료를 못 내는 경우가 생기면 친구들을 데리고 노동판에 가서 노동을 해 가지고 수업료를 벌어 주기도 했습니다. 그 당시에 식권이라고 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한 끼에 한 장씩을 내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의 선생님은 한 끼에 다섯 끼 분량의 밥을 먹어도 배가 안 찰 때였다구요. 친구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식권이 모자라게 되기 때문에 선생님을 찾아와서 먹여 달라고 하는 거예요. 선생님도 며칠이 안 가서 식권이 다 날아가 버리기 때문에 그럴 때는 노동판으로 가자고 하는 것입니다.

뭐 선생님이 노동판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학비가 없는 친구가 있으면 다 같이 벌어서 학비를 대 주기도 한 거예요. 그 당시에 석탄을 운반하던 배가 있었는데, 한 척에 가득 실으면 120톤까지 실었습니다. 그런 배가 석탄을 싣고 오면, 그것을 내리는 작업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 척에 얼마라고 정해 가지고 일을 하는 거라구요.

그때에 선생님과 삼총사 친구들이 있었는데, 그 노동판의 아저씨가 학생들이라고 해 가지고 뒤에서 돈을 떼먹고 착취하던 버릇을 고쳐 주었습니다. 그 120톤을 세 명이 나누어서 혼자서 40톤씩을 하는 것은 문제없었습니다. 매일 그렇게 해서 유명해졌습니다. 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타인을 위해서 사는 것이 애국이고, 그렇게 사는 것이 앞으로 다른 사람들을 지도할 수 있는 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어디든지 가서 노동을 했습니다. 선생님은 노동을 하려고 안 찾아간 데가 없습니다.

선생님은 글씨도 잘 쓰지요? 그래서 장관의 비서도 했습니다. 그래서 일본의 실정을 파헤쳐서 도대체 일본이 어떤 나라인가를 밝히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 대학 총장으로부터 선생들, 그리고 회사의 배후에서 되어지는 모든 것들을 연구했습니다. 그래서 학생 때부터 ‘일본이 이래서는 안 되겠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무엇이든지 모르면 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노동판에 가더라도 대번에 돈을 벌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농촌에 가더라도 못 하는 일이 없다구요.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습니다. 모심기 같은 것도 빠르다구요. 다른 사람의 세 배는 빠르기 때문에 어디에 가든지 환영을 받았습니다.

언젠가는 일본에서 선생님이 친구들과 후지산에 등산하기로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등산을 가지 않고, 그 다음 날에 한국으로 돌아오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동경역으로 나갔는데, 마침 그때에 호주머니에 돈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둘러보니까 귀부인이 서 있는 거라구요. 그래서 선생님이 다가가서 ‘나는 이런 사람으로서 지금 한국으로 돌아가려고 하는데 돈이 없습니다. 좀 빌려주세요.’ 했더니, 그 부인이 빌려주겠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한국으로 돌아와 가지고 그 돈의 세 배 이상을 돌려보내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나는 이렇게 많은 돈을 받을 수 없으니까 돌려주려거든 빌린 것 만큼만 돌려달라.’ 하면서 되돌려 보냈더라구요.

그런데 선생님이 그렇게 돈을 빌려서 배타는 데까지 와 가지고 배를 타려고 하니까 발이 안 움직이는 거예요, 발이. 만약에 그 배를 탔더라면, 그 배와 함께 바다 밑으로 침몰해 버렸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그 배를 타고 간다고 선생님의 집에는 전보를 쳐 놓았기 때문에 부모님과 친구들이 마중을 나왔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이 안 나타난 거예요. 그래서 틀림없이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엄청난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어떤 어머니든지 어머니는 자기의 죽은 아들딸을 살릴 수 있으면 백 번을 죽더라도 괜찮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말이에요, 선생님의 어머니도 울면서 정주에서 부산까지 달려왔다는 것입니다. 그처럼 선생님의 생애는 수수께끼와 같은 파란만장한 우여곡절을 겪어 나온 역사였습니다. 그런 것을 전부 다 책으로 써 놓으면 여러분은 큰일일 거라구요. 차라리, 그런 것은 여러분이 모르는 것이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