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없는 지식의 세계는 분과적인 세계로 끝장나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139권 PDF전문보기

사랑이 없는 지식의 세계는 분과적인 세계로 끝장나

거기에는 지·정·의도 마찬가지입니다. 지(知)가 뭐냐? 안다는 것이 뭐예요? 정(情) 밑에 안다는 것은 사랑하는 거예요. 아는 것이 제일 재미가 있다는 것은 거기에 정적 의미가 있다는 거라구요. 모든 세계의 상관관계를 알아 가면서 작용하는 것은, 사랑을 그리워하는 모든 것은 정서적인, 심정적인 자극을 받아서 느끼기 때문에 그것을 계속하는 것입니다. 사랑의 마음이 그 밑창에서부터…. 사랑을 중심삼은 그 모든 것이 불변의 목표를 지향하는 환경에서 관계를 맺어 가지고, 거기에 지식이 첨부되어 미래의 환경을 넓혀 주는 결과에 의해서….

그 동기는 전부 다 사랑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오늘날 서양철학의 실수가 뭐냐 하면 지식만을 세운 것입니다. 지식의 세계는 분별밖에 없다는 거예요, 나중에는. 분과적인 세계로 끝장 다 보는 것입니다. 지식을 중심삼은 세계, 오늘날 철학사조의 인식론을 중심삼았다는 것은 이 지식세계를 수습할 도리가 없게 되었다는 거예요. 지식은 알면 알수록 세분화되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누가 더 세밀히, 누가 더 깊게…. 높다는 관념은 생각 안 해요. 자꾸 파고들어가다 보니 전부 다 세분화되는 거예요. 그러니 지식을 중심삼은 서양문명의 최후의 말단세계는 어디에 가서 부딪치느냐? 지식을 중심삼고 분립되고 고립된 상태에서 자아만의 행복을 누릴 때, 자탄하는 결과를 통해 파괴밖에 가져올 수 없다 이겁니다.

정서는 뭐예요? 사랑은 뭐예요? 분립이 아닙니다. 사랑의 마음은 전부 다 하나되는 겁니다. 분립이 아닌 포괄적입니다. 포괄적인 동시에 포용적입니다. 포용적 하게 되면 포괄하고 이름이 비슷한 것 같지만, 안팎에 포용적인 관계를 맺어 가지고 순환작용을 하는 것입니다. 포괄, 포용적입니다. 그다음에는 상응적입니다.

상응적이란 언제나 할아버지 절대주의가 아닙니다. 손자 절대주의가 아닙니다. 할아버지도 손자가 되고 손자도 할아버지가 되는 겁니다. 상응작용이란 것이 그런 것입니다. 그것만이 전체 분야에 적응시킬 수 있는 하나의 주체성으로 혹은 환경권으로 만들 수 있게 될 때에, 그 주체성과 환경에 대해서 반대하지 않고 그냥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입니다. 그 환경과 주체성이 뭐냐? 지식도 될 수 없고 권력도 될 수 없어요. 포용될 수 있는 것은 사랑입니다.

배고플 때에 어머니의 품에 품기면, 배고픈 걸 잊고 그 자리에서 잠을 잘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 알아요? 「예」 무엇이 귀한 것이냐? 다른 게 귀한 것이 아니예요. 귀한 사랑이예요, 사랑. 알겠어요? 「예」 암만 황금덩이가 쌓여 있다 하더라도…. 세상에 그래요. 자기의 사랑하는 사람이나 아내가 죽어 가는데 보석함에 든 다이아몬드를 빼서 팔아 가지고 병원비로 절대 만들 수 없다 하는 것이 사랑이라더라 하면 어떨까? 그런 사랑이 필요해요? 「아닙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이 있다더라, 이래야지요.

그럼 이 세상 비밀 보따리 가운데 제일 좋은 것, 제일 귀하다고 하는 것까지 품기도록 해서, 그것을 감동시켜 안 할 수 없게끔 자동적으로 동원하여…. 그것까지 끄집어 내어 절대적인 공의 자리에 돌아가더라도 이것을 할 수 있게 하는 능력은 뭐냐? 돈을 가지고도 안 되고, 지식을 가지고도 안 되고, 권력을 가지고도 안 됩니다. 그것은 사랑을 가지고서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진짜 사랑하는 아내가 사지에 들어 있으면 암만 욕심장이라도, 무엇이라고 할까요, 세상에서 제일 나쁜 명사인 호랑이 같은 남편, 도둑놈 같은 남편, 깡패 같은 남편, 뭐뭐 작은 데서부터 큰 것까지 제일 나쁜 것들만 갖다 붙인 사람도 사랑하는 그 아내가 죽을 자리에 들어가게 되면, 아무리 세상에서 제일 나쁜 남편도 저버리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보태 주려고 하는 힘이 나오는것입니다. 이걸 막을 수 있는 어떠한 존재도 없다는 것입니다. 사랑은 그러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