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해서 희생하더라도 이의를 안 갖는 것이 참부모 사상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324권 PDF전문보기

위해서 희생하더라도 이의를 안 갖는 것이 참부모 사상

참부모가 되어야 돼요. 가정을 위해서 십자가를 질 때는 깨끗이 져야 돼요. 가정이 죽겠다고 하면 십자가를 져야 된다는 거예요. 그 과정을 거쳐야 돼요. 가정적 메시아, 그 다음엔 종족적 메시아지요? 가정적 메시아라는 말이 통일교회에 있어요, 없어요? 메시아, 참부모가 되기 위해서는 가정을 위해서 천년 만년 희생하더라도 이의가 없다고 해야 돼요. 종족을 대신해서 십자가를 지더라도, 몇 번 죽더라도 이의가 없다고 해야 돼요. 그게 참부모 사상이에요. 하나님 사상이라구요. 대가리를 저으면서 뭐 변명하고 이렇게 할 수가 없어요.

황선조!「예.」이래라 저래라 할 때 눈물을 흘리던 것이 생각나?「예.」그게 다 필요해. 그런 과정을 몇 번씩 거쳐야 될 거라구. ‘나는 동쪽에 가겠소.’ 해서 동쪽에만 있으면 망해요. 동쪽에서 서쪽으로 가려면, 동에서 서로 가려니 중앙에 와서 부딪쳐요. ‘나는 서쪽이니 내게 동쪽만 절대 필요합니다.’ 하고 가면 하나 안 돼요. 부딪쳐요.

그래서 남북이 있어야 돼요. 남북이 들어와야 돌아가는 거예요. 원심력, 구심력이 있잖아요? 구심력이 있어야 돼요. 원심력만 중심삼고 돌면 깨져 나가요. 남북만 있으면 깨져 나가고 부딪쳐요. 부딪칠 것 아니에요? 동서가 있기 때문에 도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아이구, 나는 내 집만 필요하다!’ 하면 안 돼요. 내 집만 중심삼고는 안 되는 거예요. 주변이 필요해요. 환경적 여건, 횡이 필요해요. 종횡의 상하 좌우, 하나, 둘, 셋, 넷을 전부 연결시키는 중심이기 때문에 이게 중심이라구요.

그래서 동쪽 사람이 진짜 서쪽으로 가려면 북쪽을 거쳐서 서쪽으로 가든가, 남쪽을 거쳐 가지고 서쪽으로 가야 돼요. 그래도 반 쪼가리밖에 안 돼요. 남자와 여자가 하나 못 된다 이거예요. 여자 남자는 남쪽에도 가야 되고 북쪽에도 가야 돼요. 알겠어요? 가정의 부부가 그거예요. 극이라구요. 극인데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어요. 환경 여건, 가정 환경, 전통 환경을 따라서 가야 되는 거예요. 가정에 법이 있다구요. 그걸 부정할 수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동에 있으면 남으로 가야 서쪽으로 가요. 북으로 가야 서쪽 가요. 아래위로 가는 두 길밖에 없는 거예요. 두 길을 가야만 비로소 왕복하는 거예요. 자기들이 정면으로 이마를 맞대고 완성하겠다고 하면 완성 못 돼요. 그건 반드시 파탄이 벌어진다구요. 동으로, 서로 가기 위해서는 남쪽을 붙들든가 북쪽을 붙들어야 돼요. 이쪽이면 이쪽으로 가게 되어 있지만 놓치면 이쪽으로 돌아가고 이렇게 조정해서 가야 둘이 다 사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 같은 사람은 어디 가든지 높은 데 가는 거예요. 선생님은 어디 가더라도 찾기 쉬워요. 꼭대기 아니면 골짜기에 가 있어요. 극이 남북으로 되어 있으면 동 아니면 서에 가 있다는 거예요. 그 쪽으로 간다는 거예요. 그 쪽으로 가야 상충이 안 벌어져요. 돌아가는 길을 크게 하면 오래 걸리는 것이고, 짧게 하면 한 시간에도 가는 거예요. 십년 천년 몇천년이 되었으니 우주 역사를 포괄하고 남을 수 있는 그 일을 찾아간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하나님이 참는 마음을 가지고 지금까지 나왔지, 성난 마음을 가지고 나오지 않았어요.

하나님의 얼굴을 찍었으면 그 사진이 어땠을까요? 아담 해와가 죄 지을 때 그 얼굴이 어땠겠어요? 외적의 그 모양의 얼굴은 있지만 내적 모양은 슬픈 얼굴이 되어 있어요. 내적 슬픈 얼굴을 누가 씻어 주어야 되느냐? 아담 해와가 씻어 줘야 돼요. 하나님은 못 씻어 줘요. 그러니까 슬픈 얼굴보다도 효자?충신?열녀의 도리를 갖추어서 씻어 줘야 돼요. 그러면 마음의 상에, 몸의 상에 ‘네가 아담보다도 낫다.’ 하는 거예요.

내가 아담보다 못한가요? 어떨 것 같아요? 창조했을 때 아담보다 낫겠어요, 못하겠어요?「낫습니다.」어떻게 나아요? 타락을 안 했다는 거예요. 아무리 성장과정에서 타락할 수 있어도, 타락을 할 수 없는 거예요. 왜? 다 아니까. 아담은 몰랐어요. 그러니 아담 해와보다도 낫다고 생각한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내가 대표적으로 모시고, 대표적으로 살고, 대표적으로 일하자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거 다 이론적이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