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통일을 위해 생명을 걸고 나아가라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329권 PDF전문보기

남북통일을 위해 생명을 걸고 나아가라

「……평양에서 왔습니다. 아버님이 27세 때 저는 30세를 맞았습니다.」

발을 너무 갖다 놓았구만. 요렇게 해놓아야지, 요렇게. 자, 해요. 27세, 30세! 그때 20대 때는 내가 미남자라고 소문났을 때라구요.

「부친이 평양교회 장로로 있었는데 저는 평양 숭인여학교를 졸업하고 스물 두 살에 김원필 씨의 어머니가 저를 중신을 했습니다. 원필 씨 삼촌하고요. 그래서 졸업을 하고 원필이 삼촌한테 출가를 했어요. 아기를 아들 둘하고 딸 하나를 낳았는데 저희….」(이후 간증 계속)

「……학식도 많고 아는 분들도 많으니까 그분을 시켜야 된다고 해도 저drp 명령을 하시니까 제가 감당을 해야겠는데 ‘하나님께서 저를 많이 좀 가르쳐 주세요.’ 하고 자꾸 기도했더니 자꾸 꿈으로 가르쳐 줘요. 누구네 집에 쌀이 떨어졌다고 알았어요. 병원에 가야겠는데 돈 없어서 병원에 못 간다고 그래요. 그래서 제가 쌀 떨어졌다는 사람은 꼭 쌀 가지고 그 집에 찾아가면 진짜 쌀이 떨어졌어요. 그 다음에는 지금은 여유가 있지만 그때는 왜 이렇게 가난했는지 몰라요. 병원에 못 가는 식구가 많았어요. 찾아가면 병원에 못 가고 앓고 드러누웠거든요.

거기에 돈을 가지고 갔는데, 자꾸 하나님께서 많이 가르쳐 주셔서 부인회 회장을 했지 제 힘으로는 못 했어요. 다 가르쳐 주셔서 했으니까. 여러분도 이제 남북통일을 하려면 생명을 걸고 나아가지 않으면 남북통일 하는 데 지장이 될지 모릅니다. 우리가 지금 생명을 걸고 나가야 남북통일 하는 데 도움이 돼요.」

생명 걸고 나가야! 한번 해봐요. 생명을 걸고 나아가야!「생명을 걸고 나아가야,」남북통일이 된다!「남북통일이 된다!」맞는 말이에요, 이게. 생명을 그거 내주었으면 좋겠어요? 집에 그냥 그대로 보내 주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거라구요. 뭐 조국광복이니 나하고 무슨 관계가 있나 하면 천년 만년 후손 앞에 한이 되는 거예요. 저나라에 가면 재까닥 걸려요.

그래, 틀림없이 방금 김인주 말처럼 생명을 걸고 내쫓아야 되겠어요, 가만가만 집으로 돌려보내야 되겠어요?「내쫓아야 됩니다.」내가 귀가 먹었다!「내쫓아야 됩니다.」누구를?「저희들을요.」선생님을?「저희들이요.」와, 그거 이변이 벌어졌구만. 정말이에요?「예.」그러기를 바라는 사람은 손 들어 보라구요. 아이구, 아이구, 손이 그렇게 무거운고? 다시 해요.

내리는 데는 자기 마음대로 내리라구요. 손 들어요. 이렇게 한번 쳐 보라구요. 이게 얼마나 아름다운지 몰라요. 김인주가 그렇게 생명을 걸고 싸우던 역사시대의 모든 말한 것을 들었는데, 거기에 접붙여 가지고 더 커야 되겠어요, 내려가야 되겠어요? 올라가야 된다구요. 알겠어요?「예.」예쁘장한 아가씨, 언니들이여, 알지요? 자, 계속하라구.

「감사합니다. 여러분, 저희들이 뭐 이제 사람이 났다가 그냥 한 번 죽지 두 번 죽겠어요?」

그래, 그렇지. (웃으심) 두 번 죽어요, 죽어. 첫 번 죽는 것은 지옥 갔다가 두 번 죽는 것은 천당 가서….

「이번에 이렇게 입적까지 해주시니까 우리는 우리 영혼이 아버님 가정에 다 들어갔어요. 그러니까 우리는 죽어도 하나 걱정할 것이 없어요. 하니까 이제 생명 걸고 우리 남북통일 시킵시다. 어떻게 해서라도 여러분이….」(박수)「그만 하지요.」그만두게?「예.」할 말이 많을 터인데?「무슨 말을 더 할까요?」으음, 인사 안 해도 괜찮아. 나보다 세 살 위인데, 그렇게 됐구만. 나이에는 장사가 없다는 말이 맞아요.「예, 여든 세 살이신데 정말로 귀한 말씀을 주셨습니다. 끝으로 다시 한 번 박수로 격려해 드리지요. 감사합니다. (윤정로)」

이 총장, 나와요. 여자로 태어나 가지고 한국 통일교회에 들어와서 이화대학 다니면서 꿈이 어떠했다는 것, 이화대학 나와 가지고 선문대 교수 하면서 지냈던 이야기, 총장이 돼 가지고 지냈던 이야기, 총장이 돼 보니 어떻다는 이야기, 앞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이야기 한번 해봐. 다들 듣고 싶어할 거라구. 자기는 뭐 나 안 따라와도 괜찮아.

「아버님, 진생엎을 한 천 개 가져왔습니다, 124가정들이요. (윤정로)」나는 안 먹어도 괜찮아. 그런 것 다 안 먹어도 괜찮아. 진생엎 그것에 정신 팔려 가지고 말이 들리나? 총장님의 말씀을 잘 들어야지. 「예, 박수로 모시겠습니다. 이 총장님!」

통일교회에서 여자 총장 하면 한국에서도 유명한 거예요. 종합대학총장! 유명한 총장님이 말씀하시는데 유명하게 들어 모셔야지. 듣고 모셔야 될 것 아니에요? 그래요, 안 그래요?「그렇습니다.」

어머니 이야기부터 하는 것이 좋아, 어머니. 어머니가 얼마나 통일교회 열심히 했던가, 공자님이 사위가 됐다고 영계에서 좋아하던 그런 이야기 해도 괜찮아.

「제가 1956년에 들어왔으니까 지금 44년 됐습니다. 저는 성화학생회 제2회 출신입니다.」(박수) (이후 이경준 총장의 간증과 노래)

몇 시예요? 언제 열두 시가 됐나? 열두 시가 되는 줄 모르고 내가 졸았어요. 자, 이제는 잘 시간이 됐는데 아침에 나는 일찍 떠나게 되면, 내일 모레는 수택리로 나올 텐데 수택리에 나오게 되면 거기서 못 만날 텐데….

어머님은 내일 모레면 이제 뉴욕 가야 돼요. 뉴욕에 갔다가 와야 된다구요. 그래서 내일 이제 들어가야 돼요. 그렇기 때문에 데리고 나왔다구요. 그렇게 알고, 열심히 끝마쳐요. 그리고 마치지 못한 사람들은 다음에 시간을 내서 거기서 자기들이 특별 프로그램을 짜서 만들어 주어야 되겠다구.「예.」(경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