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이상세계를 이루기 위해 사랑의 상대로 인간을 지었다
하나님이 혼자 있으면 외로워요. 혼자 있으면 외롭다는 거예요. 암만 돈을 갖고 지식을 갖고 권력을 갖고 있더라도 혼자 있으면 외로워요. 그것 다 버리더라도 사랑의 상대, 사랑의 환경권을 추구한다는 거예요. 그것이 필요하기 때문에 하나님도 그 상대권을 만들려니 성상적 상대권, 형상적 상대권을 만나 가지고, 하나돼 있던 성상과 형상 되는 것이 갈라져 가지고, 실체를 표시하고 실체를 따라서 하나되어 상대적 성상 형상의 주체 대상의 실체권을 만들려고 하는 것이 아담 해와의 창조라는 거예요.
아담 해와를 창조한 목적이 뭐냐? 아들딸을 위한 것이 아니요, 아들딸을 사랑할 수 있고, 아들딸을 사랑해 가지고, 하나님이 원하는 사랑의 가정으로부터 사랑의 종족, 사랑의 이상세계인 지상천국, 유토피아를 이루는 거예요. 그런 세계를 바라는 소원의 출발이 가정 출발이에요. 그렇다는 거예요.
그 가정을 대해 가지고 하나님이 뭘 하자는 거예요? 어떻게 사랑하자는 거예요? 자기가 옛날에 사랑할 때 사랑의 주체요, 생명의 주체요, 혈통의 주체였지만, 이것 둘이 화합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 손도 둘이 하나되지 않으면 소리가 안 나요. 이렇게 부딪쳐야 소리가 나는 거예요. 실체라야 돼요. 이 나무 판때기도 공중에 휘두를 때는 소리가 안 나는 거예요. 실체를 중심삼고 부딪치게 되면 소리나는 거예요. (손뼉을 치심)
그럼으로 말미암아 돌과 돌끼리도 불이 나고 다 그런 거예요. 나무와 나무끼리도 불이 나겠어요? 어때요? 물론 돌들도 굳은 것끼리 부딪치면 불이 나지만, 하나님의 사랑에는 나무와 나무끼리도 불이 나고, 공기와 공기끼리도 하나님의 사랑에는 불이 난다는 거예요. 모든 것이 참사랑의 충격에 동화될 수 있게끔 돼 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좋다 하면 전부 다 좋은 것을 느끼게 되어 있지, 어느 끝에 있는 존재의 관계에 대한 사랑 때문에 지은 물건도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니에요. 내가 지금 말하면 이 머리카락도 말하는 감각을 느껴 가지고 거기에 동화되는 거와 마찬가지로, 우주가 그렇게 되어 있다는 거예요. 그것 얼마나 멋지겠어요?
그래 가지고 하나님이 비로소 무슨 자리에 서야 되느냐? 부모의 자리에 서는 거예요. 다 부모가 필요하지요? 존재세계는 주인이 필요해요. 출발지가 부모예요. 부모의 자리를 필요로 하는 거예요. 무엇을 중심삼고? 물건이라면 주인의 자리는 필요하지만 사랑이 필요 없는 거지요. 물건 물건을 대해 가지고 주인을 주장하게 될 때는 주인의 자리가 필요하지, 아버지 자리는 못 되는 거예요. 사랑의 상대를 지을 때 절대?유일?불변한 사랑을 중심삼고 지었는데, 아버지로서 아들딸을 사랑할 수 있는 그 자리가 필요하다는 거예요.
그러면 아버지가 그 사랑을 찾을 수 있는 아버지로서 사랑의 주인 자격을 혼자서는 영원히 만들 수 없어요. 비로소 아들을 가지고 아들을 보고 사랑함으로 말미암아, 아들로부터 느껴지는 사랑으로 말미암아 부모의 사랑이 설정된다는 거예요. 이것을 알아야 돼요. 사랑은 혼자 이룰 수 없어요. 상대를 통해서 이루는 거예요. 이게 귀한 거예요. 상대를 통해서 그 사랑이 결실되는 거예요.
박구배도 장가가기 전에는 부부의 사랑이 어떻다는 것을 몰랐고, 부부의 사랑을 알았다 하더라도 아들딸을 안 낳으면 부모의 사랑의 자리에 못 나가는 거라구요. 사랑의 상대가 필요한 거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