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위해 살아야 되느냐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362권 PDF전문보기

왜 위해 살아야 되느냐

『……그 동안 인류역사를 볼 때 이러한 사연이 전혀 고려되지 않은 채 그냥 무지한 상태에서 맹목적으로 하나님을 추구하여 왔다. 그러나 인간의 본연의 마음속에 하나님을 추구할 수 있는 본성이 남아졌다는 것은 불행 중 다행이었다. 하나님이 인류의 부모라는 사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모르겠다. 초월적 무한적 하나님과 유한적 인간을 어떻게 부모와 자녀의 관계로 설정할 수 있는 것인가?』

보라구요. 사랑이라는 것은 혼자 이룰 수 없어요. 절대?유일?불변한 하나님이라도 사랑은 혼자 이룰 수 없다구요. 상대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완성되게 되어 있어요. 남자의 사랑은 남자 혼자 이룰 수 없어요. 거기에 사랑도 있고 생명도 있고 혈통도 있고 양심이 있지만, 그 전체의 사랑의 자리를 이룰 수 없어요. 자기 혼자서는 사랑의 주인의 자리를 차지할 수 없어요.

누구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느냐 하면 상대로 말미암아! 상대를 두어 가지고 주고받을 수 있는 충격을 받음으로 말미암아 사랑의 자리에 이를 수 있는데, 그 사랑의 충격을 일으킬 수 있는 자는 아무리 하나님이라도 하나님 혼자 자체가 아니라는 거예요. 상대를 통해서 자극을 받아야, 서로 주고받아야 하나되는 거예요. 하나됨으로 말미암아 사랑의 주인 자리에 나가는 거라구요.

그래서 남자의 완성은 여자로 말미암아! 남자가 여자를 사랑할 수 있는 주인의 자리는 남자 자신이 영원히 원하더라도 찾을 수 없어요. 여자가 있어 가지고 사랑을 할 수 있게끔 해줬기 때문에, 여자로 말미암아 사랑의 주인 남자가 된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사랑이라는 것은 상대로 말미암아 오기 때문에 우리 통일교회의 철학적 사상이 뭐냐 하면, 위해 살라는 거예요. 위해 살아야 되는 근본원리가 왜 있느냐 하면, 사랑의 길은 상대를 통해서 완성되기 때문에 완성의 길을 따라가는 데 있어서 가치문제가 결정됨으로 말미암아 그 일은 위해 주지 않으면, 위하지 않고는 오지 않아요. 자기를 위하라면 반발한다구요.

그런 원칙에 의해서 하나님도 절대자이지만 위해 줄 수 있는 이 자리에 서야만, 하나님이 위해 줄 수 있어야만 하나가 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왜 위해 살아야 되느냐 하는 이런 철학적 뿌리가 어디에 있느냐 하는 문제, 만 우주를 지으신 하나님이 왜 인간을…. 현대 신학에서는 하나님은 절대 신성한 분이고 인간은 절대 죄악 된 분이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신성한 분과 죄악 된 사람이 어떻게 부자지관계가 될 수 있느냐 이거예요.

아무리 아버지가 잘났더라도 아기를 낳음으로써, 부모가 아무리 위대하더라도 고고(呱呱)의 소리를 내며 탄생하는 그 시간부터 부모의 사랑이 발동하는 거예요. 아기를 못 가지면 아무리 부모의 자리에 나가고 싶고 부모의 사랑을 갖고 싶어도 가질 수 없어요. 상대를 통해서 모든 사랑의 주인 자리를 결정한다는 거예요. 이걸 잘 알아야 된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남자에게 절대 필요한 것이 뭐냐? 여자가 절대 필요해요. 왜? 자기의 사랑의 주인을 이뤄 주는 절대적 여인이 상대라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도 아무리 절대자이지만 홀로는 사랑할 수 없기 때문에, 부모가 되기 위해서는 자식이 없으면 안 된다는 논리가 여기에서 결정되는 거예요. 이걸 똑똑히 알아야 돼요. 이것이 통일교회의 철학적 근거가 돼요.

위해 살아야 된다는 거예요. 왜? 자기에게 이상적인 모든 근본이 찾아오는 데는 상대로부터 찾아오기 때문에 상대를 위해 줘야 되는 거예요. 상대보고 위해 달라고 한다면 사랑이 떠나요. 위하라고 하면 떠나게 돼 있다구요. 알겠어요?

하나님이 인간과 만물을 사랑하고 만물을 전부 위해 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자신이 사랑의 주인이 되는 거예요. 이 모든 피조세계의 창조의 주인이 될 수 있고, 인간의 주인이 될 수 있다, 아버지가 될 수 있다 이거예요. 알겠나?

그것이 언제든지 대번에 딱 들어와야 돼요. 왜 위해 살라고 하느냐 하면 어떻게 대답할 거예요? 사랑문제를 몰라 가지고는 안 된다는 거예요. 알겠지요?「예.」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