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횡의 핵심 자리에 서야 중심자가 돼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175권 PDF전문보기

종횡의 핵심 자리에 서야 중심자가 돼

자, 그러면 오늘날 인간 세상에서는 왜 뜻의 길을 가야 되느냐? 왜 뜻의 길이 필요하냐? 하나의 표준을 중심삼고 방향감각과 상하의 질서적 기준을 분별하기 위해서는 종횡의 개념이 있어야 합니다. 그 개념을 떠나서는 안 되겠기 때문에 하나님은 뜻의 길에서 종적인 뜻의 길, 횡적인 뜻의 길을 만든 것입니다. 이걸 합하게 될 때, 우리 인간에 있어서 종횡을 연결시키는, 영계와 육계를 연결시켜 이중목적을 접촉시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나 하나 자체를 어디에 세워 놓느냐 하면, 종적 기준과 횡적 기준의 중심자리에 세우려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아야 할 것이 남자나 여자로 태어난 우리 인생이 가야 할 길입니다.

본래 태어나게 될 때, 우리는 뜻의 중앙선에서 태어났습니다. 뜻의 중앙선으로 하여 횡적인 세계를 중심삼고 태어났으니 어릴 때는 모르지만 어디에 찾아 올라가야 하느냐? 세계를 알아야 된다 이거예요. 오른쪽을 알아야 하고 왼쪽을 알아야 합니다. 철이 듦에 따라서, 성숙함에 따라서 점점점 원형이 커지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누구를 중심삼느냐? 자기를 중심삼는 거예요. 이렇게 보니까, 남자는 이러한 것이고 여자는 이러한 것이고, 남자 여자는 나라를 중심삼고, 가정을 중심삼고, 부모를 중심삼고 살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태어났으니 그렇게 살아야 되는 거예요. 이것을 벗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이건 무엇을 말하느냐? 환경적 여건을 갖추지 못한 존재는 본래부터 생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을 짓기 전에 하나님이 무엇을 먼저 지었느냐 하면, 사람을 먼저 지은 것이 아닙니다. 천사를 짓고 만물을 지었습니다. 해와 달, 일월성신을 중심삼고 물이라든가 공기 같은 것을 지어 환경을 지어 놓고 우리 생명체가 기거할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그러면 내가 태어났다는 사실은, 환경적 여건 가운데 태어났기 때문에 나라는 존재는…. `환경적 여건 앞에 대상이 되고 싶으냐, 주체가 되고 싶으냐' 하고 남자나 여자에게 묻게 될 때, `나 대상이 되고 싶다'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주체가 되고 싶어한다는 거예요. 여러분 그렇지요?

나 중심삼고 주장할 수 있는 본연의, 본심적 작용의 그 기원, 원동력의 기점은 어디서부터냐? 요 중앙선을 중심삼은 개념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그런 본심의 작용이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잊어서는 안 됩니다. 어디 가든지 중심자가 되고 싶지요?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 그거 왜 그래요? 왜 그래? `그거 왜 그런지 몰라' 하는 게 아니라구요. 그건 왜 그러냐 하면, 종횡을 중심삼은 핵심자리에 내가 서게 되면, 모든 전부는 위라도 나를 통해야 되고, 오른쪽 왼쪽이라도 나를 통해야 되고, 아래도 나를 통해야 되고, 전후라도 나를 통해야 되는 입장에 있기 때문입니다. 나 자신은 본래 그래야 될 입장입니다.

참된 여자나 남자는 본래 그래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본연의 기준인데도 불구하고 타락했다 이겁니다. 그러나 타락했을망정 본연의 기준은 남아 있기 때문에, 그 본연의 양심작용이 내 일상생활에 영향을 미침으로 말미암아 그런 개념이 우리 생활을 떠날 수 없는 것입니다. 이걸 떼어 버릴 수 없어요. 지남철의 본성을 떼어 버릴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세 살 버릇이 몇 살까지 간다고 그래요? 「여든 살까지…」 여든 살까지 가서 세 살 버릇이 고쳐진다는 말이 없지요? 세 살 버릇이 여든 살 되어서야 고쳐진다는 말은 하지 않습니다.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는 말은 백 살, 천 살까지도 갈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것이 왜 그러냐? 그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그 본심의 작용은 영원히 계속하는 것입니다. 그런 개념을 갖고 있다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