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아버님의 종조부를 중심한 가문 내력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322권 PDF전문보기

참아버님의 종조부를 중심한 가문 내력

그래, 열성분자들은 평안북도에서 나왔어요. 평양이 동양의 예루살렘이라고 하지만 본래 신앙의 요지가 선천이에요. 정주 선천이라구요. 그때 왜정 때에 정주의 교회당에 신자들을 모아 놓고 일본 사람의 깃발을 불살라 버린 거예요. 제일 뿌리가 거기예요.

이승훈씨가 오산학교를 설립했는데, 우리 종조부랑 친구라구요. 이승훈씨는 초등학교밖에 안 나왔어요. 우리 할아버지는 신학대학을 나오고, 영어도 잘 하고, 한학에도 능통하고 그랬다구요. 그래, 강원도로부터 경상도 산중에서 옛날 ≪정감록≫을 연구하는 모든 사람들이 다 친구예요. 그렇기 때문에 산악지대에 도망다니고 그랬어요. 전부 매일같이 2년 8개월 동안 감옥살이를 하고 나와 가지고 갑종 요원으로서 언제든지 경찰이 따라다니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것이 싫어 가지고 사람들이 모르는 산악지대로 다니면서 절간을 찾아다니고 이렇게 일생을 살다가 돌아가신 거라구요. 그렇게 살다가 죽었기 때문에 문용기 장로한테 현몽을 해서 ‘내가 아무 뒷동산에 묻혀 있다.’고 주소를 가르쳐 준 거예요.

그래서 주소를 가르쳐 준 데로 편지해서 답신이 와 가지고 묻힌 데를 찾은 거예요. 애국적인 공이 있는 분이에요. 꿈같은 얘기지요? 그래서 원전에 모신 거라구요. 편지해 가지고 답이 와서 찾은 거예요. 그걸 보게 되면, 나라의 공신이라든가 공적을 세운 선한 놀음을 한 사람은 뿌리가 뽑히지 않습니다.

우리 종조부가 목사인데, 이름난 목사였어요. 옛날에 기미라는 것이 있었어요. 기미는 요즘의 증권과 마찬가지예요. 벼를 몇십만석이라든가 이렇게 사는 거예요. 기미 해 가지고 망한 사람이 많거든요. 망한 사람이 많아요. 그래, 목사가 상해 임시정부의 군자금이라든가 정부의 운영자금 같은 것이 없으면 팔도강산의 도 책임자를 세워 가지고 모금운동을 하는 거예요. 북쪽의 대표자가 누구냐 하면, 종조부였어요. 작은할아버지였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내가 자라면서도, 독립군들이 눈이 계속해서 올 때 찾아오는 거예요. 발자국 자리가 대번에 남거든. 그러니까 눈이 한번 이렇게 오기 시작하면 말이에요, 언제 온지 모른다구요. 틀림없이 날이 흐려 가지고 그럴 때는 찾아오는 거예요. 그래, 어머니로부터 아버지, 할아버지가 비밀리에 밤에 국수를 삶아 가지고 먹이고, 닭을 잡아 먹이고 이래 가지고 보낸 거예요.

나는 그때 자고 있으니까 모르지요. 어머니 아버지가 뭐 깨워 주나? 아이들은 자는 것이 도리어 편안하지요. 아침에 일어나 보니까 잔치하고 닭을 잡아먹고 그랬다고 땡깡을 부린 생각이 나요. 세상에, 나는 이 집의 아들인데 불구하고 동네 사람들은 모아 가지고 잔치를 해주고 그럴 수 있느냐고 말이에요. 그때는 무슨 일인지 잘 몰랐지요, 여섯 살이니까. 그때 독립군 얘기를 하는데 독립군들은 뭐 처마 밑에서 자고 지붕을 훌훌 날아 넘어간다는 그런 말을 많이 들었다구요. 그런 사람들이 오고 가고 한 거예요.

그러니까 정부의 어려운 것을 생각해서 할 수 없이 우리 종조부를 중심삼고…. 자기 형님이 우리 할아버지거든요. 할아버지한테 부탁해서 재산도 팔아 가지고 임시정부에 헌납한 거예요. 그때 돈 7만 원이면 지금 돈으로 하면 수천억이 되지요. 몽땅 재산을 동척(동양척식)회사에 저당 잡혀 가지고…. 목사가 그런 놀음을 했으니 말이에요, 신자들 앞에 뭐라고 하겠어요? 서울에서 기미 하다가 빚을 졌기 때문에 할 수 없이 팔아 치우고 야반도주했다는 소문이 난 거예요. 그렇게 해놓고는 경찰이 잡으러 오니 도망가서 팔도강산을 유람하면서 이렇게 사신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집안에서 우리 같은 사람이 태어난 거지요. 그래, 그런 사상이 있어서 나라를 위해서 몽땅 집과 재산을 팔아서 도와준 거예요. 그러니 우리 어머니가 고생을 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