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리의 뜻과 하나님의 심정을 아는 자가 가야 할 행로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324권 PDF전문보기

원리의 뜻과 하나님의 심정을 아는 자가 가야 할 행로

선생님이 하나님 앞에 그런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도 선생님 앞에그 이상 해주기를 바라는 하나님의 소원이 있다는 것을 알고, 그런 기준에서 여러분이 매일 매일 수양의 도를 높일 수 있는 자숙하고 자중하는 생활을 해야 돼요. 내일을 빛나는 내일로 맞겠다는, 금년을 빛나는 해로 맞고 십 년을 빛나는 해로 남기겠다고 하고, 일생을 빛나는 해로 남기겠다고 해 가지고 조금도 거기에 결여되는 기준을 남기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는 생활을, 생애를 거쳐가야 한다는 거예요. 그것이 원리의 뜻과 하나님의 심정을 아는 사람들이 가야 할 행로가 아니겠느냐 이거예요. 이것을 알아야 된다구요.

저 말씀은 절대 죽지를 않아요. 지금 레버런 문이 세계적으로 유명하다구요. 미국의 조야에 있는 사람들도 저 말씀을 듣고 말씀 앞에 절대 순응할 수 있는 환경 여건이 되어 가는 거예요. 오늘날 통일교회 자체도 지금까지 선생님을 과거 40년 전부터 만났지만 그때 이루어 나가던 기준이 아니에요. 이제는 세계사적인 탕감 기준을 넘고 넘었다는 사실을 알고, 그 기준 앞에 자기 자신이 얼마나 앞으로 올 세계 앞에 책임 못 해 가지고 그런 환경적 여건이 점점점 작아지고 짧아지는 것을 염려하고, 그때가 오기 전에 자기들이 무슨 희생을 하더라도 책임 하겠다는 이런 마음을 가져야 되겠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런 상징적인 조건이라도 세우기 위해서는 총생축헌납제를 해야 돼요. 자기 일족과 나라까지도 내가 바친다는 마음으로 하는 거예요. 내 조그만 것으로 나라를 대신하고 세계를 대신해서 부모님이 갈 수 있는 자유 판도를 만드는 거예요. 이것이 돌이 되지 않고 모래가 되고 진흙이 되어, 물이 흘러도 수평이 될 수 있는 요소의 그 무엇이 내 자신이 돼야 되겠다 이거예요. 그것이 모래알이나 돌멩이로 남아져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돼요. 그렇게 심각한 때라는 것을 여러분이 인식해야 돼요.

그렇기 때문에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조국광복을 해야 할 텐데, 옛날의 탈바가지를 그냥 그대로 쓰고 있어요. 그냥 그대로의 몸뚱이를 중심삼고 조국광복을 하겠다고 해서는 하나님이 도와줄 수 없어요.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나라를 줄 수 없어요. 준다면 선생님을 중심삼고 조건적인 가정적 조국광복의 기준은 허락할지 모르지만, 세계 평준화된 기준에서 세계 만민 해방권을 갖춘 가정이상 기준이 일원화된 그 세계 기준에서의 조국광복은 허락할 수 없는 거예요. 내 자신도 그것은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그러니 부모님을 모시는 측근들, 아들딸이 얼마나 무서운 자리라는 것을 알고, 또 아들딸도 물론이지만 통일교회 식구들도 무서운 자리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돼요. 저 말씀이 얼마나 두렵다는 것을 알아야 된다구요. 거기에 자기가 비추어 가지고, 면경과 같이 비추어 보고 티가 있으면 깨끗이 정화작업을 하는 거예요. 그것을 하기 위한 놀음을 매일같이 훈독회로 연결시키라는 거예요. 얼굴에 더러운 것이 있으면 닦아 버리고, 각이 있으면 깎아 버려야 돼요. 이럴 수 있는 놀음을 하기 위해서 훈독회가 필요한 거예요. 알겠어요?

일생 동안 아침마다 정성들여 하는 거예요. 훈독회를 10년 20년 했다고 해서 ‘아이구, 10년 했다!’가 아니라, 10년을 했고 천년을 했더라도 그 자리에 못 미치게 될 때는 훈독할 수 있는 시간이 영원히 남아서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돼요.

나 자체의 해방을 위한 문을 열지 못하면 하나님이 열쇠를 쥐고 있지만 열지 못하는 거예요. 그러니 여러분 자신이 문을 열 수 있는 수평이 되어야 돼요. 하나님의 모양과 상대적 입장이 되어 그림자가 없어야 돼요. 햇빛이 천 촉이 되면 천 촉의 빛으로 비출 수 있는 보다 나은 결과가 있어야 하나님이 기쁨으로써 해방될 수 있는 문을 열어놓고 환영할 수 있다는 것을 언제나 생각해야 된다구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저 말씀이 절대 없어지지 않아요. 참부모의 이름이 영원히 남아 있는 한 역사와 더불어 저 말씀은 언제나 하나의 기준이 되어 척도가 되는 거예요. 거기에 맞추기 위해서 얼마나 몸부림치고 얼마나 수난 길을 거치더라도 따라오는 사람이 있는 거예요.

현재 부모님을 직접 모신 사람들과 그 사람들의 차이가 얼마나 있겠느냐 이거예요. 그러니 그들 앞에 가서 자기가 어떻게 얼굴을 들고 나서느냐 이거예요. 아들이라고 부모라고 앞에 나타날 수 없다는 거예요. 그 부끄러운 세계가 앞에 막혀 있는 거예요. 이것을 극복해 넘어갈 수 있는 기원을 어떻게 만드느냐 할 때, 일체의 모든 전부를 뜻 이외에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된다구요.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