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여건을 넘어서 남겨야 할 것은 정의의 길
김명희는 일본에 있을 때에 내가 성경 보내 준 것 받은 적이 있어?「일본에 있을 때 성경 보내 준 것 받으셨냐고요. 아버님이 보내 주신 성경이요.」「생각이 안 나는데요. 받은 기억이 없습니다. 그 목사 통해서요?」그 목사를 통했다는 얘기 할 필요도 없이, 받은 적이 있느냐고 물어 보는 거야. 안 받았으면 사기쳐 먹은 거야. 자기도 이용해 먹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든지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된다구.「안 받았으면 그 목사가 사기를 친 겁니다.」「예.」목사는 무슨 목사야? 누구인지도 모르지. 자기가 잘 나갔으면 통일교회도 고생을 덜 했을지 몰라.「예.」
그래, 하나님과 천하를 걸고 장기를 두어서 지게 되면 하나님이 천하를 줘야 돼요. 장기판이 아니에요. 아무 데서나 두는 장기판이 아니에요. 금을 그었으면 그 금 그은 것이 아무 곳에나 금 그은 것이 아니에요. 하나님을 놓고 금 그은 내용의 사실대로 결과가 나타나지 않으면 모든 것이 부정되는 거예요. 그러니 심각해요. 내가 이 길을 가기 위해서 얼마나 심각한지 알아요? 한 발짝 옮기기 위해서.
자기들이 잘못했으면 잘못한 것을 회개하고 뒤를 바라볼 때, 구름이 보이지 않고 안개가 끼지 않고 밝고 맑은, 비 온 직후에 태양 빛을 바라보는 것 같은 그런 환경을 어떻게 앞뒤에 갖추고 사느냐 하는 것이 문제라구요. 다 마찬가지예요. 어머니나 아버지나 다 마찬가지예요. 구름이 끼면 좋아하지 않아요. 그림자가 지면 좋지 않아요.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고달픈 생활을 하는 거예요. 임자네들을 데려다 놓고 내가 쉴 수도 있지요. 이것들이 나가 가지고 선생님 몸이 불편하게 된다면 어떤가 하고, 그게 생각 가운데 들어와 가지고 선생님이 어떤가 생각하는 거예요. 그런 생각을 안 하게 하기 위해서 아픈 것을 잊고라도 현장을 찾아보려고 하는 거예요. 그래야 내가 저나라에 가서 빚지지 않지요.
그렇기 때문에 마태복음 5장에 있잖아요? 굶주릴 때에 먹을 것을 주었으며, 감옥을 찾아보았으며, 나그네를 대해 대접했느냐고 했는데, 그런 말도 그래서 있는 거예요. 그러면서 결론 맺기를 너희는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고 했다구요. 환경 여건을 넘어서서 남겨야 할 것은 정의의 길이에요. 옳은 길이에요. 죽더라도 그 자리에서 죽어야 됩니다. 예수님이 훌륭한 것이 그거예요. 십자가에 돌아가면서도 그 길을 갔다는 사실이 놀라운 것입니다.
「안팎으로 너무 몰랐습니다. (김명희)」말 말고 가만히 있어. 듣고 있으면 되지, 이 시간은 자기가 얘기하는 시간이 아니라구. 자기가 입을 열어 무슨 얘기를 할 거야? 그 따위 말 듣고 싶지 않아.